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어린이/청소년

내 친구 루이 - 에즈라 잭 키츠 | 정성원 옮김 | 비룡소(2001)

『내 친구 루이』 - 에즈라 잭 키츠 | 정성원 옮김 | 비룡소(2001)


김종현 감독의 "슈퍼스타 감사용"을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정서마저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 가까운 역사 속의 인물, 과연 패전처리 전문투수 "감사용"이란 실제 인물을 역사 속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무명 투수 감사용에게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과연 나는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닐까? 나란 한 개인은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위인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겠지만, 우린 역사 속에서 민중 혹은 대중의 존재로서 분명히 각인되는 존재들이란 점에서 역시 역사적인 존재들이다. 그런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내 심금을 울리던 한 장면은 이범수가 연기한 감사용의 어머니(김수미)의 가게에서 일어난 한 대목이었다. 감사용의 어머니는 사용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걸 반대해왔고, 사용이 야구를 하든 말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사용은 자신이 패전처리 전문 투수라는 사실을 말할 수 없다.

 

패전 처리를 마치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어머니가 일하는 시장 가게에 돌아온 사용 앞에서 사용의 어머니가 기침을 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없는 꼴찌팀의 패전 처리 전문 투수 사용은 갑자기 짜증이 벌컥 나면서 어머니에게 그러게 병원 좀 가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짜증을 부린다. 손님이 와서 물건을 파는 동안, 어머니는 사용에게 서랍의 약 좀 꺼내달라고 말한다. 공연히 서랍을 벌컥 여는 사용의 눈엔 그간 자기 팀이 가졌던 인천 홈 경기 입장권이 수북하게 쌓인 것을 발견한다. 사용의 어머니는 그동안 말없이 사용이 몸담고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 경기를 모두 보아온 것이다. 사용은 기쁨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감정이 밀려와 고개를 떨군다.

 

단지 왼손 투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 원년 멤버가 될 수 있었던 프로야구 선수 감사용에게 선발 라인업에 끼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한 이상이었다. 그는 이룰 수 없는 이상과 열망을 가졌다. 태어날 때부터 어떤 아이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우리들에겐 누구에게나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장애)를 하나둘씩은 가지고 있다. 상처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며 떠오른 그림동화작가 한 명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즈라 잭 키츠(Ezra Jack Keats, 1916 - 1983)"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부모 마음이야 모두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나오라고 잔소리 하는 걸 나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어디 그뿐이랴만은 그것이 애정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잘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나는 사랑이 뭔지 몰랐으니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공부와 대학을 강조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재벌이 되거나 역사에 기리기리 기억될 위인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건 좋은 대학 나와 판검사, 의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같은 것이 되길 바란다. 꼭 이런 직업이 아니더라도 어른들이 요구하는 건 단지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인이 되는 것 뿐이다. 알고보면 우리나라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품은 소망은 그네들의 잔소리만큼이나 자잘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에즈라 잭 키츠의 아버지도 그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동화작가가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에즈라 잭 키츠는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유색인종을 등장시킨 최초의 그림동화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약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전까지 나는 그저 유명해지기 위한 시도의 일부로 도입된 일종의 기획(컨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에즈라 잭 키츠의 본명은 "야곱 에즈라 카츠(Jacob Ezra Katz)"였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태인 이민으로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급사로 일했다고 한다. 뉴욕 브룩클린의 척박한 살림살이 속에서 화가의 꿈을 키웠던 아들 에즈라, 비록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이긴 했으나, 고등학교 때는 전국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으나 그에게 화가의 꿈을 계속 키워나가라고 격려해줄 수는 없었으리라. 에즈라 잭 키츠가 한창 화가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할 무렵, 그의 아버지가 숨지고 만다. 에즈라는 아버지의 유품인 지갑 속에서 색이 누렇게 바랜 꼬깃꼬깃하게 접힌 신문기사 스크랩 한 장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지갑 속에 든 신문기사는 아들의 미술대회 수상 기사였다.

 

에즈라 잭 키츠의 "내 친구 루이"는 가난하고 허름한 빈민가의 소년 루이가 주인공이다. 에즈라 잭 키츠가 묘사하고 있는 소년 루이의 피부는 역시 백인의 피부색은 아니었다. 어린이 그림 동화에서 색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에즈라 잭 키츠의 작품들은 대체로 어두운 색조, 비교적 짙은 음영의 회색빛과 뉴욕의 오래된 벽돌담을 느낄 법한 갈색이 주조를 이룬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어린이들만큼은 밝은 색을 사용한다. 이 책의 첫 장을 보면 수지와 로베르토의 인형극을 보기 위해 찾아온 어린이들을 수지와 로베르토의 시각에서 묘사하는 구도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지와 로베르토와 인형극을 준비하며 막 사이로 그들 인형극의 두 주인공 생쥐 인형과 구씨(인형)와 함께 인형극의 시작을 기다리며 자리에 앉아있는 루이와 다른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생쥐 인형을 움직이는 로베르토는 올리브그린 빛깔의 모자와 상의를 입고 있고, 구씨 인형을 움직일 수지는 연보랏빛 오버올 치마에 밝은 색 노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맞은 편 의자엔 어린 루이가 앉아 있고, 그 옆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노란 모자를 쓴 소녀가 다른 어린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밝은 주황색 옷을 입고 있는 루이의 두 손은 가지런하게 모아져 있지만 어쩐지 그의 모습은 외로와 보인다.

 



펼친 페이지로 구성된 단 한 장의 그림이지만, 이미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그림 동화일수록 허투루 그려지는 그림은 한 장도 없다. 책의 '댓수'를 맞추기 위한 편의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대개의 그림동화책은 16쪽에서 많아 봐야 24쪽 이내에서 만들어지는데, 그림 동화책이란 것이 보기엔 쉬워보여도 이 작은 분량으로 남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보통의 노력과 재능으론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동화작가에겐 산문적 재능보다는 시적 재능이 좀더 필요하다. 에즈라 잭 키츠의 그림 동화책은 그림만으로 구성되진 않지만 묘사는 그림을 통해, 스토리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에 꼭 필요한 만큼의 지문과 대사가 삽입된다. 
 

 


작품의 내용은 수지와 로베르토가 진행하는 인형극에서 구씨 인형을 너무나 좋아하게 된 어린 루이의 열망을 다루고 있다. 루이는 인형극이 진행되기 어려울 만큼 구씨 인형을 열렬히 좋아한다. 그런 루이에게 수지와 로베르토는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치거나 공연 진행에 방해되니까 나가라고 나무라지 않는다. 수지와 로베르토는 인형의 입을 빌어 루이와 대화를 나누고, 인형극을 진행한다. 인형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루이는 여전히 구씨에 대해 눈을 떼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루이의 어깨는 축처져있고, 그가 걸어가는 뒤로는 높다란 담벼락이 마치 이룰 수 없는 열망의 상징처럼 솟아 있다. 원래 에즈라 잭 키츠는 콜라쥬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선 유일하게 이 장면의 담벼락에서만 사용된다. 전체에서 유독 이 장면이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처리한데는 그만의 암시가 숨겨져 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루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다음 페이지에서 에즈라 잭 키츠는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아이스크림과 그 위에 구씨와 함께 올라탄 루이를 묘사한다. 처음에 나는 갑자기 등장한 아이스크림에 놀랐는데, 시 작법상에서도 그렇지만 그림 동화 안에서 등장하는 상징이나 비유는 작품 전체의 구조 안에 이해될 수 있는 것을 선택할 때 더 큰 파급력을 지닌다. 맨 처음 장면에서 함께 인형극을 보며 옆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던 노란 모자의 소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이란 사실을 안 순간, 나는 에즈라 잭 키츠의 그 솜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스크림의 색깔과 녹아내린 모양까지 똑같았다. 이렇듯 그림 속에 녹아난 소년의 외로움에 대해 이보다 적절한 묘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에즈라 잭 키츠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감사용이 박철순과 벌인 대결은 너무나 가슴 벅찬 것이었으나 결국 감사용은 박철순에게 패하고 만다. 다음 장면에서 루이는 끝없는 추락을 경험한다. 펼친 페이지의 왼쪽 면에 지문이 있고, 오른쪽 페이지의 맨 하단 부위에 추락하는 루이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책의 판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가장 끝없는 추락인 셈이다. 잠시 몽상의 대가로 루이는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루이는 자기도 모르게 맨땅에 엎드린 채 팔 다리를 흔들며 허공을 허우적대고 있었고, 아이들은 그런 루이를 놀린다. 몽상이 아름다운 만큼 그 뒤에 오는 추락과 현실은 더욱 끔찍한 것이다. 하지만 에즈라 잭 키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구원이랄까, 소원 성취는 그만큼 아름답다.

 

엄마가 물었지. "루이야, 뭐 하고 있니?"
루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 꿈 때문에 아직도 슬펐거든.
엄마는 다가와서 말했어. "루이야, 누가 너한테 쪽지를 써서 문틈으로 넣어 두었구나."
쪽지엔 이렇게 적여 있었지.

"안녕! 안녕! 안녕!
밖으로 나가서 녹색줄을 따라가 봐."

루이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봤어.
<본문 중에서>

 

마지막 엔딩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끔찍한 스포일러가 될 듯하다. 미리 조금만 이야기해둔다면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의 해피 엔딩일 수도 있고, "에게, 고작 이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나에겐 감사용이 박철순을 이겼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흐뭇해지진 않았을 거란 말쯤은 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