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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곱씹어 읽는 고전

논어(論語)-<위정(爲政)편>01장. 爲政以德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을 북극성에 비유하자면 북극성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




『논어(論語)』 제2편 「위정(爲政)」은 공자의 말씀 “爲政以德”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1편 「학이(學而)」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위정」편이 되었다. 다만 「위정」편에서 조금 특이한 부분은 『논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仁)’이란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학이」편의 처음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학이」의 내용이 모두 배움에 대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은 것처럼 「위정」편 역시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정치에 대한 가르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신(北辰)’이란 말은 대개 ‘북극성’을 지칭한다고들 하는데, 북극성이 아니라 천구(天球)상의 실제 북극점을 가리키는 말이란 주장도 있다. 북극성(北極星, Polaris)은 천구북극에서 불과 1° 정도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천구북극과 매우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는데다 안시등급 2.5등의 비교적 밝은 별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항해자나 나그네의 방위의 기준이 되었다. 공자는 “居其所(그곳에 그대로 있다)”며 북극성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 북극성은  천구북극을 중심으로 작은 반지름으로 일주운동을 하고 있다. 다만, 그 회전반경이 매우 작아서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북신이 북극성을 의미하든 천구상의 실제 북극점을 지칭하는 것이든 그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는 공자의 말에 숨겨진 본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북신’에 대비되는 말이 ‘중성(衆星)’인데, 북신이 봉건제 국가 아래에서 최고 위정자, 다시 말해 천자(天子)를 뜻한다면 중성은 백성과 신하를 의미한다. ‘덕으로써 정치하는 것을 북극성에 비유’했고, 북신과 중성의 관계는 위정자와 백성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므로, ‘공(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 공(共)의 쓰임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첫 번째 의미는 ‘함께 하다’이고, 두 번째 의미는 ‘공손하다’, ‘바치다’, 세 번째 의미는 ‘향하다’, ‘맞아들이다’이다.

첫 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뭇별들이 북극성과 함께 하는 것과 같다”로 볼 수 있고,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공손히 받드는 것과 같다”로 볼 수 있으며 세 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로 볼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의미에 무게를 두고 싶지만, 공자가 “君君臣臣父父子子”(「안연」.11)라 하여 임금은 임금대로 신하는 신하대로 자기 본분을 다할 것을 강조한 사람이란 점을 생각해보면 『논어』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 해석하는 것 같아서 피하게 된다.

두 번째 의미는 ‘공(共)’을 ‘공(拱)’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군주를 향해 백성들이 공손하게 인사한다는 의미가 된다. 첫 번째 의미가 군주와 백성의 관계를 수평적인 것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면 두 번째 의미는 지나치게 백성을 낮추는 것 같다. 후대에 가서 공자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 맹자(孟子)와 순자(荀子) 모두 군주에 대해 경계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공자가 봉건적 질서를 옹호했다고는 해도 절대시한 것으로 보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공자를 계승했으나 한 편으론 공자의 이단아(異端兒)였던 순자는 “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물은 배를 엎어버리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孔子家語』, 「왕제(王制)」편)라 했고, 정통계승자라 할 수 있는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 신임을 얻어야 제후가 되고, 제후에게 신임을 얻어야 대부가 된다. 제후가 국가를 위태롭게 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꾼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是故 得乎丘民而爲天子 得乎天子爲諸侯 得乎諸侯爲大夫. 諸侯危社稷則變置)”(『맹자』, 盡心章上句, 14장)라고 했다. 그 역시도 “군주가 대과가 있으면 간하고, 반복하여도 듣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를 바꾸어 버린다(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 則易位).” <『맹자』, 萬章章句下>고 해서 명나라 태조는 『맹자』의 이 구절을 문제 삼아 맹자의 위패를 공자 사당에서 축출하기도 했다.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는 세 번째 의미로 해석한 까닭은 공자가 어느 극단을 취하는 것을 경계하는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소 중립적이고 밋밋해 보이는 해석일지라도 본뜻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어떤 이들은 북신(북극성)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居其所)”에 주목하여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덕치(德治)란 노자의 무위정치(無爲政治)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그 근거로 「위정」편 3장에 나오는 “법제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를 들기도 한다. 또 「위령공」 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천하를 잘 다스린 사람은 순임금일 것이다. 그 분이 무엇을 하셨으리오.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남쪽을 향해 앉아 계셨을 따름이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라고 한 것 역시 공자가 무위의 정치를 주장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노장(老莊)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말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도가에서 이르는 무위(無爲)조차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자(莊子)』의 「잡편 경상초(雜篇 庚桑楚)」에는 이런 말이 있다.

“正則靜, 靜則明, 明則虛, 虛則無爲而無不爲也.”

이 말은 “마음을 바르게 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모든 것이 명확해지며,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 마음을 비운 상태가 되고, 마음을 비우면 억지로 하지 않더라도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간혹 장자의 ‘무위(無爲)’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윗글에서도 알 수 있듯 장자의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장자가 말하는 무위는 첫째 스스로 바른 마음을 품도록 노력하고, 둘째 바른 마음만이 아닌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구하며, 셋째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다른 뜻을 품고 나서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억지로 바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하는 일마다 모두 바른 행위가 될 것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무위(無爲)’의 상대적인 말은 ‘작위(作爲), 인위(人爲)’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위’를 우리말로 옮길 때 본뜻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말이 될 듯싶다.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늘이 부여한(天賦) 마음(心)에 따라 할 것은 다 하는데도 그것이 자연적이고, 하늘의 뜻(天理)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離婁章句下」편에는 “좌우 어느 쪽에서 선택하여 쓰더라도 그 근본과 만나게 된다(取之左右, 逢基源).”고 했는데 그것이 공자의 덕치(德治)이든 노자의 무위의 정치(無爲之治)이든 인간을 사랑하고 바른 정치를 펴라는 가르침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