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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고은 - 어느 소년 소녀의 사계가(四季歌)

어느 소년 소녀의 사계가(四季歌)

- 고은





네 작은 무덤가에 가서 보았네
가장 가까운 아지랑이에
낯선 내 살의 아지랑이가 떨었네
겨우내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로 보이는 그 마을의 슬픔
버들옷 뿌리 기르는 시내가 흐르네
어느 날의 봄 비오는 괴롬을 마감하려고
내 봄은 어린 풀밭가에 돌아왔는지
봄에는 네 무덤조차도 새로 있었네
그렇지만 나는 무언가 좀 기다리다 가네



여름


네 어릴 때 가서 살아도 아직 그대로인
한 달의 서해 선유도(仙遊島)에 건너가고 싶으나
네가 밟은 바닷가의 단조한 고동소리
네 소라껍질 모아 담으면
얼마나 기나긴 세월이 그 안에서 나올까
나는 누구의 권유에도 지지 않고 섬을 그리워하네
언제나 여름은 어제보다 오늘이고
첫사랑과 슬픔에게 바다는 더 푸르네
옛날의 옷 입은 천사의 외로움을
이제 아주 잊고 건너가지 않겠네 건너가지 않겠네



가을


내가 내리고 떠난 시골 역마다
기침 속의 코스모스가 퍼부어 피어 있고
네 눈시울이 하늘 속에서 떨어졌네
밤 깊으면 별들은 새끼를 치네
네 죽음을 쌓은 비인 식탁 위에서
나는 우연한 짧은 편지를 받았네
편지는 하나의 죽음, 하나의 삶
나뭇잎이 스스로 자기보다는 바람에 져야
가을 풀밭 벌레는 화려하게 죽고
이토록 네 지문(指紋) 같은 목소리의 잎이 지고 있네



겨울


너의 뼈가 누운 겨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네 무덤가에 돌아가서
세상을 떠올리면서 변한 연필도막으로 쓰고
더 쓸 것이 없어서 눈물이 흐르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神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아무리 잘 견디었던 어릴 때의 추위도
눈이 오면 너에게 대해서 너만한 것이 되어
이제는 네 죽음에서나 나는 잠들어야 하겠네

*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젊은 날의 고은은 데카당스(decadence)했다. 우리 말로 '쇠미(衰微) ·퇴폐 ·조락(凋落)'을 의미하긴 하지만 이 단어를 우리 말로 옮기면 본래 말이 지니고 있는 뉘앙스가 어딘가 단단해지고, 우아해지는 느낌이다. 뭐랄까? 데카당스를 음식에 비유하자면 중화요리집에서 볶음밥에 곁들여 나오는 계란탕의 느낌이다. 약간의 부추와 맑은 국물에 '힘아리'없게 풀어져 있는 희뿌연 계란 국물말이다.

문학에서 데카당스란 로마제국 말기 문예의 병적인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하는데, 19세기 말 보들레르와 베를렌느의 영향을 받은 일군의 상징파 시인들이 스스로를 '퇴폐파'라 자칭하면서 이후 그들의 예술적 경향을 일컬어 데카당스라고 평하기 시작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데카당스란 말에는 퇴폐, 쇠락이라고 번역되지만 한 편으론 자기 연민과 파괴의 정서가 엿보인다.

계란탕은 메인 요리가 될 수 없고, 볶음밥에 곁들여진 서브 메뉴에 불과하지만 계란탕 없이 먹는 볶음밥에 목이 매는 것처럼 데카당스는 엄격하게 말해 문학사조로 자립하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번갈아 가며 아니, 어느 시대에나 데카당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인 한둘은 반드시 존재해왔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데카당스의 시인들, 그 시인들은 대개가 '천재(?)'였고 반드시 천재여야만 했다. 혹은 시인이라면 반드시 천재여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데카당스 자체가 시의 본질이 될 수는 없지만 시 혹은 시인이 지녀야 할 어떤 멋과 맛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그런 맥락에서 나는 늘 (데카당스한)시인이 너무 오래 살면 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데카당스가 멋있기 위해서는 우선 젊어야 하기 때문이다.

데카당스란 무엇보다 전통, 질서, 고전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데카당스의 시에서 비춰지는 이 탈출의 모습은 때때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데카당스는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일종의 위악,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을 공격하는 느낌을 풍긴다. 그 까닭은 이 같은 탈출을 시도했던 이들이 대체로 사회적으로 아쉬울 것이 별로 없는 부르주아 계급의 시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부정하기엔 너무 나약한 풍토에서 자라난 이들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현실부정은 겉으론 파괴적으로 보이지만 그 실천은 개인적이고, 이벤트의 일종으로 보이기 쉬웠다.

현실이란 알을 깨자마자 뜨거운 물로 뛰어든 계란처럼 데카당스는 출현하자마자 곧장 힘아리 없이 굳어져 버렸다. 고은이 썼던 젊은 날의 시편들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한 편으론 아쉬운 까닭은 그의 성장 혹은 노숙과 함께 그의 시세계 역시 계속해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계속해서 데카당스한 시인으로 머무르길 바랐다면 그의 생(生)도 그와 함께 일찍 종결되길 바랐어야 했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해서 나이를 먹었고, 나이를 먹는 만큼 그의 시도 함께 성숙해갔다.

아득한 네 어린 입술에 눈송이가 붙어 녹았네
어이할 수 없이 모든 것은 神이었고
겨울은 부디 가지 말아야 했고 나는 가야 했네

시인에게 사계는 계속해서 다가왔고, 시인은 계속 가야만 했을 것이다. 이 시에서 나는 고은의 사계(四季)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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