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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강연호 - 감옥

감옥


- 강연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 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며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

나는 강연호의 이 시를 읽고 처음엔 키득키득 웃었다. 이제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 아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날개옷을 빼앗고 그녀를 집에 가둬두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집에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하루종일 그녀의 일상복 겸 잠옷겸 하는 츄리닝 바지를 입고 그녀는 룰루랄라 그릇을 씻고, 책을 읽는다. 진공청소기를 들고 밤사이 내가 털어낸 먼지들을 씻어낸다.

올해로 아내와 결혼한지 만 9년이 넘어 10년을 향해 달려간다. 결혼하고 4개월만에 결혼생활이란 것도 별 것 없구나 하는 심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문망이었으니 문망과 결혼한지도 이제 며칠 뒤면 만 9주년이 된다. 처음에 딱 10년만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했으나 앞으로도 그만둘 마음이 없는 걸 보면 이 결혼생활도 나는 견딜만한 모양이다.

가난한 결혼이었다. 결혼 전 아내를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너 같은 가난뱅이'라는 원망섞인 비난을 들어야 했을 만큼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가난한 남자였다. 지금도 가끔 아내를 비난하고 싶을 때 3~4년에 한 번쯤 나는 공연히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그 때 일을 들먹인다. 가난했으므로 아내는 맞벌이를 했고, 집에 돌아온 나는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고, 나를 외롭게 방치해두는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혼자 노는 한 방식으로 홈페이지를 시작했다.

처음 몇년 동안 소설이나 시를 쓰지 않고, 이렇게 홈페이지 놀이에만 전념해도 괜찮은 걸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내 이외 문망과 차린 이중살림이 행복했다. 어떤 의미에선 결혼생활 보다도 행복했으므로 지금도 그 점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 내가 앞서 강연호의 시를 읽고 처음엔 키득키득 웃었다고 했던가?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의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나는 지금 울고 있다. 집 밖의 세상에 갇혀 돌아가지 못한 채 해가 떠오르면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