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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문화망명지의 테마

대문 - 2003.03.22.


BGM : John Lennon - Imagine


우리 말 "속절없다"에서 "속절"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사전에도 잘 나와있지 않다. 다만 "속절(俗節)"이란 말은 제삿날을 제외하고도 세시나 추석, 한식, 단오 같이 철마다 조상을 받드는 제사를 의미한다. 예나지금이나 조상님 받드는데 으뜸인 민족이지만 예전에는 한다하는 집안에서는 달달이 돌아오는 '속절'에도 제사를 모셨다. 조상님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매일반이겠으나 끼니조차 거르는 형편에 속절까지 챙기기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속절에 조상님 모시는 일을 단념하거나 차라리 속절이 없었다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속절없이", "속절없다"는 말은 그렇게 나온 말이리라...

미국이 오랫동안 이라크에 금수조처를 취한 결과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양결핍과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공중보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숨져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구실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드디어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온세계가 이것을 불의의 침략이라고 규탄했으나 우리는, 우리 정부는 이것을 승인했고, 지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제와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독립한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친미국가로 줄을 서고자 했던 것처럼 9.11테러 이후 세계는 다시 한 번 미국 앞에 줄을 섰다.

친구가 아니면 모두가 적(敵)이라는 무자비한 겁박 앞에서 우리는 국제연합(UN)의 승인도, 국제관계의 상식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윤리도 팽개치고 미국의 친구가 되기 위해 앞장섰다. 그 앞에서 나는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자라서 속절없이가 아니었다. '속절없이'란 말은 자신이 그것을 행할 수도, 막을 수도 없어 체념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설움이 담긴 말이다. 나는 이미 벌어진 침략전쟁 앞에서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만 나는 이라크침략에 반대한다는 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이라크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찾았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나의 무기력과 국제사회의 무력함 앞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드디어 이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아니, 사진 속의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분노와 슬픔으로 목이 메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는 썼다.

"나는 전범이다."
"무엇으로도 속죄할 수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