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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도종환 - 늑대

늑대

- 도종환



너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편안한 먹이를 찾아
먹이를 주는 사람들 찾아
많은 늑대가 개의 무리 속으로 떠나가는데
너는 왜 아직 산골짝 바위틈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불타는 눈빛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
번개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달려가던
날카로운 빛으로 맹수들을 쏘아보며
들짐승의 살 물어뜯으며
너는 왜 아직도 그 눈빛 버리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일까
여름날의 천둥과 비바람
한겨울 설한풍 피할 안식처가
사람의 마을에는 집집마다 마련되어 있는데
왜 바람 부는 들판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서 늑대를 본다
인사동 지나다 충무로 지나다 늑대를 본다
늑대의 눈빛을 하고 바람부는 도시의 변두리를
홀로 어슬렁거리는 늑대를 본다
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외로운 정신들을.


*

떠돌이 생활 3년 만에 다시 학생이 되었을 무렵 내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모두가 연모해 마지않는 시 쓰는 아리따운 교수님의 고임을 받았고, 그것은 나만의 은근한 자부심과 자만심을 부채질하는 일이었다. 2년짜리 대학에서 1년을 보낸 뒤 교수님이 불러 내게 말씀하길...
 

'너는 고독한 마라토너의 눈빛을 지녔다....그런데 어째서 시를 쓰지 않느냐고...'

그 말씀의 끝에 내 혀끝을 감도는 말이 있었으나 끝끝내 내뱉지 못한 한 마디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늑대 같은 사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개 같은 사내였노라. 
누군가 살짝 코끝만 쓰다듬어 주어도 금방 따라나설 태세를 갖춘...누군가에게 버림받아 다신 마음 내어주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한...'

오랜 세월이 흘러 늑대냐, 개냐하는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간 폼잡는 질문은 시를 쓰는 일과 무관하단 걸 알게 되었다. 시를 쓴다는 일은 사랑하는 일과 같다. 사랑은 사랑에 대해 묻지 않을 때만 사랑일 수 있듯 시를 쓰는 일은 왜 시를 쓰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 시가 될 때만 시가 된다.  

그 눈빛은 만든 것도, 생겨난 것도 아닌 내가 잠시 지니고 있던 어떤 삶의 무게였을 테지...이제 더이상은 내 것이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