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은 대선 예비후보 검증청문회를 정당사상 최초로 진행했다. 비록 정책대결보다는 상대 후보의 흠결을 따지는 네거티브 방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목이 있었지만, 정당 스스로 후보의 정책과 도덕성을 검증하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후보들이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않았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부인으로 일관해 아무 것도 검증하지 못한 면피용 부실청문회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검증청문회가 있던 다음날 퇴근길에 한 라디오 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양측 대변인의 열띤 토론을 들었다.

평범한 시민들도 전화 참여를 통해 각자 의견을 제시했는데, 청취자들은 청문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도덕성 문제만이 부각되어 능력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고, 결국 도덕성의 문제라면 두 후보 모두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냔 의구심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현실이 과거의 비도덕성이나 특혜, 비리 연루에 연연할 수 없을 만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난국에 빠진 불행한 현실을 개탄했다.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내린 결론은 능력만 있다면 과거의 잘잘못이나 도덕성을 따질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처한 솔직한 현실이자 정치 감각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이념이나 정견에 상관없이 철새 정치인들이 난무하고, 각종 정치 의혹이나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도 지역감정에 힘입어 번번이 재선에 성공한다. 어째서 시민단체의 감시와 고발에도 불구하고 정당에선 이런 정치인들에게 공천을 해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거에서 여전히 경쟁력 있는 정치인들이고, 우리 사회가 유독 정치인들에 대해 관용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신정아 씨의 경우만 하더라도 어떤 이는 이 같은 일들이 빈발하는 원인으로 학벌사회의 폐해를 들기도 하고, 지식인 사회의 도덕 불감증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황우석 전(前) 교수의 논문 데이터 조작 사건,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황라열의 가짜 이력, 한동안 미술계의 베스트셀러 제조기였던 한젬마의 대리집필,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정지영의 대필 번역, KBS 굿모닝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의 학력 위조 사건 등을 모두 그렇게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의혹의 시선은 위로는 대학총장에서 아래로는 학생회장에 이른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자조 섞인 우스개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우스개가 유난히 뼈아프게 들리는 까닭은 이것이 비단 미술계만의 문제도, 특정대학만의 문제도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병리현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시민들의 의식·가치관·문화·도덕 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토록 심각한 훼손을 일으켰을까? 그 원인은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시장을 통한 이윤창출, 경쟁력 강화란 지극히 단순한 원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경쟁력이란 시장에서의 능력을 의미하며 비싸게 팔릴 수 있는 능력은 모든 도덕적 규범을 뛰어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 신정아가 진짜 큐레이터보다 실력은 오히려 뛰어났다”는 이야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오게 되었고, 황우석 교수의 논문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뒤에도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라는 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보복폭행 사건을 일으킨 재벌 총수를 풀어주라는 의견도 결국 경쟁력 강화가 명분이다. 법이나 도덕 보다 시장에서의 능력이 우위에 설 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맺어야 할 건강한 관계는 병들고, 관계에 대한 신뢰는 실종된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느냐고 남에게 물을 일이 아니다. 그 까닭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들 스스로가 속고 싶어 하는 것(Mundus vult decipi)은 아닌지.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2007년 08월 03일 (금)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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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