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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미군기지 반환과 오키나와 1.


계간『황해문화』 2000 겨울호(29) <'오키나와의 마음' 평화로운 아시아, 세상을 만드는 힘>, 김동심)-무단 발췌인데 어쩌죠.

오키나와의 마음
오키나와엔 '오키나와의 마음'이 있다. 오키나와의 마음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했을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평화 공원이었다. 한국과 똑같이 전쟁을 경험했지만 전쟁이 끝난 50년 후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한국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국가안보를 위해 군대가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키나와의 많은 사람들은 ' 사람을 죽이는 전쟁연습을 하는 군대와 기지는 필요없다' 고 생각한다.

오키나와의 평화공원에 있는 '평화의 초석'에는 오키나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의 이름을 새기고 추모하며 세계평화를 기원한다. 여기에 새겨진 이름에는 그들에게 총을 쏜 군인들의 이름도 모두 쓰여있다. (창씨개명을한 조선인은 조선 이름을 직접 확인하여 새기고 있다. )전쟁에 가해자로 참가한 이들도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평화사료관을 만들어 전쟁의 경험을 소중한 교훈으로 삼아 후세에 바르게 전하려고 노력한다.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교육하고 실천한다. 때문에 자신을 전 재산을 다 털어 반환받은 미군기지에 평화미술관을 운영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이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종이학과 꽃을 바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다양한 활동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오키나와 평화 가이드네트워크'를 들 수 있다. 평화가이드란 단순한 관광가이드가 아니라 '오키나와 전쟁과 미군기지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1986년부터 시작된 네트워크에서는 현재 60명 정도의 가이드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군이 상륙한 다음날 미군에 포위된 요미탄촌 치비치리 가마(자연동굴)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집단 자결해 82명이 희생되었다. 오키나와 섬에 앞서 미군이 상륙한 게리마 제도에서도 집단 자결이 있었다. 가족끼리, 주민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비참한 이 집단 자결은 "미군 포로가 되면 여자들은 능욕당하고 남자들은 사지가 찢겨 죽임을 당한다" 고 철저히 반복하여 교육받았기 때문이었다.

평화가이드는 이곳에 수많은 학생들, 관광객들을 안내하여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안타까운 희생이었는지, 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는 지를 생생히 설명한다. 그러면 그 학생들은 다음에 종이학과 꽃을 들고 찾아오고 그들을 추모하고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평화가이드 들이다. 그래서 이런 영향으로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연습하는 군대와 기지는 필요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모습은 어떠한가?

한국에는 평화공원이 없다. 단지 전쟁기념관만 있을 뿐이다. 용산미군기지와 붙어 있는 전쟁기념관 야외에는 한국전쟁때 사용되었던 비행기와 탱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말 발디딜 틈도없이 소풍, 또는 견학온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의 몰려들어 그 전쟁무기들을 올라타고 장난치지만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 그저 올라타서 놀기좋은 커다란 장난감일 뿐이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뒤로는 달라졌지만 지난 몇 년동안 지켜본 전쟁기념관 건물의 매달 바뀌는 현수막은 올해까지도 국가안보와 반공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서른살도 되지 않은 필자는 학교에서 평화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반공교육은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오랜 분단, 군사독재, 그로 인한 극단적 민족주의, 국가(또는 전체) 우선주의, 인권차별, 성차별, 폭력적 사고, 반평화적 행동, 상식의 마비 등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95년 동두천에 조사를 갔을 때 어떤 대학생이 "얼마전에 한국남자들이 여자미군 성폭행 했대요? 그거 아세요?" 라며 자랑스럽게 말한적이 있다. 필자가 "그걸 지금 잘한거라고 이야기 하는 거냐?"고 화를 내며 되묻자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맨날 당하다가 우리도 미군한테 한거잖아요?"

1998년 여름에는 여성신학자들의 성폭력에 관한 세미나 포스터를 보고 어떤 진보적이라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 미친년들 이런 쓸데없는 짓 할 시간있으면 민족자주 운동에나 나서라고 그래. 금요집회라도 나오고." 필자와 다른 활동가가 함께 항의를 했는데도 "미친년들" 이라고 세 번이나 이야기 했다.

2000년 8월 13일에는 한양대에서 통일 행사가 열렸다. 그중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유족 증언대회'가 열렸는데 필자를 소개하기에 앞서 사회자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에 역사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노숙자가 미군을 그것도 사병이 아닌 장교를 칼로 찔러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다 미군이 하는 그 영어 단어 한마디를 알아듣고 쓰레기통에 있던 칼로 그 미군장교를 찔러죽인 것입니다. 그 노숙자는 알고보니 민족00대 영문과 중퇴한 분이었답니다." 사회자는 참가자 20-30명이 박수를 치자 목소리를 높여 "" 이 대목에서 박수 크게 안칩니까?" 라고 외쳤다. 그곳에 있던 1천여명쯤 되는 집회 참가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그 다음에 올라간 필자는 "방금 사회자의 말씀에 반대합니다. 미군이라고 해서, 욕한마디 잘못했다고 해서 죽을 이유는 없습니다. 누구도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습니다. 미군이든 한국인이든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똑같이 귀한 것입니다...." 라고 박수받지 못할 연설을 했다.

이렇게 우리는 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차별에 관대해 지는 '상식 마비증세'를 갖게 되었다. 민족의 이름 아래로 성차별, 민족차별, 인권차별, 학력차별 등이 이뤄지고 있다.

개인보다 국가나 전체가 우선하는 예를 보자.

" 하찮은 여자 하나 죽은 것 가지고 한.미 우호관계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

(1992년 동두천에서 미군에게 살해당한 윤금이씨 사건 직후 동두천시 공무원)

"지금 북한에서 잠수함도 내려오고, 말하자면 준전시상황인데 미군범죄 가지고 부대 앞에서 시끄럽게 시위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도움이 안돼. 우리가 미군을 도와줘야 한다니까"

(1996년 이기순씨 살해사건 후 집회신고서 제출할 때 00경찰서 형사)

위의 예는 공무원들의 말이다.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가를 위해 개인은 희생을 해도 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1999년 운동과정 중 20년 넘게 감옥생활을 한 어떤 통일운동가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한국사람들이 미군들에게 더 많이 죽어야 된다니까. 그래야 여론이 형성돼 미군을 철수 시킬 수 있지." "선생님, 그러면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저희는 미군범죄를 줄이고 없애려고 활동합니다." 그러자 그분은 대답은 이랬다.


"모든 역사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야."


국가나 민족을 위해, 혹은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은 희생되어도 될 뿐아니라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군사주의 문화의 내면화로 폭력적인 생각과 반평화적인 행동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살표보자. 미군범죄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미군이 주는 피해에 대해 인터뷰를 하다보면 많은 시민들은 "미군들이 그렇게 문제가 많고 한국인에게 피해를 주니까 미군기지를 오키나와나 괌으로 이전해야 됩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1998년 9월 태백산에서 미공군기의 소음조사를 실시할 때의 일이다. 하루에 300회이상 굉음을 내며 불꽃과 함께 땅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의 사격과 폭격연습을 보고 등산객중 많은 이들이 "야, 멋지다" 라고 했다. 필자에게는 전쟁의 공포를 짐작해 해준 곳이었는데 말이다.


계속해서 매향리 집회에서는 "미군전투기를 격추시키자"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폭탄과 총알을 발사하는 그곳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또 어떤 유명한 단체의 대표는 "내딸이 미군과 함께 다니면 이 자리에서 할복자살을 하겠다" 고 이야기 한다.
모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폭력적이며 반평화적인 것인지 모르고 있다. 그리고 다른이에게 또다른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2001.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