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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예술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 - 김민수 | 다우출판사(2002)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  - 김민수 | 다우출판사(2002)

1. 8.15는 누구를 위한 해방이었던가?

지난 총선이 있기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계신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을 뵈었는데, 임헌영 선생님은 참 변치 않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다. 머리 위에 서리가 내렸다는 걸 제외하면 당신은 지금 물리적인 나이로 청년인 사람들보다 더 푸른 청춘이셨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우리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얼마전 누더기로 통과된 친일진상규명법과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관련한 예산을 국회가 삭감한 일 때문이었다. 그날 임헌영 선생은 1945년의 8.15를 해방이니, 광복절이니 하는 명칭 없이 그저 '8.15'라고 부른다 하셨다. 우리 역사에서 그 명칭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명칭을 대신하는 일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런데 8.15를 해방도, 광복도 아닌 그저 '8.15'로 불러야 한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 선생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8.15가 해방이라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해방이 아니라 친일파들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8.15란 그저 친일파들이 일본제국주의라는 그들의 상전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지 진정한 우리 민족의 해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투사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분들은 친일파들을 이 땅에서 청산해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과거 그들을 추적하고, 체포하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이는데 앞장 섰던 친일 무리들을 단죄하고 새롭게 해방된 내 땅에서 민족의 번영을 위해 일로 매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은 그런 독립운동가들을 바로 얼마전 출옥한 서대문형무소로 다시 되돌려 보냈고, 그들을 형무소로 끌고 간 자들은 과거 고등계 악질 형사, 일제하 순사들이 대한민국 경찰 뺏지를 달고 다시 수갑을 채워 감옥으로 보냈다.

2. 재임용에서 탈락한 교수. 김민수
이 책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의 저자 김민수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렇듯 장황하게 과거 청산 문제와 친일파 문제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와 뉴욕대학에서 수학한 뒤 모교인 서울대 디자인학부의 교수로 재직했었다. 그리고 그는 1998년 8월 31일 교수재임용에서 최종 탈락했다.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심이 많은 이들은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 탈락이 김민수 선생이나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근거들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내 눈으로 과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판단해볼 생각을 해봤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 "김민수의 문화디자인"이다. 물론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는 "21세기 디자인문화탐사"이다. 하지만 "김민수의 문화디자인"은 뒤에서도 다시 말하겠지만 이 책의 부제가 설명하고 있듯 그의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란 측면에서 그란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책으로 생각되었다.

일반적으로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까닭으로 학교측에서 제시하는 것들은 대개 두 가지이다. 그것은 교수가 교수의 직분에 충실했는가인데, 사회적인 맥락을 제외하고 학교측에서 판단할 수 있는 직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사로서의 교수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자로서의 교수이다. 그렇다면 김민수는 과연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당할 만한 사람인가? 그가 서울대로부터 재임용에 탈락된 표면적인 이유는 연구성과 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를 교수 재임용에 탈락하게 만든 책,『21세기 디자인문화 탐사: 디자인, 문화, 상징의 변증법』(서울: 솔 출판사, 1997)은 같은 해 "월간디자인" 선정 '97 올해의 저술상 수상작이었다. 그가 문학사상사 주최로 열렸던 "이상 사후 60년 집중 재조명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논문 "시각예술의 측면에서 본 李箱 시의 혁명성"은 해외의 권위있는 국제 디자인 학술지인 에 비교문화 연구의 지평을 확장시킨 논문으로 평가받으며 게재되었다. 명목은 연구실적 부실이었지만 그는 학교측에서 제시한 기준의 4배를 초과달성한 연구자였다.

3. 그의 재임용 탈락은 정당한가?
김민수 교수에 대한 학생들이나 동문들의 평가는 어떠할까? 그와 대학 동문이자 기용건축소 소장인 정기용은 어느 글에서 "학생들은 김민수 교수에게서 배우고자 하는데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이다. 가만히 전후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는 모교의 교육상황이 예전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랐"으며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 문제는 결국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드디어 침묵하며 방관해 온 동문들의 입을 열게 하였고 그것은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방학숙제를 하루동안에 해내야 하는 절박함처럼 다가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미술교육에 대하여 숨김없이 말하고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학생들은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을 강력히 주장하며 무학점으로 진행되었던 그의 강의에 동참하였다.

그렇다면 김민수 교수는 어째서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일까?
그는 1996년 10월 17일 개교 50돌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서울 미대의 역사를 다루면서 초대 학장을 지낸 장발, 동양학과 교수출신의 장우성, 노수현 등을 친일파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이것은 김민수 교수가 새롭게 발굴해서 소개한 내용이 절대로 아니다. 이미 지난 92년 전남대 이태호 교수가 발표한 논문 내용을 자신의 논문 각주에 삽입했을 뿐이었는데 그는 괘씸죄의 적용을 받았다. 장발은 4.19 혁명으로 총리가 되었다가 5.16군사쿠테타로 쫓겨난 장면 총리의 형이기도 하다. 이들의 친일 행적은 사학계에서는 이미 검증된 사료이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김민수 교수측에게 문제된 부분의 삭제를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논문집 게재를 거절했다. 결국 2년뒤 미술대 인사위원회는 재임용 과정에서‘연구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김민수에게‘재임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4. 삶과 철학이 있는 디자인 이야기
이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은 '다이달로스는 눈물을 흘린다 - 성찰'편으로, 제2장은 '디자인, 거짓말하며 수작을 걸다 - 발견', 제3장은 '사람의 디자인 - 인터페이스', 제4장은 '다시, 세상 속에서 디자인하기 - 반성과 전환' 이다. 나는 남의 글을 읽으면 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종종 연필과 포스트잇을 동원하는 것으로 대신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책을 읽은 것이 대략 2년쯤 전의 일인데, 다시금 살펴보니 전체 272쪽의 책에 12장의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있다. 첫번째 포스트잇이 붙은 곳의 중요 문구는 이런 것이다. '내 눈을 처음 발견한 날' 이 책의 제1장은 디자인데 대한 자신의 성찰을 드러내는데 할애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그 자신이 미술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그려왔던 석고 데생이 사실은 사물을 새롭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 예술가의 눈에 고정관념의 더깨로 들씌워졌음을 고백한다. 입시를 위한 조형교육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사물을 인이 박힌 대로 윤곽선, 덩어리감, 명암, 반사광 등의 원리에 따라 관찰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포스트잇은 '시간의 켜'란 대목에 붙어 있다. 여기에서 김민수는 비엔나 미하엘광장 3번지에 있는 로스하우스를 둘러보았을 때의 감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로스하우스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친구 아돌프 로스가 건축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벽면에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건축 양식이란 특징을 보인다. 아돌프 로스가 이 건물을 지을 당시만 하더라도 오스트리아는 아르누보 양식의 여파로 장식을 대단히 중시하는 건축 양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건물을 "눈썹이 없는 문둥이 건물 같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20세기의 건축은 로스가 추구했던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저자인 김민수는 그로부터 "역사란 그런 게야!"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로부터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세번째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곳은 이채롭게도 '루쉰과 디자인 정신'이란 글에 붙어 있다. 이채롭다고 말한 것은 솔직히 문과 출신들이 예체능 전공자들에게 지닌 뿌리 깊은 불신이나 편견 때문이다. 한 마디로 "니들이 '루쉰'을 알아"인데, 그것은 우리 학문적 지형의 편협함 때문이기도 하다. 김민수는 "우리의 문화예술이 지난 20세기 박정희 개발독재의 산업근대화 과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토해냈던 '무국적 사생아 문화 만들기'였던 것과는 달리 중국 디자인은 자신의 뚜렷한 목소리와 냄새를 지니고 있다"며 비슷한 시기 서구의 영향 아래 근대화를 추진한 아시아의 두 나라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풍토의 차이를 "사상적 뿌리"의 유무로 파악하고 있다.

네번째 포스트잇은 '디자인으로 세상 읽기 - 단상들'에 붙어 있다. 이곳을 펼치니 서울대 미대 50동 건물 앞에 세워진 장발의 동상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난 1996년 서울대가 스스로 '자랑스런 서울대인'으로 추대한 장발 서울대 미대 초대학장의 흉상 이야기와 운보 김기창 이야기이다. 장발은 1941년 일제에 그림을 그려 바치는 회화봉공을 맹세하고, 내선일체 군민합작의 총력체제를 갖춘 경성미술가협회에 참여했다. 물론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대동아성전에 이바지하는 보국예술가로서 군국주의 찬양에 열을 올렸던 분이다. 그럼에도 국립서울대학에서는 자발적으로 친일하신 분의 흉상을 만들어 세웠고, 그 뒷면에는 그뜻을 기리기리 길이고, 찬양하는 글귀를 새겨넣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는? 혈연, 지연, 학연의 질긴 네트워크 덕이다. 누가 자기 아버지를 욕할 것이며, 누가 자기 스승을 욕할 것인가? 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사실 거기엔 은밀한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다. 친일파는 아직도 힘이 세기 때문에 거기에 빌붙어 기생하면 여러모로 현실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김민수의 문화디자인 = 디자인+언어, 디자인+문화미학, 디자인+인문정신, 디자인+철학자, 디자인+자유
김민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지난 98년의 일이고, 올해는 어언 2004년이다. 그가 행정소송에서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복직되지 못하고 있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단순한 시간 계산으로 치자면 그의 투쟁은 세기를 넘겨오고 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천년, 수많은 학생들이 또 새학기를 맞아 희망찬 기대감으로 들떠있을 때 중세의 감옥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비둘기에 실어 보내며, 고뇌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패거리 문화에 동조하지 않고 단지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것이 그토록 신성모독에 해당한다면 진짜 조폭을 시켜 차라리 나를 죽여다오."

나는 이 책을 통해 디자이너이자 학자이자 한 사람의 훌륭한 지식인으로서의 김민수를 만났다. 이 책의 부제 속에 '삶과 철학'이란 말이 나온다고 해서 이 책이 어려운 것은 결코 아니다. 디자인이란 말은 본래 라틴어의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이 때의 뜻은 "지시하다·표현하다·성취하다"라고 하는데, 이렇듯 디자인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실체를 지닌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디자이너 김민수가 지적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 성취하고 싶어 하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와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민수 선생이 하루빨리 교직에 복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끝으로 의회반란이 있었던 지난 3월 12일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문학평론가 김명인이 <경향신문> 칼럼에 썼던 말을 재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날 따뜻하니까 식민지 아닌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