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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어린이/청소년

그림책 쓰는 법 - 엘렌 E. M. 로버츠 (지은이) | 김정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2002)


그림책 쓰는 법 - 엘렌 E. M. 로버츠 (지은이) | 김정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2002)


엘렌 E.M.로버츠의 "그림책 쓰는 법"을 읽고 떠오른 단상 몇 가지... 우선 이 책에 실린 엘렌 E.M로버츠의 프로필 사진은 너무 젊을 때 것이 아닌가 하는 거다. 이 책이 쓰인 것이 1981년이고 그 이전부터 20여년간 그림책 전문 편집자로 활동했다니 지금 연세가 어느 정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 말은 웃자고 한 이야기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이 책은 창작에 관한 책이다. 일종의 창작법 책인데 이 방면에 관한 한 나도 꽤 여러 종의 책을 읽었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부터 시작해서 오규원 선생의 "현대시작법", 전상국 선생의 "당신도 소설을 쓸 수 있다", 송하춘 선생의 "발견으로서의 소설기법", 이호철 선생의 "소설창작강의", 린다 시거의 "시나리오 거듭나기",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등등이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아서 언급 못하는 것도 수 종 있으니 이만하면 대문호까지는 못되더라도 뭐 하나쯤은 건져볼 만하지 않겠나?

 

본래 무엇무엇에 대한 "작법"이란 시중의 처세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성격을 지닌다. "카네기 처세술"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리더십 노태우 처세술"까지 세상의 온갖 처세술을 읽는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처세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처세술을 읽는 것과 처세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인데, 처세술을 읽었다고 그대로 처세할 수 없는 것이 첫째요, 처세술 책이란 것이 대개는 바른 말만 하기 때문에 책장을 덮으면 고스란히 날아가버리는 게 둘째다. 이를 창작법 책에 대입해보면 100이면 8에 90은 흡사하다. 자, 과연 그런가?

 

읽다보면 뜻밖에 처세술이란 게 무척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혈액형별 성격 분류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어딜가나 혈액형을 물어보곤 짐짓 무언가 알아챈 듯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것처럼 처세술 도서를 읽고 그대로 따라는 못해도, 이런 자리에선 어떻게 처신할까 정도는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처세술의 재미와 핵심은 누군가의 행동과 말에 대해 의도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분석하는 것이다. 처세술 책을 뭐 꼭 처세에 관심있는 이들만 있으란 법이 없듯이 창작법 책들도 창작하는 이들만 읽으란 법은 없다.

 

그 방면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이해하면 읽기에도 무척 도움이 된다. 흔히 예술을 그 행위 주체로 구분할 때, 창작자와 감상자, 비평가의 구분으로 보는데, 비평가를 뭐 대단한 것으로 보지 않고, 그냥 프로야구 해설자 하일성 씨처럼 생각해보자. 하일성의 야구해설이 재미있는 건 누구나 아는 바다. 그런데 그 양반의 야구 해설이 재미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그 양반의 구수한 입담, 맥을 짚어주는 선견지명일 것이다. 그 바탕엔 그가 창작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의 심리 혹은 경기의 구조를 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법책을 독자가 읽어두면 재미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림책 작가의 의중을 꿰고, 그림책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된다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모범적인 책이다. 아동출판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비평은 시장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동출판물 시장이 그토록 많은 종수를 차지하고 있는 배경엔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하나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좀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은 드물고, 장사는 되니까 좀 심하게 말하면 시장이란 측면에선 눈먼 돈이 돌아다니까 출판물 가운데서도 그만큼 옥석이 뒤섞이게 마련이다. 과거의 가족단위에서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감당해주었어야 할 몫들 - 육아나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 이야기 - 이 초보 엄마, 아빠들에게 떨어진다. 게다가 7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엔 아이들에게 떨어지는 숙제는 사실상 엄마들 숙제나 진배없다. 이제 교육의 최전선은 가정이고, 초보 엄마들이 최일선의 교사들이다.

 

그러다보니 엄마들이 책을 골라주고, 아이에게 읽어주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어허, 그것 참 엄마들이 가정교사이고, 보육원 원장이고, 그림책 평론가에, 이야깃꾼이 되어야 하니 그 하중이 얼마나 크겠나.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좋은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서평을 너무 약장사처럼 쓰고 있나.

 

"에헴, 그렇다면... 뭐 본격적인 약장사 버전으루다가... 이야기해보면,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다년간 그림책 분야에 종사해오신 엘렌 선생께서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신 책으로,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 를 창작자에 대한 가장 친숙한 조언자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의 특장점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책에서 예제로 언급하고 있는 그림책들은 우리 시대의 필독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그림책들로써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책 리스트가 될 수 있으며, 아이들의 독서지도의 지침서로 이용해도 좋을 만큼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과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의 특이한 점 한 가지는 대개의 경우 창작론이란 것이 작가들에 의해 집필되는 것인 반면에 이 책의 경우엔 편집자의 시선으로 다뤄지고 있는 창작론, 다시 말해 창작실무집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작가들의 창작론은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알게 모르게 자기 자신을 미화하고 포장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에 집필자로서의 좀더 구체적인 경험담, 독자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그림책 쓰는 법"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과 함께 읽는다면 참 재미있는 경험일 수 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소설"에 대한 소설인데 책의 구성 자체가 재미있다. "1부-작가, 2부-편집인, 3부-비평가, 4부-독자"로 책 한 권에 얽힌 입장에 따라 다른 각각 다른 주체들의 등장이다. 이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우리나라와 확연히 다른 서구의 출판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로 입문하기 위해선 먼저 신춘문예나 각종 문예계간지, 대회에 입상해야 한다.  하지만 서구에서 소설가로 입문하기 위해선 출판사에 의해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즉, 서구에선 먼저 편집자가 읽고, 출판할 만한가를 판별하고, 그런 뒤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새로 엮어가면서 완성된 소설로 출판한다. 우리나라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문학작품에 대해선 거의 조언을 해주지 않으며, 작가나 시인들도 원치 않는다. 편집자들은 대개 띄어쓰기, 맞춤법 정도의 교정만 한 채 책으로 내보내므로 편집자들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편집자들이 기획력을 발휘한다거나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주로 인문사회과학서들이 주종을 이룬다. 이런 경우에도 대개 한 명의 필자와 공동으로 작업을 하는 예는 드물고, 편집팀이 기획한 것을 여러 필자에게 나누어 청탁하고, 이를 한데 묶어 책으로 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림책 쓰는 법"은 서구의 사례를 든 것이니 당연히 국내의 경우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런 점들을 조금 유념하여 읽는다면 실제로 그림책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도 큰 무리 없는 작법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편집자와 창작자의 긴장이란 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이 책과 실제 우리나라의 그림책 창작자 사이의 가장 큰 간격은 외국의 작가는 7년에 한 작품만 해도 먹고 사는데 별지장이 없는 출판시장을 갖고 있지만(우리는 수입해서까지 보지 않는가?) 우리는 한 달에 한 두편씩은 해줘야 그나마 남들처럼 먹고 살 수 있다는 차이다(물론 돈욕심에 공장차린 이들도 있다는 소문도 들리긴 하지만). 해묵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잘 먹히는 류의 광고 카피는 "내 아이는 남 다르다"는 것과 "내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전자의 경우엔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후자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데, 그림책은 범람하고, 그에 대한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비평은 태부족인 상황에서... 이 책은 최고의 선택은 아니어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