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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과학/생태

자발적 가난 - E. F. 슈마허 외 지음 | 골디언 밴던브뤼크 엮음 | 이덕임 옮김 | 그물코(2010)


자발적 가난 - E. F. 슈마허 외 지음 | 골디언 밴던브뤼크 엮음 | 이덕임 옮김 | 그물코(2010)



환경과 생태를 전문분야로 하고 있는 그물코에서 지난 2003년에 펴냈던 책 『자발적 가난-덜 풍요로운 사람이 주는 더 큰 행복』을 재출간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번이 세 번째 개정판 같은데, 흔히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생태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E.F.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한 사람만의 글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자발적 가난』은 골디언 밴던브뤼크가 편집한 것으로 “Less is more(결핍이 오히려 많은 것이다)”라는(본문에서는 “적은 것이 오히려 많다”고 번역하고 있지만)라는 슈마허의 생태적인 명제(?)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 J.K.갤브레이스, 이반 일리히 같이 잘 알려진 인물들을 비롯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사람들을 두루 포함한 - 말들을 엮어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연말이면 누구나 하나쯤 얻어가질 수 있는 - 명언이 수록된 - 공짜 다이어리는 아니지만, 길게 리뷰를 늘어놓을 성질의 책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결론도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이번 설 연휴 때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자주색과 연분홍색이 어우러진, 에어컨과 파워 핸들과 파워 브레이크가 달린 자동차를 타고 그 가족은 나쁜 도로를 따라 쓰레기와 좀먹은 빌딩으로 추레한 모습을 한 도시를 지나 야유회를 간다. 그들은 곧 상업적인 건축물 때문에 거의 제 모습을 잃은 시골길을 지나친다. 그들은 오염된 시냇물에 담가 두었던 휴대용 아이스박스를 꺼내어 그 속에 담긴 포장 음식을 먹으며 소풍을 하고 밤을 보내기 위해 공중건강과 도덕에 위협적인 공원으로 간다.
썩어가는 폐물들의 악취 속에서 나일론 텐트를 치고 매트리스에서 졸기 직전에, 그들은 희미하게나마 이 신기한, 들쭉날쭉한 축복을 반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현대적 정신인가?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본문 204쪽>


 

제논은 그가 가진 유일한 배가 화물과 함께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말했다.
“운명이요, 나에게 자비를 베푸는구나. 넝마 조각으로 된 옷과 철학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구나.”
그는 편히 쉴 수 있었고, 방해받지 않고 산책하고, 읽고 잘 수 있었으며 디오게네스처럼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포스 왕이 허락할 때만 먹을 수 있었다. 디오게네스는 아무 때나 자기가 원할 때 먹을 수 있었다.” - 플루타르크 <본문 101-102쪽>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꿈꾸는 시대, 잠시동안만이라도 디오게네스가 되어보면 안될까? 끝으로 한 마디 더 하자면 『자발적 가난』의 서문은 E.F.슈마허가 썼는데, 이 책을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그의 글을 읽고 난 뒤 전문(全文)을 타이핑으로 고스란히 옮길 만큼 아주 좋았다. 이 역시 맛보기로 일부만 소개해본다.

 

그러므로 생존을 위해선 직선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과 대비되는 논리인 곡선 논리는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
‘적음이 곧 많음’이라는 말은 오직 곡선논리로써만 이해가능하다.

삶에 있어서 곡선 논리의 발견보다 더 즐거운 발견은 없다. 적음이 많음이라는 논리는 당신을 해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더 적게 요구할수록 걱정할 필요도 적어진다. 그리고 더 적게 염려할수록 당신을 둘러싼 온갖 관계들도 더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당신은 쥐들의 경주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경제적으로 대단히 성공할 필요도 없다. 설사 담배에 붙는 세금이 오르더라도 당신이 담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걱정할 게 뭐가 있는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것,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단순한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이 네게 해주길 바라는 것을 그들을 위해 행하라.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 모든 것을 시험해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들어라.

왜 이 말들처럼 한 번에 핵심에 이르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가? ‘이것’이 바로 삶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많은 게 더 많다’는 논리는 우리가 진실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본문 10~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