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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Res non verba

마야 린(Maya Lin) - "베트남전 참전 추모비 The Wall, 1982"



전쟁을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인류 공동체의 커다란 숙제입니다. 우리는 동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을 용산에 건립했습니다. 죽은 이들을 기리고, 희생을 추모하는, 그것을 기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인정하는 공동체 최상층부에 존재하는 국가차원에서 희생자의 추도와 화해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정부의 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교보문고 옆 촛불 시위 장소의 기념비가 공권력에 의해 임의로 철거되는 사태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국가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추모를 통제하려 듭니다. 그것은 이런 희생에 대한 상징성을 국가가 독점하고 통제하려 드는 탓입니다.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전 참전 추모비 The Wall, 1982"를 증거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의 추모비엔 전쟁의 비참하고 추악한 장면은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곳은 1959년에서 75년 사이 베트남에서 실종되었거나 사망한 5만 8천여 명의 남녀 미국인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는 검은 돌담벽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죽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이 새겨져 있는 검은 돌담엔 이를 추모하기 위해 방문한 이들이 비춰보이도록 되어 있고 사람들은 마치 "통곡의 벽"에 선 것처럼 이 자리에 서서 죽은 이들의 이름과 대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마야 린이 설계한 베트남전 기념관은 백악관에 인접한 지역으로 거대한 오벨리스크인 워싱턴 기념물과 링컨기념관 등 미국의 유명한 기념물들이 수직으로 높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마야 린은 이곳에 기념비를 제작하면서 무수한 반대를 겪습니다. 왜냐하면 베트남전 기념관에 국가와 미국의 패트리어트들이 원하는 애국심을 고취한다거나 그들의 자긍심을 부추겨줄 그런 상징성을 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야 린은 "상실이라는 뼈 아픈 현실을 인식하게 될지라도,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은 어차피 각 개인의 몫이다. 죽음은 결국 개인의 사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이 기념물의 내부 공간은 개인의 명상과 심판을 위해 마련된 조용한 장소이다." 그녀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이 미국식 애국의 선전물이 되기를 거부했고, 미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베트남전의 상처와 과오를 직시하는 장소가 되길 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