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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유하 -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 유하


그대와 나 오랫동안 늦은 밤의 목소리로
혼자 있음에 대해 이야기해왔네
홀로 걸어가는 길의 쓸쓸한 행복과
충분히 깊어지는 나무 그늘의 향기,
그대가 바라보던 저녁 강물처럼
추억과 사색이 한몸을 이루며 흘러가는 풍경들을
서로에게 들려주곤 했었네
그러나 이제 그만 그 이야기들은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네
어느날인가 그대가 한 사람과의 만남을
비로소 둘이 걷는 길의 잔잔한 떨림을
그 처음을 내게 말해주었을 때 나는 다른 기쁨을 가졌지
혼자서 흐르던 그대 마음의 강물이
또 다른 한줄기의 강물을 만나
더욱 깊은 심연을 이루리라 생각했기에,
지금 그대 곁에 선 한 사람이 봄날처럼 아름다운 건
그대가 혼자 서 있는 나무의 깊이를 알기 때문이라네
그래, 나무는 나무를 바라보는 힘만으로
생명의 산소를 만들고 서로의 잎새를 키운다네
친구여, 그대가 혼자 걸었던 날의 흐르는 강물을
부디 잊지 말길 바라네
서로를 주장하지도 다투지도 않으면서, 마침내
수많은 낯선 만남들이 한몸으로 녹아드는 강물처럼
그대도 그대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스며드는 곳에서 삶의 심연을 얻을 거라 믿고 있네
그렇게 한 인생의 바다에 당도하리라
나는 믿고 있네


*

내가 믿는 것은 과연 사람.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이성을 믿는다는 것도, 아니면 인간이 동물이 아닌 어떤 존재라는 사실도 아니다. 단지 그와의 시간과 추억과 공감들을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너를 믿음으로 나를 믿을 수 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옛사람들은 말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이 두 가지의 각기 다른 물성을 지닌 개념과 오브제는 하나의 상징으로 만나게 된다. 솔직히 시험 문제가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마음 아플 줄 안다. 그외도 많은 어려움들이 우리 주변 사람들을 에워싸고 있다는 자명한 현실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로부터 나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위의 시를 읽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세월이 유수와 같은 이유는 그것이 단지 되돌릴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격랑으로, 때로는 거울처럼 투명한 심연의 빛깔로 매양 각기 다른 모양새를 우리를 찾아들기 때문이 또 아닌가?

지금의 난관이 당신의 인생의 든든한 계단이 되어줄 것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고비를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나는 우리가 결국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임을 믿는다.
나는 그대가 잘 해낼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