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점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것, 결국 인간을 동물과 변별되게 만든 문화와 문명을 생성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결국 기억의 전수일 겁니다. 제게는 그것이 바로 교육이지요. 인간이 삶이 경험을 통해 축적한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고 그것이 자기 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가운데 앎의 과정이 반복되고 축적되어 오늘날 우리가 문화와 문명이 불리는 이런 인간세상이 건설된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교육이란 기억의 전수를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교육하다’라는 의미의 영어 educate는 라틴어 educare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 데, 이 말은 어원적으로 ‘밖으로 끄집어내다’라는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교육이란 우리 안에 잠재된 소질이랄까, 능력이랄까, 자질이랄까 그런 것들을 밖으로 끌어내 발현시키는 것이 교육이라고 서구인들은 그렇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어느 때부터 이런 교육 과정을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성취하도록 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오늘날 대개의 국가들은 교육을 국가의 품안에서 기능 하도록 제어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국가이성의 작동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만큼 사회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최대한의 안전장치로서 교육을 활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이렇듯 교육을 국가 체제 안으로 흡수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부르주아 혁명을 통하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데 교육이 국가에 부속된 것은 인류 문명사에 있어 극히 짧은 요즘의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국가에 의한 교육을 우리는 편의상 공교육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그 이전에도 공교육이란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교육의 한 방식으로서 고유 명사화한 교육방식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스파르타식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반도 남부의 타유게토스와 파르논산 사이의 유로타스강 하곡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BC 1200년경 남하해 온 도리아인들이 선주민들을 정복하고, 그들을 헬로트(helots:國有奴隷)로 만들어 폴리스를 세운 것이 기원이 되었습니다. 지중해 문명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 국가들이 주로 해외 식민지 경영과 무역을 통해 국가이익을 추구한 반면에 유독 스파르타만큼은 해외 무역보다는 농업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 것은(폐쇄적 국수주의로 흐른 까닭은) 그들이 차지한 영역이 다른 폴리스 국가들에 비해 광대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피정복민으로 구성된 헬로트들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스파르타 자유민들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자신들은 직접 농업에 나서는 일없이 7세 이상의 모든 남자아이들은 기숙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20세까지 철저한 군사 훈련을 받도록 했고, 30세까지 군복무를 한 뒤에야 비로소 시민권을 부여받아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그런 까닭에서인지 동성애적 성향이 매우 강했다고도 합니다). 이런 엄격한 병영적(兵營的)인 청년교육을 오늘날‘스파르타 교육’으로 부르게 된 것은 다 그런 연유에서겠지요. 스파르타는 다른 폴리스 국가들과 달리 여성의 체육도 장려하였다고 하는데, 전사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아이들을 생산하기 위한 우생학적 고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나치의 히틀러를 비롯해 파시스트 세력들이 앞 다투어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거나 우량아 대회를 개최했던 것은 그런 우생학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런 우량아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과 일본에서 특히 극성이었고, 우리도 박정희 시절 신문의 한 면을 토실토실 살진 아기를 자랑스럽게 체중계 위에 올린 어머니 사진들이 장식하고는 했지요. 어떤 면으로 질 좋은 교육은 냉전 시대 훌륭한 체제 선전물이 되곤 했습니다.

스파르타가 고대 공교육의 한 전형이라면 아테네는 사교육의 한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힘주어 비판했던 소피스트들의 수사학 학교를 비롯해,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는 오늘날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아카데미란 말의 원조 격이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리키움 역시 사교육 기관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공교육을 실시한 스파르타가 파시즘적인 전체주의 교육의 원조라고 한다면 아테네의 사교육은 민주주의 교육의 원조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대결이 결국 아테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대 그리스가 몰락한 뒤, 로마 공화정 시대의 교육은 가정과 병영에서 이루어졌고, 후기에 이를수록 교육에도 그리스 문화가 침투하여 이제는 로마가 정복한 그리스의 학식 있는 노예들에 의해 로마인들의 교육이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자유민들에 대한 교육을 노예들에게 맡긴 것이 초기 강건하고 실용적인 로마인들의 기풍을 망쳐 결국 로마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많은 로마인들이 가정에서 그리스 출신의 노예들에게 교육받고, 훗날 장성해서는 그리스로 유학을 가기도 했습니다. 로도스 섬은 특히 많은 로마인들이 유학 갔던 곳이기도 하지요.

중세가 시작되며 교육은 교회가 학교의 역할까지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1세기 이후 서서히 교회교육보다는 세속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되지요. 신성로마제국을 건설한 카알 대제는 궁정학교를 설치하고, 교육법령을 선포하는 등 국가 권력 속으로 국민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시도로써 교육을 교회에서 국가로 귀속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12세기에 이르러 수도원을 모태로 대학들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세속교육, 고등교육의 발달로 형성되기 시작한 일군의 학자, 학생들이 독립적인 자치연구단체(universite)를 결성한 것이 오늘날 종합대학을 의미하는 university가 되었고, 학생들의 합숙소(collegium)로부터 출발한 것이 오늘날의 단과대학을 의미하는 college가 되었습니다. 사적 연구 단체에서 출발한 대학이 오늘날 학문의 전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교회를 견제하고, 국가(왕실)에서 필요한 지적인 재원들을 자신의 세력 아래 두고자 한 국가가 이들에게 일정한 특권(세금면제, 자치권, 학위수여권, 병역면제 등)을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서부터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대학교수들이 새로 출범하는 정권의 싱크탱크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등의 일정한 역할을 하며, 때로 정부 구성원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은 이렇게 그 연원이 긴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교육의 역사는 그 형태나 세부적인 목적들은 각기 달랐지만 크게 보아서는 인류의 기억을 연장시키고, 축적한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그보다 조금 작게는 국가나 해당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폴리스이던, 제국이던, 교회였던 간에 당대의 모든 권력은 교육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이 곧 헤게모니였으니까요. 제 개인적으로 이런 교육의 역사 속에 가장 파란의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장 자크 루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의 교육을 교육사적인 측면에서는 계몽주의 교육이라고 호칭하는 모양인데, 이성의 자유를 속박하는 종교, 정치, 사회 등의 모든 권력구조를 제거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모든 인간적, 신학적 문제와 사물을 스스로 이성의 힘으로 따질 수 있도록 한다는 그의 교육관은 오늘날까지도 완성되지 못한 매우 진보적인 교육관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712년 시계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그의 생후 열흘 만에 모친이 사망하고, 열 살 무렵에는 아버지마저 가출하는 등 육친의 사랑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불행한 소년시대를 보낸 루소는 그의 교육관을 담은 <에밀>은 출판된 지 열흘 만에 파리 의회가 이 책의 압수와 저자의 체포를 명령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지요. 그는 간신히 프랑스를 탈출해 스위스로 도피하지만 그가 머물고 있던 제네바 당국도 그의 <사회계약론>과 <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소각하여 이후 9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의 교육관을 표현하는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가령 '인간본성 회복의 교육'이라든지 '진보주의 교육의 시초', '자연주의 교육'이라 하는 것들이 그것인데, 저는 루소의 교육관이 제시한 업적 중 가장 큰 것은 교육을 국가나 교회로부터 분리해 개인을 발견하게 했다는 것에 두고 싶습니다. 이전의 교육이 사회인재 양성이라는 미명 아래 국가나 교회에 부속된 인재 양성에 치중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에 반해 루소의 교육관은 교육을 교육 그 자체의 본래 의미로 환원시킨 존재였습니다. 그는 자연, 사물, 인간에 의한 교육을 통한 '도덕적 자유인'이 그가 교육을 통해 도달하게 만들고자 했던 목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루소가 추구했던 '도덕적 자유인'이란 무엇인가? 루소는 인간의 양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불가오류적(不可誤謬的)이다. 왜냐하면 양심만이 진실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양심이 아무 것도 비난하지 않으면 당신은 결백하다. 그런 점에서 양심은 어떠한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양심을 가리키는 영어 'conscience'의 어원은 '함께 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함께 '대화'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루소의 교육관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물론 교육의 중요한 목표가 사회의 통합과 개개인 소질의 계발과 그 발현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현재 두 목표의 상충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서로 부합되는 부분도 있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양대 요소인 자유와 평등이 서로 부합되면서 충돌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내용과 형식을 지닌 듯 보입니다. 교육의 기회와 질은 평등하게 부여되어야만 우리 사회의 통합에 기여할 것이지만 지나친 평등 위주의 교육은 때로 좀더 나은 개인의 소질을 계발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육 현실은 공교육의 붕괴와 입시 위주로만 기형적으로 성장한 사교육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 균등과 개인의 소질 계발이라는 교육 본래의 목표가 모두 위협 당하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게다가 국가는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을 도입하는 문제로 전교조와 첨예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루이 알튀세르는 학교를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라고 말합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학교를 '계급적 재생산의 공간'이란 딱지를 붙였지요. 교육제도는 국가나 지배계급, 집단에 의해 그들의 문화에 맞추어 특정 의미는 선택하고 다른 의미는 배제하도록 함으로써 이들이 개인에게 강요하는 상징적 폭력, 문화 독점에 의한 전횡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다른 말로 인간성을 편집하는 것이 될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에 반대합니다. 그것이 교육당국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교육행정을 보다 편리하게 하여 일선 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그런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위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적 편리나 행정적 편의가 한 개인으로서 학생의 신원과 사생활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되는 위험보다 중요한 것일 수 없기 때문이겠죠. 저는 그보다 일선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부과되는 막대한 분량의 공문과 행정처리에 따른 잡무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제도를 확충하여 일선 교사들이 교사 본래의 의무인 교육의 질 향상에 힘쓸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교육부와 정부 당국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인권위에서 NEIS의 전면 폐기를 주장하고 나선 것 역시 이런 편의 위주의 반인권적 교육행정에 제동을 걸기 위함이 아니었겠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의 박임서 상임위원은 "세계 어느 나라에 NEIS처럼 부모의 이혼, 재산, 소년가장과 같은 수많은 학생신상정보를 학교 담 밖에서 한 곳에 모으는 곳이 있냐. NEIS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시스템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18년 동안 아이들을 키웠지만 학생 정보는 담임만 알고 딴 사람한테는 절대 공개하지 않더라.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인권철학의 부족이었다....중략....초·중등교육법 25조에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작성, 관리는 학교장의 권한'으로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NEIS 상에서는 학생신상정보가 학교가 아니라 시도교육청 서버에 집적되어 있으며 그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도 시도교육감한테 주어져 있어, 아무 법적 근거 없이 학교장의 권한을 침탈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요사이 교육현장, 일선에 몸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우리 교육이,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 공교육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마치 고대 로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노예로 전락한 교사들이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모습까지 재현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우리는 이미‘학급 붕괴’현상을 통해 근대적 개념의 학교가 몰락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좀더 잘 살기 위해, 현재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 교육을 벗어나 해외로 나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오늘의 교육 현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행정부에는 많은 장관들이 있지만 유독 경제와 교육 분야의 장관만을 부총리라 하여 특별한 예우를 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우리 국민 누구 하나 교육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없을 만큼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뜨겁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걸고 있는 기대, 신분상승에 대한 과도한 욕구를 모두 교육에 걸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대로 교육의 질을 비난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대로 부족한 사교육을 학교가 맡아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하중은 교사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이죠.

1989년 5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했습니다. "현재 우리 교육 현실은 모순 그 자체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전교조 창립 선언은 우리 사회에 '참교육'이라는 새로운 기치를 올리며 선생님들이 사실은 아니, 진짜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지요. 그간 우리 사회는 스승이라는 이름 아래 교사를 '지식 판매원, 입시 기술자'라는 제도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노동자라 선언했을 때, 스승은 노동자가 아니라며 신성한 노동의 의미를 폄하 하기도 했지요. 솔직히 저는 교육전문가도, 교육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얼마전 한 교장 선생님의 자살로 증폭된 우리 교육계의 여러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보수화된 진영, 보수헤게모니의 재생산 구조가 가장 확고하게 자리잡힌 곳이 바로 교육계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학교는 새로운 전장이 되도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보수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은 이들은 학교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싶은 것이죠.

저는 이번 <유리병편지>를 통해 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합니다만 어떤 대안을 제시할 능력도, 그럴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결국 교육이 먼저 변하던, 우리 사회가 변하던 이런 일련의 과도기적 논쟁들을 통해 우리 사회는 변화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일들을 선생님들이 이루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사를 선생(先生)이라 부릅니다. 그것인 남보다 '앞선 인생'을 의미하는 건지 '먼저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선생'인 탓에 우리 앞에 놓인 자잘한 걸림돌에 우리가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치워주고, 일러주고, 보살펴주었음을 잊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저는 다만 그 분들의 노고에 대해 깊숙이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또한 앞으로도 힘을 보탤 일이 있다면 보태고자 합니다. 교육의 주체를 흔히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합니다. 거기에 교육부나 행정당국이 부당하게 끼여들 자리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학교 없는 미래, 교사 없는 교육이 미래의 교육이 될 것이라 예상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가까운 미래에 학교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난 최초로 맞이하게 되는 사회가 바로 학교이고, 선생님이듯, 누가 뭐라 해도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선생님들을 통한 것이었음으로 저는 학교가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존속되리라 생각합니다. 스승의 날, 비록 존경하고 사랑하는 은사님께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리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했었다는 한시가 기억납니다.

"눈 덮인 들녘을 지나 갈 때에 함부로 발걸음을 옮기지 말라. 오늘 남긴 나의 발자국은 뒤에 오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아마도 이것이 변하지 않는 선생(先生)의 의미겠지요. 교육 일선에서 애쓰고 계신 선생님들 기운내세요. 사랑합니다.

<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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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