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TERACY/Tempus Edax Rerum

위로의 편지

오랜만이구나. **아!
그간 어려운 일들이 많았구나.

너에게 위로를 주고 싶지만, 나 역시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이곳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에도 내 영혼은 계속 굶주림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랜 벗들에게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절교의 말들을 가다듬고 있다.

**아, 이런 경우 대개의 위로란 이런 식으로 출발하기 마련이다. 내가 살면서 겪어왔던 여러 어려움들을 너에게 들려주면서 나는 이렇게 살았고, 그것들을 이렇게 극복했다고 말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너와 같은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너와 같은 괴로움을 안고 있다 해서, 같이 삶의 진구렁 속에서 뒹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서로에게 위안이 되겠느냐?

그래서 나는 네게 내가 과거에 너와 비슷한 경험 혹은 그 보다 더 깊은 절망과 슬픔 속에 있었음을 결코 자랑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위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학의 길, 작가의 길을 걸어가려는 너에게 한 마디의 충고를 한다면... 그것은 나의 말을 대신한 파블로 네루다의 충고다. 너에게 파블로 네루다의 이 말과 이 시를 위안을 대신하여 주길 바라며 건넨다.

"젊은 작가는 외로움의 몸서리 없이는, 설령 그것이 단지 상상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글을 쓸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이나 사회의 맛이 깃들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시(La poesía)


그러니까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言]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저만치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입술은
얼어붙었고
눈 먼 사람처럼 앞이 캄캄했다.
그때 무언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
그 불에 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 갔다.
그리고 막연히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는,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알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혹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찔려
벌집이 된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 만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스스로 순수한
심연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

                『이슬라 네그라의 추억』(1964) 중에서


나는 나의 언어와 생각을 평생동안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이미 무수히 많은 말들이 도착해 있고, 사람들은 나의 말에 귀기울이는 척 할 뿐 결코 삶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러하므로 평생 외로울 것이다. 견뎌라! 이 질긴 삶이 너의 생명을 거두어 갈 때까지....

너는 이 세상의 견디기 어려운 두 가지 외로움을 선택했구나, 하나는 글을 쓴다는 것, 다른 하나는 좌파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