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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고전

위앤커 - 중국신화전설1.2/ 민음사(1999)

중국신화전설 1.2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위앤커의 "중국신화전설1.2"는 본래 대우학술총서 시절에 이미 민음사에서 한 차례 출간한 적이 있는 책이다. 그리고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2002년 역주본으로 다시 민음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는 듯 싶다. 책을 직접 확인해본 것이 아니므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자와 역자를 보니 내 생각이 맞을 것 같다. 민음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상당수는 이렇게 민음사에서 이전에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했던 것을 새롭게 묶은 것들이 꽤 된다. 외국에서 양장본과 페이퍼백을 구분하는 것처럼 민음사에서도 흡사한 방식으로 책을 묶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위앤커의 이 책을 나는 초판(99년2월)으로 가지고 있는데, 지금 것과는 표지 이미지부터 조금 다르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데, 1권에서 다루는 내용은 역사 이전(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의 시대의 신화를, 2권에서는 역사 이후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이는 매우 적절한 구분으로 생각된다. 우리와 같은 근대화(서구화)의 과정을 밟아오고 있는 중국인 탓에 한동안 서구에 의해 중국에는 역사만 있을 뿐 신화는 없다는 폄하도 있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중국의 신화들이 발굴되고, 이에 대한 재해석이 가해지고 있는 터라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중국의 신화는 가장 최근의 신화이기도 하다. 이 책의 1권은 중국판 창세기라 할 수 있는 개벽편, 황염편에서는 중앙상제인 황제를 중심으로 동방상제 태호, 남방상제 염제(신농), 북방상제 전욱, 서방상제 소호 등을 다룬다. 그가운데 핵심은 역시 황제와 염제의 대결, 황제와 치우의 대결이다. 3부에서는 중국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요임금과 순임금 편을 다루고, 4부 예우편에서는 열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중국 신화의 영웅인 예와 달의 미인 항아가 등장한다. 이어 5부는 이제 역사 이전에서 역사로 진입하고 있는 하와 은나라 시대의 이야기가 다뤄진다.


- 신농씨


중국신화전설 2권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에서 진에 이르는 시간대를 다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공자와 묵자 등 제자백가는 물론 중국의 헤파이스토스라 할 수 있는 목공 노반도 등장한다. 이걸 무슨 신화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진시황 시절의 맹강녀, 간장과 막야 등의 이야기는 사실상 신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로마 건국에 얽힌(역사와 신화가 공존하는 시대) 역사까지 아우르고 있으므로 위앤커의 이런 시도가 어긋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중국 신화가 한족의 신화인지, 아니면 주변 다른 민족의 신화와 한데 얽혀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중국의 신화는 그리스로마신화와 달리 아직까지도 연구되야할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신화전설 가운데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부분은 제1장 세상의 시작에 등장하는 혼돈의 이야기와 2권의 묵자와 노반의 이야기이다. 남해의 천제 숙과 북해의 천제 홀은 종종 중앙의 천제 혼돈에게 놀러갔다. 혼돈은 늘 이 두 신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었는데, 어느날 숙과 홀은 어떻게 하면 혼돈의 대접에 보답할 수 있을까 궁리 끝에 혼돈에게 눈,코,귀, 입 등 일곱개 구멍을 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숙과 홀이 이레 만에 일곱 개의 구멍을 모두 뚫자 혼돈은 그만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들고 만다. 혼돈이 영원불멸의 시간을 상징한다면 숙과 홀은 밤과 낮으로 저물고 떠오르는 시간을 상징한다. 숙과 홀이 영원불멸의 시간을 잠재움으로써 우리는 밤낮으로 저물고 지는 시간, 즉 우주와 세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과연 혼돈을 잠 재운, 숙과 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곱 개의 구멍은 어째서 혼돈을 잠들게 했는가? 혼돈이 잠든 뒤 우주와 세계가 탄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걸 궁리하노라면 밤을 새도 모자랄 판이다.

역사와 신화, 문학과 신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상보적인 위치에 놓인다. 신화는 민족의 역사를 보강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지만, 신화 자체가 역사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엿사와 충돌한다. 문학의 뿌리는 신화이지만, 비유로서 은유를 채택한다는 점에서 환유적 이야기 구조를 지닌 신화와 충돌한다. 은유란 언어와 사유, 사물 가운데 서로 겹쳐지는 부분(유사성)을 이용해 제3의 개념(이미지너리)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문학의 중요한 기법이 되어 왔다. 반대로 신화의 세계는 환유의 세계이다. 은유가 보편적인 세계에서 은유(비유)를 통해 내용을 제한하고, 구체화한다면 환유는 하나의 상징이 그와 인접한, 연관된 보편의 세계로 확장해간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라는 은유는 내 마음의 상태를, 호수가 지닌 잔잔함이란 유사성에 빗대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환유는 "조선총독부"란 한 마디를 통해 조선총독부가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해 간다. 이때의 조선총독부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며, 일제 강점기의 역사, 일제 강점의 통치기술, 체제 등을 의미하는 말이 된다. 신화가 환유의 서사구조란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혼돈이 상징하는 걸 분석하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중국신화를 읽다보면 그리스로마신화와 흡사한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건 유대의 신화라고 할 수 있는 구약의 내용과도 흡사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대홍수 신화, 인간의 창조 과정 등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정말 역사 이전의 시대에 대홍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만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따지고보면 전세계적으로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교류가 없는 지역끼리의 신화에서 나타나는 흡사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신화가 인류 보편의 이야기라는 반증이다. 혹자는 역사의 시대가 저물고, 신화의 시대가 시작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역사가 민족 혹은 국가에 한정한 주체의 이야기라면 신화가 지닌 이런 특성, 인류의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데 주목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보편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