본문 바로가기

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노동 없는 노동의 시대 - 「모던 타임즈」의 “찰리”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까지


자본주의 - 프로테스탄티즘 혹은 자본주의 정신이 빚어낸 정신질환

“왕이시여, 로마를 이긴 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탈리아를 정복해야지!”
“그 후에는요?”
“시칠리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그러면 전쟁이 끝납니까?”
“물론 아니지. 그것은 보다 위대한 일들을 위한 시작과 전주곡에 불과하다. 리비아가 남아 있고 카르타고도 그리 멀지 않으니 말이야. 그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더 이상 적이 남아 있지 않게 될 걸세.”
“분명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후엔 무엇을 하지요?”
“그 후에는 조용히 인생을 즐겨야지.”
“그렇다면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이탈리아로 건너가려고 준비할 때 피로스와 그의 부하가 나눈 대화


브레히트의 시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의 유명한 첫 구절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될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인용되는 구절이다. ‘문화(culture)’의 어원이 ‘경작하다(cultivate)'에서 나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은 인간의 생활을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에 의해 변형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즉, 경작과 수확, 가축사육과 금속의 이용 등은 인간의 노고 없이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었다. 계몽철학자 로크는 “인간 생활에 유용한 산물 가운데 그 10분의 9는 노동의 성과라고 이야기한다 할 때, 내 생각으로는 이것만 하더라도 상당히 양보해서 평가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정녕, 우리들이 우리의 사용품으로 되어 있는 사물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인간이 그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낱낱의 대가를 계량해 가면서, 그 사물이 원래 얼마만큼 자연의 덕택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 사물의 99퍼센트만큼은 온전히 노동의 덕택으로 돌릴 수 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노동은 좌파 시인 브레히트로부터 독일 나치즘의 최종해결책이었던 아우슈비츠 강제노동수용소의 정문에 쓰여 있는 글귀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것이 레토릭에 불과할지라도 거부할 수 없는 찬미의 대상이 되어 왔다. 정치적 좌와 우가 합세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외쳐왔던 셈이다.

역사 이래 노동은 “인간의 존재, 인간의 도덕, 그리고 인간의 자화상”을 형성해 왔고,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전통 속에 노동은 정치적 좌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서로 분리해낼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16세기 종교 개혁이 있던 무렵은 훗날의 대규모 자본주의 생산에 필요한 자본축적의 기회가 과거 어느 때보다 컸던 시기였다. 자본주의 핵심을 자본이라 했을 때, 자본주의에는 가능한 많은 돈을 벌려는 상인 근성과 그렇게 모은 돈을 써서 인생을 즐기려는 향락주의가 연관되어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신약성서에도 나오듯 - 예수가 교회에서 세리와 고리대금업자의 돈 상자를 뒤집는 - 기독교는 상업적 행위, 영리목적의 장사에 적대적이었고, 모든 향락에 대해 금욕적이었다. 도리어 돈을 벌기위한 상업 활동에 아무런 터부도 없었으며 사람들이 마음대로 영리를 추구할 수 있었던 중국이나 인도 혹은 이슬람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실제의 역사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그 의문에 대해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든 것은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이었으며 그들은 근면과 절약을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의 직업을 신에게 부여받은 ‘천직(天職)’이라 생각하여 신앙생활을 하듯 자기 목적적으로 노동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신도들에게 부를 얻을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설교했다. “만약 하느님이 어떤 방법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여러분이 이 방법을 거부하고 이익이 적은 방법을 택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명 가운데 하나를 거스르는 것이며,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하느님이 요구하실 때 하느님을 위해 그 은총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육체와 죄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은 부자가 되려고 힘써도 된다.”

물론 서구의 근대인들이 모두 프로테스탄트들은 아니었고, 그들 모두가 자본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하기 위해 일한다는 마음가짐은 자본주의의 정신이 중산계급에 침투하게 되고, 다시 노동자 계급에 침투하여 근대에 이르러 가정과 노동 현장이 분리되면서 노동자가 마치 수도사들이 삼종 기도하듯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일을 한다는 생활 태도가 몸에 배게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란 세속화된 기독교의 형태, 자본가는 세속화된 수도원 원장, 노동자는 세속화된 수도사라 할 수 있다.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신의 소명을 받드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자본의 은총이기도 하지만 제품을 만들기만 하고 스스로 소비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정신은 - 생산된 제품에 대해 계속 금욕적이라고 한다면 -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국가)가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근대화란 어떤 의미에선 결국 노동을 해서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고 소비하지 않는 - 소비는 타민족, 타국민에게 강제시키는 - 국가가 세계를 제패한 역사를 말한다.

만일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이 없다면, 즉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그렇게 모은 돈을 써서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만 있다면 - 피로스 왕과 그의 부하가 나눈 대화처럼 - 자본주의 사회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생산과 소비는 국내에서 나름대로 자급자족에 만족하게 될 것이고, 특별히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타국을 침략하거나 착취할 필요도 없으며 대자본이 축적되어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예컨대 어떤 선진국이 이른바 미개사회에서 산업을 증진시키고 자본주의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할 때, 선진국은 원주민들에게 그들 사회에서 볼 수 없는 사치품들을 제공(사치품을 생필품화)하여 맛을 들인 후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들 고용된 원주민들의 의식 속에 ‘자본주의 정신’이 깃들어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원주민들이 한 달분 급료를 받은 뒤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는다면 자본에 의한 고용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화 과정에선 필히 기독교화 과정이 병행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맑스나 니체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티즘 혹은 자본주의 정신(노동)이란 결국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데도 일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1917년 『세계를 뒤흔든 10일』의 신화를 통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유토피아적 전망을 안겨주었던 러시아 혁명 역시 노동자 국가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노동하지 않는 자는 인간일 수 없다”는 노동의 신화에 사로잡혔다. 1917년 이후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체제는 겉으로는 노동해방이라는 기치 아래 내면적으로는 20세기 근대 국가들의 시대정신인 산업주의에 깊이 침윤당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종식시키고,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했으나 러시아 혁명 이후 실제로 경제를 어떤 식으로 사회주의화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 당시 자본주의가 제시했던 모델, 즉 대규모 사업을 공공기관이 떠맡는 식으로 국가가 경제를 운영하면 될 것이라는 안이한 결정을 놓고 보더라도 사회주의는 다만 유토피아를 꿈꾸는 선동적 슬로건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생산 양식으로도, 사회주의 생산 양식으로도 파악되지 않는 특이한 생산 양식 ‘계획 경제형 관료정’ 혹은 ‘관료자본주의’ 체제로 몰락해 간 것은 비극적이긴 하나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존 리드는 볼셰비키 혁명을 지켜 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책을 썼고, 그는 노동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사건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변증법적 진리였으며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제임스 트위첼은 “리드는 틀렸다. 20세기의 모든 ‘주의’ 중에서, 모든 정치적 시스템의 가반이 되고 있는 한 가지 ‘주의’보다 성공한 것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바로 물질주의다. ‘물질’과 소유에 대한 사랑, 거래와 비축, 구매와 판매, 나아가 물건에 관한 대화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현대의 정치적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용가치는 마르크스가 교환가치라고 불렀던 명목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었고, 자본주의 국가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관철된 산업주의와 생산성 중심주의는 노동자 동원을 위한 노동의 신화를 가속시켰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해방의 노동”으로, 노동은 인간의 본질(Homo laborans)로 승화되었다.

1936년 「모던 타임즈」의 노동자 “찰리”와 2005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

1914년 1월 14일. 디트로이트에 있는 한 공장 앞에 수많은 구직자들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헨리 포드가 훗날 스스로 현대(modern)를 발명했다고 떠벌일 수 있게 된 것은 이 날의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보통 하루에 9시간을 일하고 불과 2~3달러를 받고 있었는데, 포드자동차는 노동자들에게 하루 8시간 노동에 일당 5달러를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포드자동차에서 일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맑스 대신에 포드’라며 포드자동차의 경영방침에 찬사를 보냈다. 포드는 T형 모델의 제작에 어셈블리 라인을 이용한 작업 방식을 도입해 작업시간을 12시간 반에서 1시간 30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이런 놀라운 혁신 덕분에 포드의 T형 모델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회사는 물론 소비자(노동자)들도 싼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었다. 포드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덕분에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포드 T형 모델을 타고, 레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을 작업 시간 내내 계속해야 하는 상황을 참기 어려워했고, 자동화된 생산 공정은 일자리를 줄여 나갔다. 헨리 포드의 무노조 운영방침과 내부감시 시스템 역시 노동자를 옭죄었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모던 타임즈」를 만든 것은 1936년에 만들었는데, 당시 유럽은 파시즘과 베를린 올림픽의 열기로 들떠 있었다. 히틀러의 지지자이기도 했던 헨리 포드의 새로운 생산방식은 ‘포디즘’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오늘날 포디즘이란 용어는 그 자체로 근대산업사회와 동일시되는 영광(?)을 얻고 있다. 이 점에서도 알 수 있듯 포디즘은 대량생산 대랴소비라는 근대산업사회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임금의 형태가 현재와 같이 화폐만으로 지급되기 시작한 것 역시 근대의 산물이었다. 선대제 아래에서 노동자들은 생산물이나 원료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받았으며 또 작업 후에 남은 자투리 재료를 이용해 과외 소득을 얻을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경영자들은 이제 노동자들이 원료나 생산물의 일부를 사취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화폐 임금은 인클로저(enclosure)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오랜 갈등을 겪으며 일반화되었다. 성과급 체계에서 화폐임금제가 확립되고 기존의 관습이 사라지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이전보다 한층 더 심한 착취를 당했고, 이제는 숙련도보다 근력과 젊은 나이가 생산과 소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찰리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에 종속된 노동자, 포디즘의 핵심 개념들인 표준화, 분업화에 의해 기계를 만드는 새로운 기계가 되었다. 자동화 공정에 의한 대량생산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상당수 대체했던 것처럼, 21세기에는 컴퓨터 혁명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평가받아 오던 정신노동의 일자리까지도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위기의식이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로 이어진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작업 공간은 우리가 산업혁명과 함께 떠올리게 되는 과거의 공장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표상된다. 포디즘에 의해 운영되는 공장은 음습하고, 증기가 나오고, 석탄 연기 자욱한 산업혁명기의 공장이 아니라 철골과 유리로 만들어져, 자연광이 투과되고, 먼지 하나 없는 공간이다. 주인공 찰리 채플린은 산업혁명기의 노동자에 비하면 훨씬 쾌적하고, 인간적인(?) 작업 환경에서 일한다. 공장은 청결하고, 모든 작업 도구들은 정해진 자리에 있다. “찰리”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면 모든 일이 잘 진행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찰리는 결국 이 공장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컨베이어 벨트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는 그 어떤 감독관보다 더욱 엄격하게 일정한 시간 내에 부품들을 조립할 것을 강요한다. 순간의 방심도 허점도 허락하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노동자 찰리는 마비 증세를 보이고 결국엔 성격마저 이상해져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된다.

위의 이야기가 1936년의 영화 「모던 타임즈」 속에서 “찰리”가 표상한 노동이라면, 2005년 현재의 “찰리”가 표상하고 있는 노동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을 참고해 보면 된다. 영국 웨일즈 태생의 동화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팀 버튼이 만든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원작과 다소 다른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동화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며 연일 놀라운 신제품을 출시하지만 비밀로 둘러싸인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견학하게 된 다섯 명의 어린이와 웡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서 해고된 뒤 치약공장에서 튜브에 작은 뚜껑을 돌려 끼우는 일을 하는 버켓 씨의 아들, 주인공 찰리가 하루 종일 껌 씹는 소녀 바이올렛, TV만 보는 마이크 티비 등과 함께 초콜릿에 숨겨진 다섯 장의 ‘황금티켓’을 얻어 웡카의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웡카의 공장을 견학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 지닌 가장 큰 의문은 매일 엄청난 양의 초콜릿을 생산해 각국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누구도 공장을 드나드는 노동자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웡카 씨네 공장에는 수천 명이나 되는 일꾼들이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웡카 씨는 갑자기 일꾼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 보냈어.”
“왜요?”
“스파이 때문이지.”
“스파이요?”
“그래, 다른 초콜릿 공장들이 웡카 씨가 만드는 놀라운 제품들을 탐내기 시작한 거야. 그래서 스파이를 보내 웡카 씨의 비법을 훔쳐오게 했단다. 스파이들은 평범한 일꾼으로 위장하고 웡카 씨 공장에 취직을 했지. 그러고는 일하는 척하면서 그 비법을 하나씩 알아냈단다.”
…<중략>…
“윌리 웡카 씨는 분하고 원통해서 수염을 쥐어뜯으며 한탄했지. ‘정말 너무들 하는군! 스파이들이 이렇게 들끓어서야! 공장을 닫아야겠어!’ 하고 말이다.”
“설마 진짜 문을 닫은 건 아니죠!”
“웬걸, 정말 닫아 버렸단다. 일꾼들한테는 미안하게 됐지만 집으로 돌아가 달라고 했어. 그런 다음 공장문을 닫고는 사슬로 단단히 잠가 버렸지. 모두가 떠나버리자 거대한 초콜릿 공장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어.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지 않았고 윙윙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얼마 뒤 공장 굴뚝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다시 공장 문이 열린 줄 알고 해고되었던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우르르 달려갔지만, 공장은 여전히 쇠사슬로 굳게 닫혀 있었다. 웡카의 아이디어를 도둑질했던 경쟁사들은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10년이 넘도록 공장 안에 한 발짝도 들일 수 없었다. 한 명의 노동자도 없었지만 공장은 여전히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맑스의 말대로 “자본가는, 노동자가 자본가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노동자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으리으리한 집들 사이로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 침대 하나 새로 들일 수 없을 만큼 비좁은 집이 찰리와 그 가족이 머무는 집이었다. 웡카의 공장에서 해고된 뒤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할 수 없게 된 찰리의 아버지는 웡카의 초콜릿 판매가 증가한 덕분에 치약 공장이 성황을 이뤄 그곳에서 튜브 돌리는 단순 노동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치약 공장 사장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면서 찰리의 아버지는 다시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만다. 자신의 생일 날  찰리는 더러운 도랑에서 우연히 50펜스짜리 은화를 줍는 행운을 누린다. 초콜릿이 너무나 먹고 싶었던 찰리는 주운 은화로 초콜릿을 샀고, 황금 티켓의 행운까지 거머쥐게 된다. 찰리는 버르장머리 없는 부잣집 아이들 4명과 함께 10년간 그 누구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는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견학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동화적 상상력이 한껏 구현된 환상적인 공간으로 묘사된다. 「모던 타임즈」의 공장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도구와 거대한 태엽 장치들로 이루어진 컨베이어 벨트로 산업혁명기의 공장과 차별화되었다면,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초콜릿의 강이 흐르고,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정원이 나오고, 온갖 기발한 형태의 초콜릿 연구실을 통해 노동현장이 아닌 마치 판타지의 세계, 놀이 공간처럼 형성된 공간으로 표상된다. 그러나 그 작업장에는 노동자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일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해 작가는 완전자동화 된 공장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난쟁이 나라 움파룸파 사람들을 등장시킨다. 그들은 웡카가 어느 오지에서 발견한 부족으로 그들은 하루 24시간을 초콜릿 공장을 위해 일하고, 그곳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고 살지만 임금은 화폐가 아닌 카카오 열매로 받는다. 그들은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 열매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며 단지 몇 알의 카카오면 만족하는 것이다. 웡카는 움파룸파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그들을 괴롭히고 잡아먹는 맹수들이 득시글거리고, 푸른애벌레 밖에 먹을 것이 없어 웡카의 제안에 미칠 듯이 기뻐하며 응했다고 말한다. 웡카는 이들을 다른 경쟁 업체의 스파이 노릇을 할지도 모를 자국 노동자 대신에 먼 오지에서 숨구멍을 뚫은 작은 컨테이너 상자에 담아 밀수한 것이다. 버릇없는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난쟁이 움파룸파 사람을 사달라고 조른다. 어쩐지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경제선진국들에서 후진국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 - 필요에 따라 이주노동을 시키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마치 풍족한 시혜라도 베푸는 듯한 태도 - 에 대한 풍자를 읽을 수 있다. 호두까기 방에 이르자 이번에는 다람쥐들이 열심히 호두를 까며, 썩지 않은 호두를 골라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겉에서 보기엔 아무도 일하지 않는 초콜릿 공장은 실제로는 완전 자동화된 설비 속에서 화폐 임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노동자이거나 인간조차 아닌 비숙련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지도 않을 것이고, 복지나 임금 인상 문제를 단체협약을 들이대거나 골치 아픈 파업투쟁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다.

원작에서는 덜 두드러져 보이는 대목이긴 하지만 영화가 원작과 다소 차이가 나는 부분은 할리우드 영화 특유의 가족주의적 시각이다. 초콜릿 공장의 소유주인 웡카의 사업 성공은 어려서부터 초콜릿에 대한 독특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치과 의사 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에 결국 가족과 결별한 뒤 자신의 창의력에 의존한 것이다. 웡카는 가족과 결별한 대가로 사업에 성공한 셈이다. 작품 속에서 결국 최후까지 웡카의 시험을 견디고 남은 아이는 가난한 해고노동자의 자식 “찰리”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어린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찰리의 가족만이 온전한 가족형태, 대가족을 유지하고 있으며,  영화 속에서 웡카는 찰리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화해하면서 개인적인 행복을 얻는다. 웡카는 찰리에게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공장을 물려받으라는 제안을 받지만 찰리는 끝내 가족을 포기하지 않았고, 웡카를 설득해 공장을 물려받는다. 물론 영화는 자본의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공장 폐쇄로 해고되었던 찰리의 아버지가 공장의 기계들을 점검하는 유일한 노동자로 재고용되는 것이다. 체제 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 체제는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고용권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던 근대 노동의 신화는 노동하는 인간에 대해 노동의 파산을 선고한다.

노동 없는 노동의 시대

20세기 말 두 가지 위험이 노동 운동을 위협하고 있다. 노동 운동 지도자들이 시장 이데올로기 앞에 무릎을 꿇는 것, 그리고 시민의 탈정치화라는 위험이다. 블레어의 이른바 ‘제3의 길’은 일종의 이론적 굴복이다.(물론 나는 영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여러 측면에서 아직 옛 노동당 전통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족스럽게 확인하지만.) 그러나 인간들이 스스로 사기를 잃게 되면 노동 운동의 미래를 위해 위험은 커진다. 예를 들어 노동자와 빈민들이 ”저들이 우리를 위해 도대체 무얼 하겠는가?”라고 냉소하며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할 때 위험은 생긴다. 1960년에서 1988년 사이에 노동자의 대통령 선거 참여가 3분의 1로 줄어든 미국에서처럼 말이다. 탈정치화와 무력감은 노동 운동을 위해서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위해서도 커다란 위험이다. 민주주의 없는 노동 운동은 불가능하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그리고 21세기의 처음 5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위기”를 부르짖어 왔다. 그들은 폴 라파르그에서 홀거 하이데에 이르는 노동찬미, 노동중독에 반대하는 다소 철학적 입장부터, 자본의 국경 없는 자유로운 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가에 예속된 노동의 이주 문제, 실질 임금의 하락과 고용불안정성으로부터,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으며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다. 다른 한편(앙드레 고르, 스탠리 아로노비츠)에선 “탈노동의 세계는 무한노동의 경제적 및 문화적 전제들과 결별한다”며 위기는 곧 기회라는 식으로 말한다. 탈노동의 세계가 반드시 대중적인 빈곤, 고역 그리고 곤궁의 세계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도리어 이 상황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주는 개인과 사회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은 더 이상 필수적인 무엇이 아니라 단순한 수단으로서 그 지위가 저하되어야 하고, 노동에 기초한 생산주의 사회에서 자유시간 사회(문화사회)로 급진적으로 이행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울리히 벡은 오늘날 실업에 대해 숙고하는 사람이라면 “완전고용사회가 완전히 물 건너간 지금,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유럽에서 노동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개인들의 정치적 결사, 현장에 기반한 능동적 시민사회, 지방적이면서 동시에 초국가적인 시민민주주의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과 마찬가지로 시민 역시 국민국가의 틀을 벗어나 국경을 넘어 조직화되어 있는 능동적이고 세계적인 시민 사회에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가 “노동”을 통한 민주주의, 취업노동에 참여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의 시대였다면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노동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2005년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근대화의 역군으로 칭송받으며 경제성장의 희생자로, 보통 사람들의 삶의 현실과 그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운동 집단으로, 민주화의 주요한 기여자였으나, 이제 경제성장과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노-노(勞-勞) 갈등의 밥그릇 싸움에 나서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자본가에게 뒷돈을 받아 챙기는 비도덕적인 존재로 지탄받고 있다. 일상화된 실업의 공포와 불안정한 고용구조 속에서 손쉬운 비용절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장집은 “노동은 한 사회 모든 구조물의 기반을 이루는 힘이다. 경제성장도, 시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민주정부도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둔 사회공동체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의 노동'은 곧 위기의 한국경제,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한국사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장집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이 처한 위기의 원인을 노동운동이 서 있는 기반의 협애함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결국 한국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가 사회경제적 이슈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한, 한국 노동운동이 서 있는 보편적 기반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부터 계속되어 온 문제의식 속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엔 외형적으로는 서유럽의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를 포괄하는 사회경제적 현안들을 주요한 정치적 문제로 이슈화하여 시장의 변덕에 좌우되지 않는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장집이 주장하는 근본적 입장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우파적 범주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의 주장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된 바 없는 노동과 노동운동에 사회 통합적 차원에서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할 것을 진지하게 제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일국적 합의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노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과연 자본주의의 바깥은 존재할 수 있는가? 역사는 두 가지 모델을 보여준다. 하나는 소련공산주의, 다른 하나는 제3세계 민족의 발전경험이다. 보리스 까갈리츠끼는 좌파는 이 모델들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 모델들이 얼마나 ‘사회주의적’이었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이 두 모델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출현해 모두 패배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3세계 국가들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동유럽은 이로 다시 돌아왔다. 소련모델과 제3세계의 민족주의운동 모두는 민주주의를 배척하는 희생을 치르고 속성 개발모델을 채택했다. 결국 인권과 자유에 대한 경시가 그들이 패배한 결정적 이유였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1989년에 갑자기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사실 그 중 많은 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잠재적인 변혁의 가능성을 동원할 수 없고, 또 자본주의의 공격적인 선전과 소비자를 현혹하는 감언에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 현재 우리는 동구의 몰락,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가 단지 공산주의 체제위기의 부산물이었을 뿐, 그것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까갈리츠키는 좌파의 부활은 궁극적으로 좌파가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주도세력이 되는데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는 진보 혹은 좌파의 새로운 해방의 기획이 자본주의 세계 질서체제를 철폐하고 정의로운 세계질서로 대체하는 전지구적인 변화와 함께 할 때만 가능할 것이란 말이기도 하다. 진보는 좋았던 과거로부터 시작할 수도, 낡은 미래를 추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점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지금은 잘못된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볼프강 헤볼트, 안성찬 옮김(2003), 승리와 패배-역사를 바꾼 세기의 전쟁50, 해냄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광규 옮김(1995),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헬무트 쉬나이더 외, 한정숙 옮김(1982), 노동의 역사, 한길사
울리히 벡, 홍윤기 옮김(1999),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생각의나무
리오 휴버만, 장상환 옮김(2005),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책벌레
차문석(2001), 반노동의 유토피아, 박종철출판사
에릭 홉스봄 ․ 안토니오 폴리토, 강주헌 옮김(2000), 에릭 홉스봄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 끌리오
제임스 트위첼, 김철호 옮김(2001), 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청년사
한겨레신문사문화부엮음(1995), 20세기의 사람들 - 상권, 한겨레신문사
이영석(2003),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 푸른역사
로알드 달 글, 퀜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2000), 찰리와 초콜릿 공장, 시공주니어
칼 맑스, 프리드리 엥겔스, 김세균 감수(1997), 칼 맑스 프리드리 엥겔스 저작선집 1, 박종철출판사
에릭 홉스봄, 이진모 옮김, 「노동운동의 세기」, 『당대비평』, 1996년 겨울(통권 9호)
스탠리 아로노비츠, 심광현․이동연 편저(1999), 「탈노동선언」, 『문화사회를 위하여』, 문화과학사
최장집 엮음(2005), 『위기의 노동: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후마니타스
보리스 까갈리츠끼, 「1989년, 그리고 동구국가의 미래」, 『창작과비평』1999. 겨울호(통권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