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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조은 - 동질(同質)

동질(同質)


- 조은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 나 지금 입사시험 보러 가. 잘 보라고 해줘. 너의 그 말이 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밧줄처럼 잡고 있는
추레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잡을 것이 없었고
잡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잠이 들었다

망설이다 나는 답장을 쓴다
--- 시험 잘 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출처: 『황해문화』, 2004년 봄호

*

문득, 잘 사느냐고...
밥은 먹고 지내느냐고 안부를 묻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서럽게 울었었지.

그래, 그래... 걱정하지마...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너는 어때... 그래그래... 밥이 보약이지... 소식없으면 잘 지내는 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래... 나도 너 무척 보고 싶구나

...............뚜우, 뚜우

그렇게 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참동안 멍청하게 있었지.
내 마음엔 왜 이렇게 빈자리가 많은 거냐
속절없이 울먹이면서
그렇게
그렇게
너는 왜 늘 그리도 날 외롭게 만드는 거니....
너는 왜 늘 그리도 내 빈 자리를 파고 드는 거니...

허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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