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길 “좋으나 가난하여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하길 “시에 이르길 ‘깎고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길 “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가는 것을 말하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





「학이」 10장에서 공자의 제자들 중 자공과 자로(子路, BC 543~BC 480)가 없었다면 『논어』가 지금처럼 생생한 재미를 선사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자공(子貢)은 공자의 물질적인 스폰서로서 공자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던 자로(子路)와 함께 『논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인물 중 하나이다. 성인이기 전에 먼저 교사(敎師)였던 공자를 잘 드러내는 말은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가 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이다.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군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를 통일하여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



맹자는 세 가지 즐거움을 이야기하면서 왕이 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앞뒤로 두 차례나 강조하고 있다. 사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은 단순히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나마 주 왕실에 대한 겉 치례 예의라도 갖추려 했던 춘추(春秋)시대에 비해 날 것 그대로의 패권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전국(戰國)시대의 인물이었던 맹자는 패도(覇道)를 추구하는 군왕에게 먼저 사람이 되라고 질책하기 위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 것이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첫 번째는 하늘이 내려 준 즐거움으로 부모의 생존은 자식이 원한다고 하여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써 즐겁다는 말이다. 두 번째 즐거움은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강조한 것으로, 스스로의 인격 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세 번째 즐거움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즐거움으로, 즐거움을 혼자만 영위할 것이 아니라 남과 공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 즐거움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마지막 세 번째 즐거움은 타인과 나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즐거움이자 의지가 필요한 일이란 점에서 대승(大乘)적인 즐거움이다.



자공은 중국 최초의 재벌이었다는 평을 받을 만큼 이재에 능했고, 공자의 유세가 가능했던 까닭도 자공의 경제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후세의 평가가 있을 만큼 공자가 학파를 형성하고 오늘날의 명성을 얻는데 크게 기여한 제자였다. 또한 자공은 말하기를 즐겨하고, 스승인 공자에게 따져 묻기를 즐기되 늘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던 속내는 자신이 이처럼 기여한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드러내 자랑하지 않으며 스승을 모시는 것에 있어서도 늘 겸손하였던 바를 칭찬받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공의 “貧而無諂 富而無驕(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다)”라는 말은 빈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이 생각해줄 일이긴 하나 결국 빈부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자는 향원(鄕愿)을 싫어했다. 선을 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 보았던 공자는 자공에게 그것도 괜찮은 일이긴 하지만 아예 빈부에 얽매임 없이 사는 즐거움이라는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貧而樂 富而好禮(가난하여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한다)”라고 답한다.



공자는 『논어(論語)』 「옹야(雍也)」편(18장)에서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의 경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는데 이 때의 호(好)와 앞의 낙(樂)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떼어낼 수 없는 사랑(合一)의 경지를 의미한다. 공자는 자공에게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러자 자공은 곧바로 스승의 말을 알아듣고 “시에 이르길 ‘깎고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한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군요.”라며 시의 비유를 들어 답한다.



자공이 인용한 구절은 『시경』 위풍(衛風) 기욱(淇奧)의 첫 장에 나오는 것으로 주나라가 동천(東遷)할 때 공을 세운 위나라 무공(武公)을 찬미한 시다.



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咺兮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기수의 물굽이 바라보니 푸르른 대나무 우거졌도다

우리 님은 구슬을 깍아 다듬은 듯 쪼고 간 듯이 위엄있고 너그럽도다

빛나고 의젓하며 아름다운 우리 님을 끝내 잊지 못하겠네




“如切如磋 如琢如磨(자르고 다듬어 쪼고 간다)”라는 구절에서 여(如)자를 뺀 것이 “절차탁마(切磋琢磨)”다. 『대학』에도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자르듯하고 쓸 듯함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요, 쪼듯하고 갈 듯함은 스스로 닦는 일이다)”라고 하여 절차(切磋)는 학문을 뜻하고, 탁마(琢磨)는 수양을 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공자는 자신의 뜻을 헤아리고 더 나아가 시(詩)를 인용하여 답을 하는 자공이 대견했을 것이다. 하여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가는 것을 말하니 오는 것을 아는구나).”라고 칭찬한다. 그것이 공자의 즐거움(君子三樂)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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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