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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고영민 - 나에게 기대올 때

나에게 기대올 때


- 고영민


하루의 끝을 향해 가는
이 늦은 시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
옆에 앉은 한 고단한 사람
졸면서 나에게 기댈 듯 다가오다가
다시 몸을 추스르고, 몸을 추스르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올 때
되돌아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흔들림
수십 번 제 목이 꺾여야 하는
온몸이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

잠든 네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올 때
기대어 잠시 깊은 잠을 잘 때
끝을 향하는 오늘 이 하루의 시간,
내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한 나무가 한 나무에 기대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
나 아닌 것 거쳐
나인 것으로 가는, 이 덜컹거림

무너질 내가
너를 가만히 버텨줄 때,
순간, 옆구리가 담장처럼 결려올 때


<출처> : 고영민, "악어", 실천문학

*

고등학교 들어간 첫 학기의 어느날 학생부 주임이 찾아와 나즈막하게 힘주어 했던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부모 없이 자라고 있는 나는 학교 입장에서 보자면 특별관리대상이었던 셈이다. 그 덕분인지 아니면 그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그 날 이후 정말 삐뚤어져 버렸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반장, 학생회 간부를 역임하시기까지 했던 나인데, 그 날 이후 나는 날라리도 아니고, 깡패도 아닌 그냥 문제아가 되었다. 고민이 깊어진 셈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만 해도 나는 제법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학교 내 동아리 중에 그나마 점잖은 종교모임인 '가톨릭학생회(KYCS)'에 가입했었다. 고등학교 들어아고 첫 여름 방학에 지금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선생님의 인솔 하에 강원도 홍천으로 하계MT를 갔다. 첫날 밤 우리는 빙 둘러앉아 처음으로 "아침이슬"을 배우고, "상록수"를 불렀다. 선생님이 따라주는 캔 맥주 한 잔에 불콰해지는 소년이었다. 새벽 무렵까지 소년들은 홍천 강변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소곤소곤 정담을 나눴다. 간신히 텐트 안에서 잠을 청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순식간에 불어난 물살에 깜짝 놀란 선생님은 서둘러 아이들을 깨웠다. 우리는 텐트를 미처 거두지도 못하고, 불어난 물살 위로 텐트를 들고 급하게 강 저 편 마을로 향했다. 우리 모두 함께였으니 거친 물살도 즐거웠지만 온몸은 쏟아지는 폭우에 흠씬 젖었다. 선생님은 아침도 못 먹은 우리들을 위해 그 마을에 하나밖에 중국음식점, 짜장면도 하고, 육개장도 끓여주는 음식점에서 짜장 한 그릇씩을 사주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검은 짜장이 얹힌 국수 가락을 목구멍 저 편으로 밀어넣고 나서야 갑자기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것이 실감 날 만큼 피곤이 몰려들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 비가 며칠동안 계속해서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TV뉴스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홍천읍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날 이후에도 그랬지만 나는 짝짓는 일에 영 서투른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야 했다. 좌석표를 끊고 보니 모두가 둘씩 동무들과 짝을 지어 앉을 수 있었는데 나만 홀로 외따로이 앉아야 했던 것이다. 내 옆 자린 아직 비어있었다. 나는 군인이나 할머니가 앉을 거라 생각했다. 속으로 제발 아저씨가 앉지는 말길 바랐다.

나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고, 버스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냉방기를 약하게 틀어놓은 상태였다. 추웠다. 그때 내 옆에 와서 앉은 사람은 아가씨였다. 버스 뒷 좌석에 떼를 지어 앉은 친구들이 '우와'하고 탄성을 지를 만큼 예쁘게 생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대여섯살쯤 되었을 젊은 아가씨였다. 비에 젖은 나는 공연히 죄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었다. 혹시라도 내 옷이 젖었다고 타박을 하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아가씨, 아니 누나는 아무 말 없었고 비로소 나는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잠이 들었고,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잤다.

친구들이 야단법석을 해 깨어 일어났을 때 창가쪽에 앉은 아가씨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채였다. 나는 강원도 홍천에서 서울까지 돌아오는 내내 그 아가씨, 아니 누나의 품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집까지 돌아오는 동안 두고두고 날 놀려먹었다. 그렇게 좋았느냐?부터 음흉스러운 녀석이란 흉까지 온갖 비난을 듣는 순간이었지만 난 아무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나는 속으로 무척이나 행복했고, 고마웠다. 내 평생 가장 따스하게 잠들 수 있었던 몇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쯤 그 누나의 아들이 그때 내 나이쯤 되었을까? 고영민 시인의 "나에게 기대올 때"를 읽으니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간신히 내가 따스했을 무렵,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잠든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