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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니?


사회/ No. 163.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2002년 연말 대선 무렵 이곳 문망에 오르내렸던 글들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그 무렵  문망에서는 진보와 개혁,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들이 격돌했었지요. 오늘 지방 선거 결과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그때는 차라리 행복한 고민이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글을 쓰려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난생 처음으로 대통령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온 길을 반추해가며 살펴보니 간단하게는 아래와 같이 정리되더군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경남 김해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1966년 부산상고를 졸업했다. 197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대전지법 판사를 지내다 1978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1년 시국 사건의 변호를 맡기 시작하면서 인권변호사로 변신해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민주화의 한길을 걸었다. 1988년부터는 정치에 참여해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정치변화를 선도했다. 제13, 15대 국회의원과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고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지역주의의 장벽에 막혀 네 번이나 낙선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현실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2002년 최초의 국민경선제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고, 그 해 12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출처 : http://www.president.go.kr/cwd/kr/president/story/basic.html


사시에 합격하여 한 때는 작은 요트를 마련하여 즐길 정도의 호사를 누리던 한 변호사가 1981년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 대우조선 사건으로 구속되어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5공 청문회 자리에서 논리정연하고 엄정한 추궁과 함께 분을 참지 못하여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는 사건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우리는 이때 그의 순수한 분노를, 아니 우리들의 분노를 대신 몸소 실천하는 그의 열정과 솔직함에 반하였고, 이때부터 그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 될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유명세와 상관없이 그가 걸어온 정치적 행보는 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한 이래로 번번이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노무현에게서 우리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소신을 저버리는 철새정치인들과 다른 올곧음을 보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부산상고 졸업 학력이 전부였던 그는 서울대학교는커녕 그 흔한 대학 졸업장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조차 학연으로 뭉쳐지는 시대에, 그는 스스로에게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될 수도 있었던 지연을 거부하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그에서 순수한 분노와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신념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감동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는 2002년 12월을 앞두고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했던 모양입니다. 근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최고의 권력자를 선출하는 선거에서 정책과 지지 계층을 놓고 볼 것인가? 아니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거부할 수 없었던 인물을 지지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노무현이란 한 개인은 매력적이었고, 당시 우리들의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사회의 기득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지위가 보장된 변호사에서 노회한 3김 시대의 지역주의 정치를 거스르는 가시밭길을 자처하는 그의 순수한 분노가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이던 진보정당에 비해 훨씬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고, 무수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직장에서 그를 위해 논쟁하고, 희망돼지를 모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솔직히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을 곳곳에서 만나며 나도 저들과 함께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며 부러운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연극하는 이들을 부러워하기 마련이지요. 가난하기야 피차일반이더라도 그들에겐 관객의 열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백컨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던 이들의 그 열광과 열정, 호응이 부러웠습니다.

지난 2004년 3월 12일 국회본회의장에서 야당 국회의원 195명 중에서 193명이 찬성하여 진행된 우리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 때 저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끝을 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아직 개표 결과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개표 결과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단 한 차례도 순위가 바뀌지 않은 채 당선 유력, 당선 확정으로 개표 방송이 진행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와 대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열린우리당의 대패는 선거 훨씬 전부터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단 한 차례도 이런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자 고위 당직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 파문에도, 공천비리 파문에도 분위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17대 총선에서 당시 분위기가 열린우리당 일방에게 거의 파란이라 할 만큼 불어갈 때조차도 지금과 같은 몰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민심이 돌변한 까닭에 대해 이제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분석을 하며 향후 정치판도의 변화에 대해 예측하겠지요.

어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과 독선을 비판할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기본적인 성격이 신자유주의적 인데서 그 원인을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의 희생양을 찾아내기 위한 마녀사냥이 시작되겠지요. 당이냐, 대통령이냐? 어떤 한 사람이 배우자를 골라 결혼을 하고 3-4년을 살다가 헤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원인을 따지자면 그 책임은 결국 골고루 돌아가기 마련일 겁니다. 그만큼 당이냐, 대통령이냐는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소모적 공방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굳이 잘못을 논하자면 대통령의 잘못이 더 클 것이고, 그 잘못은 대선 진행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을 권위주의 시대의 대통령 모시듯, 떠받든 사람들, 혹은 무슨 구세주라도 되는 양 대통령 개인을 찬양하느라 입이 닳도록 떠들어댄 숱한 선동가들이 골고루 나눠 가져야 할 겁니다.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표명했었습니다. 그런 이들조차 이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 등을 돌립니다.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지난 3년 3개월여에 걸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이 민중의 삶과 괴리된 채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간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많은 진단과 분석이 있어 왔지만, 저는 그와 같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리더십 분석은 마치 마케팅 이론에서 무수히 많이 등장했던 “모모 리더십” 트렌드와 같이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담론들에 불과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인기와 이미지에 기대어 정치인 개인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대통령은 단순한 인기스타가 아니라 정치인이며, 정치는 우리들 모두의 일상을 지배하고, 영향을 끼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책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대신하여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초반부에 많은 지식인들, 아니 우리들 자신은 슬금슬금 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그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감을 표출하거나 지지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어왔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로 오늘 우리가 느끼게 되는 이 낭패감은 어쩌면 우리들 자신이 자초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여정부는 철학은커녕 생각도 없는 정부였고, 설령 철학이 있더라도 그것을 수행할 정책이 없었고, 정책이 있더라도 어느 정책이 좀더 중요하고, 어느 정책이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하기에 앞서 무조건 올인(all in)하고 보자는 무책임한 정책으로 일관하였고, 그나마도 일관성 없이 추진되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였습니다. 충청, 호남, 경남 일부가 연합하여 영남 고립 전략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것을 따지기에 앞서 그렇게 당선된 대통령이 연일 호남 때리기를 하고, 민주당을 탈당한 대통령이 도리어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괜찮다는 발언을 하며 대연정 제안을 하여 영남 패권주의를 부추겼습니다. 집권 초반부터 애초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이들의 바램을 연달아 실망시켰습니다. 노동 문제가 그러했고, 환경 문제가 그러했습니다. 참여 정부 안에 그 어떤 이도 제대로 된 노동정책전문가가 없었고,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해결할 의지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이렇다 할 대처도, 정책도 만들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휩쓸려 들어가 버렸고, 외교 정책면에서도 처음에는 동북아 균형론을 주장하다가 나중엔 이라크에 앞장서 파병하더니 나중에는 파병을 연장하고, 이젠 평택 대규모 미군기지를 건설하는 데까지 나가버렸습니다.

참여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은커녕 이 정부의 자세를 보면 과연 이 정부가 스스로를 정부로 생각하는지, 시민단체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철부지 같은 정치 마인드 밖에 갖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참여정부의 대언론 정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수구언론과의 싸움에 정부가 직접 나서는 바람에 시민단체들이 수구언론들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 자체가 그대로 정부를 지지하는 것처럼 비추게 만들어 시민단체들이나 언론감시기구들이 제 역할을 못하도록 도리어 봉쇄하였고, 이후 참여정부가 벌이는 수구언론과의 싸움은 연일 수구언론의 좋은 기사거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스스로의 정체성 혼돈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적 좌파"로 규정한 언설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형용 모순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설될 수 있다는 그런 단세포적인 정치가 대립각을 세워야 할 대상에 대해선 제대로 대립각을 세울 수도 없게 만들었고, 친자본적인 정책으로 일관했음에도 자본에게 버림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야 할 순간마다 자신을 지지해줄 세력들을 내치는 정책만을 추진했던 총체적 혼돈의 정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실책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 모든 실패와 패착의 결과가 개혁 세력, 진보 세력 전체의 무능과 정책 부재로 낙인 찍혀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대안들이 유권자들에게 별로 큰 호소력으로 다가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간 우리 사회에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개혁, 진보 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고,(그나마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란 폐지되어야 할 악법이 온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짧은 기간 내에 이 정도 성장세를 보인 것은 괄목할 만한 성장입니다. 그러나 성장 속도는 너무 더디기만 합니다. 어째서 나쁜 정책 집행자를 징계하기 위한 결과가 더 나쁜 정책 집행자를 불러들이는 패착으로 귀결되었는가?

현재도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여당, 열린우리당의 사상 최악의 패배 보다 저를 더욱 절망하게 만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개혁세력을 홀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정당 형태로 진화된 진보정치세력으로서 의미를 둘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당이란 점에서 지난 2002년의 지지율 8.1%에 비해 불과 2.9%밖에 늘어난 11%에 그쳤다는 현실은 한나라당이 거둔 압승과 비교해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의 보수화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듭니다. 또 그동안 민주노동당의 아성으로 인식되었던 울산 지역의 지지율이 오히려 줄어들었고, 울산 동구에서는 민주노동당 대신에 무소속 후보가 구청장에 당선되었다는 점을 민주노동당은 크게 느껴야만 합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과거의 선거에서도 영남의 지역주의는 계속 기승을 부렸고, 호남에서 민주당의 부활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상황이었고, 충청권에서 국민중심당이란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당이 창당된 결과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질기고 질긴 지역주의의 망령이 남아 있습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은 더욱더 지역 현장과 밀착한 정책과 활동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노동판만이 현장이 아니라 대중정당의 진정한 현장은 지역이란 사실, 민중과 직접 대면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은 이번 선거에서 집권 여당의 패배를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무능과 독선에서만 찾아서는 안 될 것이란 점입니다. 이번과 같은 결과를 우리 민족이나 지역의 기질적인 차원에서, 지역주의적 차원에서만 인식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많은 분석을 내놓을 테고, 그들의 분석 역시 진실을 담고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놓치고 있는 한 그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먼저 이번 선거의 결과가 보여주는 민중의 행보를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며, 새로운 생산방식은 이전의 물질적 어려움을 덜어줄 것(혹은 수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세계 체제(질서)는 새로운 생산방식과 더불어 노동과 자본,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재현체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노동의 본질 자체가 변화하거나 자본의 본질 자체가 변화했다기보다는 이를 재현하고, 표상하는 체계 자체의 변화가 새롭게 변화하고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산양식과 물적 토대는 사회구성원들 저마다에게 새로운 사회관계를 수용하던지 아니면 이와 같은 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것인지에 대한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번 선거의 결과를 바라보건데 사회구성원들은 새로운 생산양식에 대해 저항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과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속에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역학관계와 동학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올바로 알아야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Wise Up(올바로)알다 혹은 현명해지다

Aimee Mann
(Magnolia. O.S.T)

It's not what you thought
When you first began it
You got what you want
now You can hardly stand it thought by now you know


네가 생각하던 그런 것이 아냐
네가 처음 그것을 시작했을 때
너는 얻었어 네가 원하는 것을
이제 너는 그걸 견딜수가 없어 그대도 이제 알고 있을 거야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멈추지 않을꺼야 멈추지 않을 꺼야
멈추지 않을꺼야 네가 현명해질때까지

You're sure there's a cure and
You have finally found it you think one drink
Will shrink you til you're underground and living down
but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치유될 수 있다고
너는 마침내 그걸 발견했다고 확신하지
한 잔이면 네가 잠적하고(비밀스럽게 조용해지다) 견뎌낼때까지
피할 수 있을거라 너는 생각하지만
멈추지 않을꺼야 멈추지 않을꺼야
멈추지 않을꺼야 네가 현명해질때까지


Prepare a list of what you need
before you sign away and do the deed
Cause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no it's not going to stop
'til you wise up no it's not going to sop
So just give up

네가 필요한 것들의 목록을 준비해
네가 사라지기전에, 책임을 다하기 전에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멈추지 않을 꺼야 멈추지 않을 꺼야
네가 알 때까지 멈추지 않을 꺼야
네가 알 때까지 멈추지 않을 꺼야
그러니 포기해


<200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