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

'君子不器'라 했다. 나는 <그릇1>이 오세영 시인의 시론을 보여주는 시라 평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절제와 균형은 그의 시세계를 이루는 대위법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중심이 도사리고 있다. 표현은 중심에서 어긋나지 않으므로 파격적인 표현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엔 언제나 힘이 있다. 까닭은 오세영의 시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중심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君子不器하므로 그의 시는 절제와 균형의 대위법으로 구성되면서도 부드러운 중심을 지닌 팽이처럼 힘차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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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