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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곱씹어 읽는 고전

논어(論語)-<학이(學而)편>16장.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공자께서 말씀하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정초에 올해는 『논어(論語)』 공부를 목표로 삼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5월말이 되어서야 「학이(學而)」편 마지막 장을 살펴보고 있다. 처음부터 허언(虛言)이 될 줄 알았다지만, 먼저 말부터 하지 않고서는 그나마 스스로에게 한 약속조차 지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부터 앞세웠으나 그것을 변명삼지는 않겠다.




「학이(學而)」편 첫 번째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학이(學而)」편의 처음과 끝은 수미일관(首尾一貫)하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며 배우고 익히는 것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고, 그 가운데 벗이 멀리서도 찾아와 준다면 그것이 곧 나의 즐거움이다.’



얼마 전 나는 성공회대에서 매년 개최하는 매스컴특강에 강사로 초빙되는 영광을 안았다. 성공회대의 매스컴특강은 해마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나름의 일가를 이룬 여러 사람들이 초빙되어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강의 내용을 녹취하여 그것을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그런 자리가 나에게까지 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대단한 영광이고 한 편으론 커다란 부담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나는 이런 특강이 요사이 젊은 대학생들이 목을 매고 있는 자기계발식 담론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자신을 계발한다는 논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며 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자기계발론은 사회모순이나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실업과 빈곤의 문제까지 자기책임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돌베게, 2004)에서 “노예제 사회에서는 학습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앞서 공자의 시대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 시대는 전통적인 종법(宗法)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던 격변기였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교육자로서 공자의 위대함은 그가 신분질서에 구애받지 않고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교육의 혜택을 베풀었던 최초의 전문 교육자였다는 점이다. 고대노예제 사회의 지배계층은 혈연으로 지위와 권력이 승계되었으며 처음부터 지배계급으로 양육되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교사가 노예 신분이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으며 동양에서도 노예제 사회하의 지배계급 역시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개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졌으며 엄격한 위계질서에 의해 통제되던 시대에는 학업에 의한 결과로 신분이 상승하는 일도 매우 드물었다. 이런 시대에 학습이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학습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시대는 전통적인 종법질서가 붕괴되던 시대였으므로 출신이나 신분의 고하가 아니라 실력이 가장 중요하고 우대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춘추전국(春秋戰國),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는 백성들이 전쟁과 부역으로 도탄에 빠진 시대였지만 다른 한 편으론 그동안 백성들을 억누르고 있던 종법질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신분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공자 자신도 식읍(食邑)을 봉토로 받는 대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공자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와 같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고대노예제 사회처럼 신분이 고착된 상황일까? 아니면 춘추전국 시대처럼 자유로운 신분 상승이 가능한 시대일까? 이런 시대의 학습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 시대를 좀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본다면 세계적으로는 춘추전국시대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고대노예제 사회처럼 신분이 고착되어가는 상황처럼 보인다.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秦)이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붕괴한 까닭은 여럿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봉건적 토지제도에 바탕을 두었던 정치경제구조를 급격히 군현제(郡縣制)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충격을 흡수할 만큼 체제가 유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네구멍가게를 하던 이들은 비록 영세하지만 어딜 가도 소상공인이었고, 사장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SSM(Super Supermarket)이 동네 구석구석까지 차지하고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몰락해 버리는 것처럼 전국 시대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귀족이자 지배계급에 속했던 사람들이 일거에 몰락해버리면서 그에 따른 불만과 불안요소가 팽배해졌다. 그러나 통일 이후 진(秦)이 시행했던 급격한 사회개혁에는 아무런 완충장치도 없었다.



세계화 이전과 이후 제조업의 이윤율이 저하되면서 자본은 자본의 집중으로 이윤을 창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양극화는 진의 군현제와 마찬가지로 과거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들을 급격히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고, 과거 노동계층에 속했던 사람들은 고용과 해고의 유연화를 명목으로 비정규직이 되었다. 좋은 직장은 점차 규모가 축소되었고, 이제 젊은이들은 땀 흘려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상황(working poor)에 내몰리고 있다. 사회적 신분상승(좋은 직장)의 길목은 좁아졌지만 이를 추구하는 이들은 줄지 않았으므로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려 하는 경쟁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미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은 이를 대물림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교육 불균등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시스템이 취약한 데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취업이나 학업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도 출현하고 있다.



공자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했다. 공자의 말은 나의 실력만 출중하다면 언젠가 자신의 실력을 알아줄 사람이 있다는 말이지만 지금의 사람들에게 이 말은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에 대학 4년을 다니면 공부하는 기간만 16년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 그 대부분을 우리는 공부로 지새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회에 나오면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나는 공자의 저 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말의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실력만 있다면 언젠가 다른 이가 알아줄 날이 온다는 의미 말고 좀더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현대의 교육은 대부분 직업교육이 되어 버렸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인생의 목표를 가지고 살 것인가?를 배울 기회는 사라졌고, 지금의 교육은 의식주를 마련하는 것이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인 것처럼 배운다. 물론 우리의 육체는 물질이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물질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16년간 열심히 공부했는데 당장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갈 데가 없고, 취업을 했다손 치더라도 기껏 인턴이고,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어도 사오정, 오륙도가 되어버리면 우리의 삶은 참 하잘 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본인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은 도처에 있고, 우리 사회는 그것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주식 가격이 떨어졌을 때 대한민국 1%에 속한 사람들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자녀들에게 주식을 물려줘서 7살짜리 아이가 230억원어치 주식을 증여받았다고 한다. 잘못된 자기계발론, 다시 말해 지금까지 내가 아닌 남을 겨냥해 해왔던 공부는 결국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착시 현상에 빠뜨릴 뿐이다. 자기 혼자만의 입신출세를 위한 사다리 경쟁은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내 안의 이기적인 자아가 나의 참된 자아를 착취하는 악순환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



공자가 「학이편」에서 가르치려 하는 것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며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며 배우고 익히는 것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고, 그 가운데 벗이 멀리서도 찾아와 준다면 그것이 곧 나의 즐거움’이란 것이다. 공부와 놀이에는 공통요소가 있다. 멀리 우회할수록 성취했을 때의 만족도가 커지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판소리 “흥보가”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 중 하나는 놀부가 화초장을 얻는 대목이다. 놀부는 화초장 하나를 얻고 너무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화초장 이름을 기억하려고 계속 외운다.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얻었구나. 얻었구나. 화초장 한 벌을 얻었다. 화초장 한 벌을 얻었으니 어찌 아니가 좋을소냐.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또랑 하나를 건너뛰다, 아뿔까, 잊었다. 이것 무엇이라고 허등만요? 응, 이거 뭐여? 뒤붙이면서도 몰라, 초장화? 아니다. 장화초? 아니다. 화장초?”



그런데 놀부는 개울 하나를 건너다 그만 화초장의 이름을 까먹어 버린다. 놀부는 가진 거라곤 물욕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화초장의 이름을 까먹는 순간부터 화초장은 더 이상 금은보화 같은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 된다. 놀부가 화초장의 이름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화초장은 욕구와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니다. 어따, 이것이 무엇인고? 간장, 고초장, 꾸둘장, 방장, 송장? 아니다. 어따, 이것이 무엇이냐? 천장, 방장, 꾸둘장? 아니다.”하면서 놀부는 화초장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제법 먼 길을 돌아간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에게 “얼른 썩 알아맞춰, 죽이기 전에”라고 말하면서 묻습니다. 놀부 마누라가 “이전에 우리 친정 아버지가 그런 걸 보고 화초장이라고 허던구마”라고 말하자 “놀보가 어찌 반갑던지, 아이고, 내 딸이야!”라고 말한다. 욕심쟁이 놀부지만 그 순간만큼은 공부의 즐거움에 흠씬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는 공부를 무엇보다 큰 즐거움으로 여겼지만, 이때의 공부는 입신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앎을 사랑하는 일이었으며 이때의 앎이란 지인(知人), 사람을 아는 것이며, 사람을 알고자 하는 까닭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것(愛人)이고, 애인(愛人)이 바로 공자의 인(仁), 군자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 「안연(顔淵)」 22장



우리는 남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공부하지만, 그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배워서 다른 이에게 나눠주는 즐거움(樂), 다른 이를 사랑(愛)하는 인(仁)을 통해 삶(生)을 즐기는(好)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