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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곱씹어 읽는 고전

논어(論語)-<학이(學而)편>07장. 賢賢易色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자하가 말하기를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길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 하고, 부모를 섬기길 온힘이 다하도록 하며, 임금을 섬길 때에는 온몸을 다 바치며, 벗과 사귈 때에는 말에 믿음이 있도록 한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 할 것이다.”


공자의 제자로 공문10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인 자하(子夏, BC 507~BC 420?)는 중국 위(魏, 山西省)나라 출신으로 본명은 복상(卜商)이다. 특히 시(詩)와 예(禮)에 능하였는데, 공자가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다고 한 일화 “회사후소(繪事後素)”<『논어』, 팔일편>가 있었다. 공자의 사후에는 서하(西河)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으며 위나라 문후(文侯)에게 초빙되어 스승이 되었다. 공자보다 44세 연하였는데, 공자가 제자들을 앞세워 보내는 고통을 겪었던 것처럼 자하 역시 자신보다 먼저 자식을 여의는 고통을 겪었다.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한 나머지 실명(失明)까지 했다고 전해진다<상명지척(傷明之戚)>.


「학이(學而)」 6장에 이어 다시 한 번 덕행(德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문의 순서는 예(禮)를 배우고 도(道)를 터득하고, 덕(德)을 밝히고 성(性)을 인식하여 마지막으로 천명(天命)을 깨닫는 것”으로 완성된다고 한다. 공자는 물론 중국의 사상가들 대부분은 지식 그 자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식을 위한 지식’은 무가치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식이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직접 인간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경우조차 그것을 행하는 것이 우선이지 공언(空言)으로 토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사가인 풍우란은 명저 『중국철학사』에서 유교적 전통 속에서 지식이 가진 의미를 다음의 한 마디로 정리해내고 있다.

“만약 누가 성인(聖人)이라면 털끝만큼의 지식이 없어도 역시 성인이며, 누가 악인이라면 무한한 지식을 가졌어도 역시 악인이다.”


서양에서의 우주(自然)와 나(我)를 구분하여 줄기(體系)를 세우는(科學)의 길(立言)로 나아갔다면 동양에서의 학문 혹은 과학이 서양에 비해 발달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한 가지는 우주와 나를 분리하지 않은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은 그 자체로 우주(하늘)의 뜻을 받드는 존재로서 ‘예(禮)를 배우고 도(道)를 터득하고, 덕(德)을 밝히고 성(性)을 인식하여 마지막으로 천명(天命)을 깨닫는’ 것이 학문의 길이었다. 천명을 깨달은 사람이란 하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그의 몸(身, 실천) 자체가 하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그의 실천은 배우지 않았어도 그 자체로 예를 행하고, 덕을 밝히는 것이 된다.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좌구명(左丘明)이 해석한 『좌전(左傳), 춘추좌씨전』에는 “최상의 일은 덕을 수립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요, 그 다음이 주장을 수립하는 것이다.(太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라 하여 역시 덕(德)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大學)』의 8조목(八條目) 중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내성외왕의 도(內聖外王之道)’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 ‘내성’이란 ‘수신제가’ 다시 말해 입덕(立德)에 해당하고, ‘치국평천하’는 외왕에 해당하는 입공(立功)이다. 『논어』에서 말하는 배움 역시 이와 같은 내성의 도를 깨우치는 것이었다.

한자는 뜻풀이가 쉽지 않아 여러 이견들이 있는데 ‘賢賢易色’ 역시 주해(註解)를 다는 이들에 따라 갈린다. 하안(何晏)이나 주자(朱子)는 易를 ‘바꾼다’로 해석하고, 色을 여색(女色)으로 보아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꾼다’고 하였는데 고주(古註)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이라 했다. 또 ‘賢賢易色’을 부부관계의 윤리(夫婦之道)로 해석하여 ‘부인을 얻을 때는 어진 덕을 어질게 여기며(賢賢) 미색은 가볍게 여긴다(易色)’로 풀이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색(色)’이란 단순히 여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자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 중 하나로 공자 스스로도 부정하거나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논어』에서 공자가 색(色)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 것은 「자한(子罕)」 17장과 「계씨(季氏)」 7장 두 군데뿐이다. 그나마도 이것을 부정하기 보다는 절제의 어려움<「자한(子罕)」, 17장>이나 경계하라<「계씨(季氏)」, 7장>는 뜻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정도다.

子曰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공자가 말씀하길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미녀를 좋아하듯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자한(子罕)」, 17장>

孔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典.

공자가 말씀하길 “군자가 경계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젊었을 때는 아직 혈기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여색을 조심하고, 장년이 되었을 때는 혈기가 굳건하므로 남과 다투는 것을 조심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약해졌으니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계씨(季氏)」, 7장>

비록 공자의 제자인 자하가 배움보다는 덕행을 더욱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배움의 뜻이 본질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지 배움을 등한히 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학문을 하지 않고서도 학문이 목적하는 바를 실천한다면 학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의 말  -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아는 자가 으뜸이요 <「계씨(季氏)」, 9장> - 은 공자도 하고 있지만, 공자는 뛰어난 사상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교육자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子曰 唯上知與下愚不多.

공자가 말씀하길 “오직 가장 지혜로운 자와 가장 어리석은 자만이 변하게 할 수 없다.” <「양화(陽貨)」, 3장>

공자는 배우지 않고서도 깨우친 자, 타고난 깨달음을 으뜸으로 쳤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이 그러하다는 상징적인 의미이지 실제로 공자가 항상 염두에 두고 깨우치려했던 이들은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배우려는 자(困而學之, <「계씨(季氏)」, 9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