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방

- 김정란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 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네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보면
그 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

세상은 동시에 두 가지를 함께 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많은 것을 누려본 기억도 별로 없지만 세상은 한 가지를 주면 다른 한 가지는 꼭 거두어 간다. 다만 느낌의 차이일뿐... 보름달이 빛나는 밤하늘에선 은하수를 볼 수 없고, 한여름 열대야를 견디기 위한 냉방이 주변의 열기를 더하게 되는 것처럼 '눈물의 방' 속에 갇힌 뒤에야 '나지막한 속삭임'에 귀기울일 수 있게 된다. 다만, 그 속삭임이 언제나 시인의 말처럼 "네가 나의 천사가 / 네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눈물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다. 그 방은 대관절 얼마나 큰 방이길래 나는 하루에도 이토록 많은 얼굴로 남들에게 보여지는 걸까. 삶은 축복도, 고역도 아닌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살아간다. 둘 사이에서 정확히 균형을 이루는 것은 죽음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ESY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종환 - 산경  (0) 2011.04.20
공광규 - 한심하게 살아야겠다  (0) 2011.04.19
김선우 - 낙화, 첫사랑  (1) 2011.04.18
김혜순 - 잘 익은 사과  (0) 2011.04.15
문태준 - 이별의 말이 생겨나기 전  (0) 2011.04.14
김정란 - 눈물의 방  (0) 2011.04.12
도종환 - 책꽂이를 치우며  (0) 2011.04.08
고정희 - 고백  (3) 2011.04.07
최승자 - 삼십세  (1) 2011.04.05
이승희 - 사랑은  (2) 2011.04.04
허영자 - 씨앗  (0) 2011.04.01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