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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대중문화

재즈를 찾아서 - 성기완 | 문학과지성사(1996)

『재즈를 찾아서』 - 성기완 | 문학과지성사(1996)


"성기완"이란 저자명을 넣고 검색했더니 너무 많은 책이 떠서 깜짝 놀랐다. 그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유리이야기"를 펴낸 시인이자, 음악 분야에 여러 글들을 쓰고, 책을 낸 저술가이자, 동시에 록밴드에 직접 참가하고 있는 뮤지션이자, 또한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호치민" 편 등을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의 번역 작업엔 만화책 "아스테릭스"를 비롯해서 재즈 아티스트 "마일즈 데이비스"의 자서전 등도 포함된다. 다방면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인 건지, 돈이 궁한 건지(이런 불경스런 어투하곤)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났을 때의 느낌으론 짙은 눈썹에 크지 않은 눈, 펑퍼짐한 코에 약간 장발, 그리고 한쪽 귀에만 달린 귀걸이가  어쩐지 서로 잘 어울린다기보다는 느릿느릿한 촌사람이 도회지 옷을 갖춰 입은 것같다는 첫인상을 주었다. 다른 음악인을 취재하던 차에 그는 대담자로, 나는 사진 찍는 사람으로 만났으므로, 요모조모 따져볼 시간은 충분했다. 어쨌든 시인의 외모가 모두 김수영 같거나 같아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재즈를 찾아서"란 책 말고도 나는 요아힘 E. 베렌트의 "재즈북"을 비롯해 십여 권의 재즈 관련 서적들을 읽었다. 우리나라에서 재즈가 돌연 유행했던 것은 지난 90년대 말의 일이었다. 곧잘 재즈 듣기 열풍과 국민소득 2만불을 연계시키곤 하는데, 선진국의 재즈 듣기 열풍이 국민 소득 2만불 시대에 주로 일어났다는 사례 때문일 것이다(물론 확인된 바는 없다). 한동안 그런 재즈 열풍이 불더니 우리 사회에 언제 그렇게 많은 재즈 매니아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여기저기서 숱한 재즈들이 들려오더니, 이와 관련한 책들도 많이 발간되었다. 하기사 그것이 비단 재즈란 음악에만 국한시킬 일은 아니다. 삼국지의 여몽이 했다는 말(刮目相對)처럼 잠시라도 고개를 돌릴라 치면 눈비비고 쳐다봐도 쫓아가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사회의 트렌드는 순식간에 바뀌니까 말이다. 이럴 때 뒤따라 나오는 말이 그런 트렌드들의 경박함을 비난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성까지는 느끼지 못하겠다.

 

"재즈를 찾아서"의 저자 성기완 역시 자신이 어떻게 재즈를 듣게 되었는가를 별도로 밝혀둘 필요를 느꼈나보다. 사실 이렇게 재즈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록 음악을 듣다가 점차 재즈를 듣게 되는 길을 간, 그리고 지금은 아무거나 막 듣는 수많은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처음에는 왠지 슬퍼서 재즈를 좋아했다. 그 때 나는 쓸데없이 우울해하기 잘하는 십대였다. 게다가 지금도 LP를 플레이어에 걸 때면 그 때의 묘한 기분에 젖는, 다른 사람이 잘 모르도록 조용하고 친근한 방식으로 대화를 청하는 소리의 세계에 진입하면서 느끼곤 하던 옅은 들뜸으로 되돌아가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국외자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성기완이 말하는 국외자의 자세는 "재즈를 찾아서"라는 이 책의 제목과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그는 재즈에 대해 다 아는 척하지 않는다(하긴 jazz라는 말의 원뜻과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마다이니 누가 재즈에 대해 아는 척하며 말할 수 있을까). 그 자신이 책을 쓰면서 좀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재즈에 대한 기초적인 입문자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난이도를 가지고 시작한다. 재즈의 정의에 해당할 수 있는 "재즈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해서 하드밥, 프리재즈, 재즈록, 애시드 재즈에 이르는 분화된 재즈 장르를 소개하고, 끝에 가서는 재즈와 영화, 재즈와 문학을 짚어 본다. 참고로 성기완은 2003년에 "영화음악, 현실보다 깊은 소리"란 책을 내었다.

 

앞서의 서평에서 신현준의 "록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을 통사적 접근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한 바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 책 "재즈를 찾아서"는 좀더 통사적인 방식에 근접해 있다. 재즈의 출현으로부터 융성, 쇠퇴에 이르는 과정과 미국, 세계의 사회 변화를 함께 다루어 각각의 재즈 장르가 분화되어온 원인과 결과를 밝힌다. 물론 이 책보다는 앞서 말한 요아힘 E. 베렌트의 "재즈북"이 훨씬 더 전문적이고 자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세계적 명성이란 측면에서도 단연 앞선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하는 이에게 47,000원이나 하는 "재즈북"을 입문서 삼으라고 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그러므로 지금은 편하게 성기완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게다가 이 책이 "재즈북"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는 건 확실하고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 가격을 고려한다면 결코 많이 부족한 건 아니란 점과 콤팩트하면서 소프트하다는 장점을 고려할 때 재즈 입문서로 우선 고려대상에서 제외되는 건 독자 자신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혹시 염려되어 한 말씀 드리자면 베렌트의 책은 이 방면으로 워낙 확실한 명성을 지닌 책이므로 이렇게 비교된다고 해서 누가 되진 않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