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마이'란 말은 본래 영화판 용어이다. 우리 문화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일본어 중 하나인데 일본 가부키에 나오는 삼류배우, 시시한 역할이나 하는 배우란 뜻, '삼마이메(三枚目, さんまいめ)'에서 온 말이다.  

나는 비난이나 비판보다 칭찬이 더 무섭다. 내가 칭찬을 고대하는 사람이기에 더욱더 칭찬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나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모든 일을 두려워한다."守株待兎(수주대토)"란 말이 있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풀숲에서 갑자기 한 마리의 토끼가 뛰어나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가 이것을 보고 그 후부터 일도 하지 않으며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토끼가 뛰어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밭은 황폐해져서 쑥대밭이 되고 말았고, 농부는 온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비자(韓非子)'가 유가를 비판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칭찬 그 자체도 아니고, 이익 그 자체도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기대하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우연히 혹은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을 받거나 칭찬을 들었을 때, 그 이후로 또 그런 말이 듣고 싶어서 남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나는 두렵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고 싶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할까봐 두렵다. 나는 나를 알기에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예쁜 것이 두렵고, 착한 것이 두렵고, 돈이 두렵고, 이익이 두렵고, 명예가 두렵고, 명성이 두렵고, 그걸 고대하고, 기대하는 내가 두렵다. 가끔 나를 두고 아깝다 말하는 분들이 있다. 그만하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무엇인가를 누릴 수도 있다며 아깝다 말한다. 나는 내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지금 내가 누리고 사는 것조차 처음엔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동안의 나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사람이며 그런 내가 편집자로 살게 될 줄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도,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던 사람이었고, 나 자신이 나를 열패자로 여겼다.  


얼마전 대학생들 앞에서 나는 '깡패'가 되었으면 딱 어울렸을 사람이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속담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는 거다. 내가 차를 굴리고, 내가 글을 쓰고, 내가 원고청탁을 받으며, 내가 남의 글을 읽고 고쳐주고 그걸 다시 한 계절에 한 번씩 책으로 만든다. 나에게 이것이 모두 기적 같은 일이다. 나는 내가 천상 '천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대학교 앞을 지나갈 때면 공연히 기가 죽는다. 영어 원서를 옆에 끼고 가는 대학생들을 보면 괜히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가끔, 어떤 이에게 '선생' 소리를 들으면 나는 그것이 두려워 귀를 씻고 싶어진다. 나는 '지식인'이 아니며, 다만 '지식을 다루는 노동자'이고,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읽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전업 글쟁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는 직업이 편집자고, 부업으로 글을 쓸 뿐이다. 나는 돈이 좋아서 돈이 무섭고, 편리가 좋아서 편리가 무섭다. 내가 그것들에 길들여지고,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원하게 될까 그것이 두렵다. 기대하게 될까 두렵다. 아니, 꼭 필요한 것인데 필요한 만큼 갖지 못할까 두렵고, 그 이상 갖게 될까 두렵다.  


때로 나는 참 거친 사람이란 걸 확인하기 위해 매우 거친 말들을 사용한다. 투박한 말을 던져놓고는 한 편으론 후회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안도한다. 촌스러운 거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다. 내가 본래 '천것'이며, 앞으로도 내 분수 이상 큰 욕심 부리지 않을 수 있기를 ... 나는 그저 내 삶의 주인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살아온대로 막 그렇게 ... 큰 실수 없이 살기를, 혹여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남들이 눈치 못채게 조용히 지나갈 수 있기를 ... 주목받지 않기를, 놀림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거나,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의 일을 시작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곳에 처음 가게 되는 일은 두렵지 않으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말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까봐 그것이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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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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