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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문학

송병선 - 영화속의 문학읽기: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화

영화속의 문학읽기 -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화
송병선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2월


지난 한 해 우리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를 사실상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70년대 우리 문화 자장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문학, 그 가운데서도 소설이었다면, 80년대는 시와 사회과학이었을 것이고,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영화다. 나 역시 한동안 영화를 꽤 열심히 보았고, 영화를 만드는 상상을 했었다. 한 사회의 문화적 에너지가 어느 한 분야에 집결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이를 잘되는 집안꼴이라고 칭찬하기도 어렵다. 우리 영화 흥행의 그림자가 워낙 넓고 짙은 까닭도 있지만, 문화란 것이 특정한 한 분야의 성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학은 죽었다, 살았다, 문학의 생존, 가능성 여부를 놓고 말이 많다. 이때 말하는 문학이란 아마도 근대성 혹은 근대의 생성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지닌 장르 소설을 놓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학동네> 지난 겨울호에 실렸던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한 문학행사에 참가해 "일본에서 문학은 죽었다"는 극언을 해 좌중에게 충격을 준 바 있는데, 그에 비해 한국에서만큼은 문학의 역할이 좀더 강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불과 4년여만에 한국의 문학 역시 끝났다는 논지의 글을 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대학에서 교수들은 자기 전공 과목의 강의에 영화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늘 들려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새 대학생들 너무 공부 안 한다는 한탄과 함께 예전엔 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인용해오던 강의 소재를 좀더 많은 학생들이 보았음직한 영화에서 소재를 찾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는 "포디즘"을 설명하기 위해, "데드맨 워킹"은 사형제도를 공부하는데 좋은 재료가 된다. 그러다보니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는다는 신문 기사가 최악의 스포일러로 지탄받는 현상까지 빚어진다.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은 죽었다고 단언하게 된 이유는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것인데, 원래 문학이란, 소설이란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장르가 아니었던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이념도 지적 도덕적인 내용도 없이 공허한 형식적 게임에 목숨을 거는 생활양식"을, "전통지향도 내부지향도 아닌, 타인지향의 극단적인 형태"로서의 문학,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만 존재하는 문학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문학이 왜소해졌다는 것이다.


송병선 교수의 이 책은 2001년에 나왔다. 그는 국내에 마뉴엘 푸익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해온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문학읽기"라고 제목은 붙어 있지만 표지 상단엔 조그맣게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학"이라고 되어 있다. 내 생각엔 너무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잘 보이지 않는 부제가 책의 내용을 좀더 잘 표현해내고 있단 생각이다. "영화 속의 문학읽기"가 다루고 있는 영화와 문학은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를 비롯해 이사벨 아옌데의 "사랑과 어둠에 관하여"까지 모두 18편의 영화와 소설을 다룬다. 뒷 표지의 광고문구는 더 걸작이다. "영화와 문학의 근친상간적 만남!"이라... 문학과 영화가 서로 근친교배하면 뭐 안 되나? 과연 내러티브를 지닌 장르끼리의 결합이란 점에서 근친상간적 요소가 있기는 하다.


까짓거 문학이 좀 왜소해지면 안되나? 라고 반문하고 싶을 수도 있다.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려왔지만 아직도 글을 쓰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과연 문학은 죽었는가? 글쎄, 나는 그런 말을 할 만한 공부를 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된 의견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이 문학의 종말이 아닌 "근대" 문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해오던 문학,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 존립할 이유가 있으며 그러한 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면, 문학은 단지 오락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의 문학 읽기"에서 다루는 18편의 영화들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문학작품들은 지역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라틴 아메리카의 이야기를,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써낸 이 작품들을 영화화한 건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란 거다. 마누엘 푸익 원작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미국과 브라질 합작 영화고, 보르헤스 원작인 "거미의 계략"은 이탈리아에서 베르톨루치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에비타"는 앨런 파커에 의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몇 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송병선 선생은 그런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싸구려 문학작품이 아닌, 소위 고급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들이다. 물론 이 중에는 잘된 영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그러나 정말 형편없는 영화는 한 편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잘못된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나 정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화는 때로 형편없는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너무나 뛰어난 작품을 형편없는 졸작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혹자는 영화를 접하고 그 원작이 된 작품에도 흥미를 느껴 읽게 된다고 말한다. 영화를 통해 문학작품을 읽도록 할 수는 있어도 문학을 통해 영화를 보도록 할 수는 없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내러티브를 갖춘 어떤 작품이 영화로 전이될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영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본래 작품이 지닌 아우라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먼저 본 사람은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문자들이 영화 속 이미지로 변환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미지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송병선 선생의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영화와 문학의 비율도 적절하고, 전문적인 비평과 대중적인 재미도 골고루 안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허망하다. 한 가지는 그가 문학교육을 위해 채택한 영화가 과연 독자들에게 문학 작품 읽기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허망함이고, 다른 한 가지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문화의 보고가 우리에겐 너무 멀리 있다는 허망함이다. 한 예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 작품은 물론, 영화들조차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래서는 영화를 먼저 볼 것이냐, 책을 먼저 읽을 것이냐 하는 즐거운 고민도 할 수 없기에 허망하다.


다시 가라타니 고진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문학을 지나치게 협애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시, 소설 그리고 좀더 봐주어서 비평을 포함한 글로 본다. 그렇기에 서구에서는 문학의 범주 안에 혹은 우리의 문사철 전통에 어울릴 법한 글들도 제외되고 만다. 가령, 철학적 에세이들, 풀어쓴 역사이야기, 르포르타쥬 등은 문학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다. 고진이 말한 김종철, 아룬다티 로이와 같은 인물들을 문학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문학의 본령은 물론 시와 소설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지평을 좀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종말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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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외에도 영화를 통한 세상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몇 권의 책이 있어 소개해본다.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1,2권)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과 역사를 비교해주고 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희생된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야만의 시대"는 영화로 본 세계분쟁사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은 누락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관점에 동의하긴 힘들지만 영화를 통해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세계 분쟁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김성곤 교수의 "영화 속의 문화"이다. 문학과 영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곤 선생은 이전에도 영화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여온 학자다. 그가 서울대출판부의 독립채산제 실시 이후 대중교양서 시장을 염두에 두고 베리타스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영화 속에 나타난 미국의 문화(저자는 살림총서 가운데 하나로 "영화로 보는 미국"을 펴낸 적도 있다), 유럽문화, 한국문화, 유전공학 등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