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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인문학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2006)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2006)


"에리히 프롬(Erich Fromm)""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은 성행위를 위한 69가지 체위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간혹, 책 제목만으로 그런 오해 내지는 사랑에 대한 방법론적인 기술(skill)로 착각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때 에리히 프롬은 국내에서 나름대로 주목받는 위치를 차지한 사회사상가였으나 최근의 조류는 그를 한물간 혹은 예전의 중요도에 비해 명성이 많이 하락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여전히 중요한 데도 불구하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으로 에리히 프롬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에 프로이트를 접목시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2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된 사회과학연구소와 관련을 맺고 일했던 일련의 학자들을 지칭한다. 이들 연구 활동의 배경이 된 1920-1940년대 유럽사회는 파시즘의 급격한 대두와 서구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당시 동구와 서구 양쪽에서 모두 비이성적인 전체주의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적 자유민주주의나 노동운동 모두 이런 비이성적 세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식인들은 노동자 계급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느꼈고, 원자화된 대중사회가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에 이르게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특히 주목했던 것은 시장기능 침투에 의한 물화 혹은 사물화(reification) 현상이었다. 사물화란 인간들 사이의 질적인 관계가 상품사이의 양적인 관계로 바뀌는 현상을 지칭한다. 인간의 노동과 피와 땀의 가치가 일정한 화폐의 양으로 측정되는 교환가치로 표현된다. 사물화는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는 것을 같은 것(교환가치로 환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비등가적인 것을 등가화 한다. 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물화 현상은 단순히 상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 된다.(ex. 비인격화(非人格化, impersonalization - 마르크스가 주장한 노동자가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당한다고 할 때의 인간의 사물화, 막스 베버가 관료제에 있어서 특징적으로 인정한 대상적 관계, 또는 그와 같은 관계를 강요당하는 관료 등의 비인격화를 이르는 말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될만한 책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자면 사랑이란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타인과의 융합'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일'이며, '어떤 하나의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세계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태도이자 성격의 방향'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도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며, 자기 자신과 타인, 가족,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기 자신, 그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말하면 생명을 준다. 이 말은 반드시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준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그는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함으로써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그는 받기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것이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프롬은『사랑의 기술』에서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랑의 본질 가운데 하나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을 사랑하는 자, 그는 자기 자신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자로서 자신을 경험한다. "오직 생존에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빼앗긴 자만이 뭔가 주는 행위를 즐기지 못할 것이다." 이 말 뜻 그대로라고 했을 때 마음이 너무나 가난한 자는 뭔가 주는 행위를 즐길 수 없으며 물적인 조건이 생존에도 허덕일 만큼 척박한 이도 남을 사랑할 수 없다.

 

프롬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닌 '낭만적 사랑' 이란 사회의 특징과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 '불완전한' 관념임을 폭로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결국 사람들에게 자신의 '교환가치'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고, 이에 지친 사람들은 이런 억압에 대한 하나의 탈출구로서 별다른 기술과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편안한-그래서 이기적인- 사랑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사랑은 결국 '불모의 사랑'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지속불가능하며, 사랑의 대상뿐만 아니라 진정한 자기애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낭만적 사랑은 ‘로맨스의 이데올로기(ideology of romance)’로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로맨스의 이데올로기란 사랑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이 책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