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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김선우 - 이건 누구의 구두 한짝이지?

이건 누구의 구두 한 짝이지?

- 김선우

  내 구두는 애초에 한 짝, 한 켤레란 말은 내겐 폭력이지 이건 작년의 구두 한 짝 이건 재작년에 내다 버렸던 구두 한 짝 이건 재활용 바구니에서 꽃씨나 심을까 하고 살짝 주워온 구두 한 짝, 구두가 원래 두 짝이라고 생각하는 마음氏 빗장을 푸시옵고 두 짝이 실은 네 짝 여섯 짝의 전생을 가졌을 수도 있으니 또한 마음 푸시옵고 마음氏 잃어버린 애인의 구두 한 짝을 들고 밤새 광장을 쓸고 다닌 휘파람 애처로이 여기시고 서로 닮고 싶어 안간힘 쓴 오른발과 왼발의 역사도 긍휼히 여기시고 날아라 구두 두 짝아 네가 누군가의 발을 단단하게 덮어줄 때 한 쪽 발이 없는 나는 길모퉁이 쓰레기통 앞에서 울었지 울고 있는 다른 발을 상상하며 울었지 내 구두는 애초에 한 짝, 한 켤레란 말은 내겐 폭력이지 그러니 내가 만든 이 얼음구두 한 짝은 누구에게 선물할까 두 짝 네 짝 여섯 짝의 전생을 가졌을 구두 한 짝은

<출처> 김선우,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통권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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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선우의 신작시를 읽고 혼자 가만히 웃었다. 아마 내 친구였다면 전화라도 한 통 걸어 이렇게, “지지배, 외롭구나! 밥이나 먹자”고 했을 거다. 비평적으로야 그리 말해선 안 될 일이란 거 알지만 가끔 나 혼자 친구 같이 느껴지는 시인들이 있다. 네이버 ‘지식IN’은 웬만한 지식인보다 더 유능하고, 더 유명하며, 더 신뢰받는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다. 그 지식인에 “한 짝”이란 말을 검색어로 놓고 검색 엔진을 돌려보니 대뜸 이런 해몽(解夢)이 나온다.

“신발은 본인의 지위나 심리적인 부분에서 의지하고 소속감을 갖게 되는 관계의 조직이나 사람을 의미하며 현실에서는 직장, 회사, 조직, 애인의 형태로 현실화됩니다.
이러한 신발의 짝을 잃는 것은 현재 소속된 직장이나 회사에서의 지위가 흔들리거나 위협받는 일, 또는 회사 자체의 어려움, 또는 애인과의 관계에서 본인의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을 경고하는 꿈입니다.
아는 오빠가 권하는 신발이 맞지 않는 것 역시 주변의 도움, 협조나 애인이나 이성친구의 화해 요구, 노력 등이 본인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직장이나 직업의 경우에는 이곳저곳 이직할 곳은 나타나거나 현재 직장에서의 본인의 자리가 있지만 본인이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이니 크게 도움 되지 못하는 형국이네요.
평양 감사도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리 좋은 관계, 지위, 자리이지만 본인이 불만스럽게 생각된다면 소용이 없는 상황입니다.
회사나 현재 이성친구와의 관계에 대하여 경고의 의미가 있는 꿈이니 꼼꼼히 살피시기 바랍니다.”

어째서 양말이나 신발은 한 짝씩만 없어지는 걸까? 그 까닭은 양말이든 신발이든 두 짝 모두 사라지면 우리는 그것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깨우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디가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 까닭은 출발하는 열차에 급하게 오르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그가 나머지 신발 한 짝을 찾기 위해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나머지 한 짝마저 집어던졌기 때문이다.

그는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면 그 신발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나머지 신발마저 던져버리면 누군가는 온전한 한 짝의 구두를 신을 수 있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이 이야기는 간디의 위대함을 전해주지만 동시에 위대함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준다. 위대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질 수 있으나 가지지 않는 사람의 덕성이란 사실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사람의 구두가 되지 말지어다. 통째로 버림받을 수도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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