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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고전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까치글방(2000)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 이경덕 옮김 | 까치글방(2000)

어떤 학자들의 이름은, 그리고 어떤 학자의 어떤 책들은 다른 이의 책을 읽다가 숱하게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맑스의 원전(독어책을 말하는 건 아님)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서는 맑스가 이런 얘기를 했다더라. 발터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이란 짤막한 논문을 읽지 않았어도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프레이저 역시 그렇게 정작 그의 저작보다는 인용된 문구를 통해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게 되는 학자다. 종종 고전이나 명저를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의 막막함 속엔 그런 알맹이만 쏙쏙 빼먹고 싶다는, 직행하고 싶다는, 나는 앞서고 싶고,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숨어 있다.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류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첫학기, 개강 때 교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난 뒤 의례적으로 갖는 질문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예를 들어 철학 시간이라고 하자.
"교수님! 철학이 뭡니까?"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쉽게 말로 해서 정의되고,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 교수가 무엇때문에 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철학이란 화두를 붙잡고 있겠는가? 가장 쉬운 질문인 듯 싶으면서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질문을 그 학생은 겁도 없이 던진 거다. 대개 이런 질문이 터져나온 강의실 분위기는 요샛말로 싸해진다. 

나는 한 인간의 사유가 발전해가는 건 도표의 곡선이 보여주듯 그렇게 우아한 상승 형태를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피라밋을 바라볼 때 형태가 마치 사선을 그리며 올라가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계단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사유가 발전하는 것이 맞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까이 바라보면 필경 계단을 놓고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듯 하는 것이지 절대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서란 것도 무수한 갈림길과 사잇길을 통한 실패의 미덕이지, 중요한 몇 권의 저서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이 저절로 체득되는 경로를 통하지 않는다. 많이 실패한 자만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않는 한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건, 이 세계만의 미덕은 아닐지라도 이 세계의 확실한 율법이다.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는 피해갈 수 없는 입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출신인 프레이저는 리버풀 대학에서 한 학기동안 사회인류학을 가르친 것을 제외하곤 평생 케임브리지에서 살았다. 그는 E. 타일러, W. 스미스의 영향으로 인해 비교종교학에 관심을 가지고 1890년에서 1915년 사이에 13권에 이르는 "황금가지"를 저술한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The Illustrated Golden Bough)"의 서론에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프레이저의 유년기에 대해 "아버지는 매일 성서의 한 구절을 가족에게 읽어주었지만...<중략>... 이 어릴 때의 체험은 평생 종교심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을 잊지는 않았지만...<중략>...틀림없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그의 왕성한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이저는 인간과 같이 분노하고, 질투하고, 원한을 품고, 싸우는 신화에 감춰진 인간을 닮은 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들은 인간과 닮았으나 결코 인간은 아닌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품는 의도와 삶은 "
논리적이지 않으며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프레이저는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는다. 그 시작이 바로 "황금가지"였다. 황금가지는 이탈리아의 작은 숲에서 시작된다. 디아나(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성스러운 숲 가운데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나무 주위에는 핏발선 눈으로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손에는 누군가를 죽인 칼이 쥐어져 있다. 

그는 디아나 여신을 섬기며 나무를 보호하는 운명을 가진 사제였다. 사제의 지위를 갖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이전의 사제를 살해하고, 대신 사제가 되는 길뿐이다. 그 역시 후계자에 의해 살해될 것이다. 그 나무는 참(떡갈)나무로 황금가지는 추측컨데 그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였을 것이라 한다
.(황금가지는 오비디우스의 시의 한 행에 붙어 있는 이야기라 하는데, 별로 주목하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였다.) 프레이저는 "살해되는 신"이라는 테마를 위해 "황금가지"를 골랐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전세계적인(심지어 우리나라의 사례까지도 포함해서) 사례들을 수집해들였다. 신이 백성을 위해 죽는다. 그것을 모방하여 죽음과 부활을 흉내내는 것이 토템이고, 제의다. 따지고보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토템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다소 불경하게 들릴지라도)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만에 부활하여 그후로 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약속(New Testament)가 맺어진다. 미사(mass)의 성찬 의식은 이 약속을 반복적으로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셉 니덤의 책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 그렇듯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는 모두 13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이 이 책에 접근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 모두를 한 권으로 축약한 두 개의 판본이 있는데 하나는 1922년의 맥밀런판이고, 다른 하나는 1994년의 옥스퍼드판이다. 옥스퍼드판은 지난 2003년 한겨레신문사에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 A Study in Magic and Religion)" 란 제명으로 번역 출간했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 가지"는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세이빈 맥코맥(Sabine McCormack)과 함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170여 장의 도판을 곁들여 정리한 것이다(책 중간에 16쪽의 컬러도판을 수록하고, 본문에도 여러 도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인이 읽기엔 가장 무리가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는 브라질 원주민들과 직접 생활하면서 지은 책이지만,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현장 연구를 통해 보완되지 않은 그래서 "안락의자의 인류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어떤 점에서 제국 전성기 말엽의 영국제국이므로 가능했던 일이다. 참고로 칼 맑스가 "자본론"을 처음 펴낸 것은 1867년의 일이다. 두 사람 모두 대영제국 도서관의 덕을 보았다 할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네미의 디아나 신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관해 축적된 문헌과 여행기, 지인들의 견문을 통해 "황금가지"라는 대저술을 남긴다. 그러나 프레이저의 연구는 무수한 비판 속에서 아니, 그런 비판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이 분야의 살아있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전세계의 민간에 퍼져있는 전설, 신화, 민담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연구에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 생존 방식을 전해준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비교인류학적인 연구는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과 결부되면서 20세기 문학연구, 신화연구, 문화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를 통해 인간의 역사는 마(주)술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종교의 시대로, 그리고 다시 과학의 시대로 발전해갔다고 말한다. 모든 과학자의 원형은 사실 주술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 역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면 명저란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명저는 더 많은 오솔길을 일러주고,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자극을 통해 미로의 입구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호기심에 못이겨 뛰어들게 만드는 걸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