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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강연호 - 월식

월식

- 강연호



오랜 세월 헤매 다녔지요
세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그대 찾아
부르튼 생애가 그믐인 듯 저물었지요
누가 그대 가려 놓았는지 야속해서
허구한 날 투정만 늘었답니다
상처는 늘 혼자 처매어야 했기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흐느낌
내가 우는 울음인 줄 알았구요

어찌 짐작이나 했겠어요
그대 가린 건 바로 내 그림자였다니요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울고 있었다니요


*


'사랑'을 어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면서 나는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 진심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면 할수록, 나는 사랑이란 말이 '평화'란 말이 다른 의미에선 '전쟁'과 동의어가 되는 것처럼 '인권'이란 말이 다른 의미에선 '억압'이 되는 것처럼 사랑이란 말과 감정이 절대적으로 상위 개념이 되어 갈수록 그것이 '전쟁'이고, '억압'이 된다고 느꼈다. 사랑은 평화롭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으며, 평등한 감정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사랑하는 법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세상엔 참으로 많다. 사랑은 더이상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멈춘다.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을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에 맞추고자 하는 의지가 멈출 때, 사랑이란 나는 그대로 있으면서 나와 맞는 누군가를 찾거나 그 사람이 나에게 맞추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다만 제 울음에 귀기울이고, 제 그림자에 도취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제 울음만 듣는 동안, 제 그림자에만 가리워져 있는 동안 사랑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뒤에도 사랑은 여전히 두렵다.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로 탈바꿈해야만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나는 무엇이며,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사랑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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