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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함민복 - 만찬(晩餐)

만찬(晩餐)

- 함민복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

누가 요즘 쓸쓸하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고독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노라 했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란 말이 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 젊어서 남편 없는 사람, 어려서 어버이 없는 사람,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맹자가 했던 말인데 그는 주(周)나라 문왕의 사례를 들어 어진 정치를 베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더이상 나는 어리지 않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 나의 고독은 그런 외부적 환경에 의한 고독이라기 보다 내 마음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여 오는 고독일 게다. 혼자 산다는 것의 쓸쓸함을 나는 안다.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고 10대 때부터 집 떠나와 홀로 세상 정처 없이 10여 년 넘게 떠돌아다닌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의 쓸쓸함을 모를 수 있겠나.

시인 함민복은 누군가 지인이 보내준 반찬을 놓고 마음이 그릇이고, 햇살처럼 따사로운 마음을 마음으로 먹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이 어찌 저 따사로움뿐이랴. 내어놓을 수 없어 너덜거리는 마음을 반찬삼아 마음으로 마음을 삼키는 저녁이 없었으랴.

그래서 나는 함민복 시인의 저녁 밥상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을 웅크리게 된다. 그를 알고, 나 역시 홀로 산다는 것을 알기에....



* 렘브란트 - 엠마오의 그리스도 / 1648년 / 캔버스에 유채 / H. 42 cm, W. 60 cm / 파리 루브르박물관
렘브란트는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가 예루살렘 부근의 작은 마을인 엠마오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두 제자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로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렸다. 렘브란트가 이 이야기에 주목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나는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최후의 만찬은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죽음에 대해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식사. 인간의 진정한 업보이자 원죄는 먹는 일에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다른 뭇생명을 섭취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는 더이상 밥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을 테니...

** 어쩐지 민복이 형의 홀로 먹는 이 만찬에 어울리는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니라 렘브란트여야 할 것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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