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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학 정원이 학생 수보다 많은 시절이 곧 도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대학마다 재학생들을 출신고교에 보내 학교 홍보를 하기도 한다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제게도 그와 비슷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교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먼저 고교를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어요. 그냥 동아리 후배들에게 말하는 순간이었지요.

  십수 명 되는 아이들을 앞에 놓고 먼저 살았던 선배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충고를 해야 했는데 소위 명문대학엘 간 것도 아니고, 빈둥거리며 노가다판을 전전하던 날 구태여 불러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알 수 없었지만 간만에 후배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그 모임에 나갔습니다.

  어느새 나보다 저만큼 앞서 간 듯 보이는 동기들.
  그네들은 벌써 대학 3학년으로 재학 중 군에 간 녀석도 있었고, ROTC제복을 걸치고 나온 녀석도 있었습니다. 그 속내를 알 수 없어 하나같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저보다 못해 보이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임에서 가장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물음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는 물음인데 나이 꽉 찬 노처녀에게 결혼 언제 하느냔 물음보다 훨씬 잔인한 물음이 아이들은 몇이냐고 묻는 것처럼 워낙 소식이 뚝 끊긴 채 살다가 어느날 나타난 내게 쏟아지는 질문의 강도는 혼자 생각하기엔 아이가 몇이냐는 물음만큼 잔인했습니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보다 심화된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 인생에 본격적인 등급이 매겨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겠는지요? 어쨌든 그네들의 인생 경험담이 연이어 나열되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고교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성실함과 진지함이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모두가 착하고 좋은 녀석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드디어 제가 아이들에게 충고해줄 차례가 왔는데... 저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차례가 왔으니 그들에게 무언가 얘기를 해주긴 해야 했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 마련된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내가 아주 놀라운 걸 보여줄 테니 다들 눈을 꼭 감고 잘 봐라."

  후배를 비롯해서 동기들까지 죄다 눈을 감았습니다. 내 동기들을 비롯해서 십수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눈을 감았습니다. 만약 그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눈을 떴다면 저의 그 얄팍한 술수는 통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눈을 감은 채 놀라운 걸 보고 싶어한 십수명의 아이들에게 저는 말했습니다.

"이제 눈을 떠도 좋다."

  아이들은 모두 눈을 떴습니다. 아이들이 웅성대면서 뭐야?하며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저 자리에서 서 있는 채로 빙글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놀라운 일은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웅성대며 항의하는 아이들에게 대충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주 놀라운 걸 보여줄 테니 다들 눈을 감고 잘 보라고 말했는데 너희들 중 누구도 내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잘 보라는 말에 귀 기울인 사람도, 주목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눈을 감고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사람도 없었다. 너희들은 그저 눈을 감으란 나의 명령에만 주목해서 눈을 감았고, 너희들 중 누구도 샛눈을 뜨고 날 쳐다볼 용기를 갖지 못했다. 너희들은 내가 강단에 섰다는 이유로, 내가 너희들을 속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고, 선배가 시킨다는 까닭에, 그 권위에 순종하였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너희들은 눈을 감았다.

  내가 너희들에게 선배로서, 동기로서 해줄 수 있는 충고는 한 가지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은 채 남이 시키는대로만 살면 인생은 절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

  2004년 4.15총선을 앞두고 다시금 개혁을 이야기하며 열린우리당은 그래도 다른 당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다면 그것입니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대로만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은 채 '개혁'이란 말만 눈에 들어온다면 지난 시간들엔 눈 감은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 하나의 보수 정치 집단일 뿐입니다. 그네들의 정책이 한나라당과 다른 점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람이 다르므로 뭔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엔 국가원수를 비방한다고 해서 선술집에서 갑자기 끌려나가는 일은 없습니다. 북한체제가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글을 쓴다고 해서, 심지어는 신문에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글을 썼다고 해도 구속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국가정책이나 시책에 대해 반대한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남산으로 끌려가는 일도 없어졌거나 줄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보다 많은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시대가 지날수록 확실히 보다 나은 사회에 살 것이란 낙관론적인 기대에 부풀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 존경했던 많은 투사들, 혁명가들이 어느날 의회주의자, 개량주의자가 되어 국회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혁명 대신에 개혁을 주장하며 예전의 이력을 밑천삼아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네들이 주장하는 개혁은 좋게 말해줘야 과거 그들이 운동 세력 내에서 온건했던 이들을 비판하는데 주로 애용했던 '개량주의자, 수정주의자'였을텐데도 스스로 그런 자신들의 과거를 팔아치우고 이번엔 그들 자신이 개량주의자가 되어 깃발을 흔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통일된 조국에서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동북아중심 국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그때도, 그때는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시대는 여덟 마리의 코끼리가 두 마리의 빈대를 위해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당신은 국가원수를 비방한다고 해서 선술집에서 끌려나가지는 않을 테지만 어느날 갑자기 해고될 수 있습니다.
북한 체제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동정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일은 없겠지만 북한동포들을 새로운 산업노동자로만 간주하는 자본에 중독된 수구언론은 당신의 동정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국민 구성원 모두가 풍족한 삶을 누리는 사회가 아니라 80%에 속한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20%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타워팰리스를 구성한 채 2,000개의 감시 카메라로 주변과는 방벽을 치고 살아가는 사회일지 모릅니다.
  동북아 중심 국가는 미국의 MD구상 아래에서 이웃국가를 위협하는 가운데 스스로 두려움에 휩싸여 핵잠수함을 건조하고,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강대국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총선 때마다 새롭게 탄생하는 신당의 화려한 수사에, 얄팍한 양보를 겸한 개혁에 이번만은 이번만은 속지 않겠노라 결심하면서도 역시 최악보다는 차악이 그나마 낫지 하는 투표를 거듭한다면, 공연히 사람들 앞에서 진보연하는 코스츔만으로 만족하는 당신은 이미 눈을 감은 사람입니다.

  유대인의 대학살(Holocaust)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한 명인 "여히엘 디누르Yehiel Dinur"는 한 방송의 대담 프로에 나와서 홀로코스트의 실제 집행자였던 대학살의 실제 집행자인 아돌프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자가 그녀에게 물었지요.

"재판 중 갑자가 재판정 마루 바닥에 주저앉아서 통곡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이히만이 인간의 탈을 쓴 괴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직접 보니 너무도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나는 그 때 내 자신이 두려웠습니다. 나도 그 사람처럼 똑같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체포된 아이히만은 "나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전 모방송국의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된 적 있는 소위 "아이히만 실험"이라는 것은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에 의해 실행된 "복종상황 실험"이라는 것입니다. 실험자와 피실험자는 가까운 친구 사이로 구성되었고, 피실험자의 몸에는 대답 여하에 따라 전기충격을 보낼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피실험자는 실험자 중 누가 자신에게 전기 충격을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있었고, 대답이 틀릴 경우 순차적으로 흘려보내는 전기 충격을 강화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나중에 가서는 피실험자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전기 충격을 흘려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 전에 실험자들에게 이 실험의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지도교수인 본인 자신에게 있음을 명백하게 주지시켰습니다. 그 결과 실험에 참가한 모든 실험자들이 피실험자를 죽였습니다. 물론, 밀그램은 피실험자들과 짜고 실험자들을 속여 오히려 실험자인 것으로 스스로를 믿은 이들을 속여 그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겁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권위에 대해 복종하도록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태극기 앞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며 국가가 지정한 의무를 수행합니다. 이라크에 파병되는 것에 반대한 병사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외칠 때 우리는 일제히 그들을 손가락질합니다. 우리는 권위에 쉽게 복종하고, 권위의 명령에 쉽게 눈을 감습니다. 이라크에 병사들을 파견하면서 스스로의 손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눈을 감은 것입니다. 이웃의 굶주린 사람들을 버려두고 안전을 위해 이중의 문고리를 걸고, 무인경비시스템을 작동시키면서 그 안에서 안전할 것이라고 안심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전보다 조금 자유로와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목에 걸린 쇠사슬의 길이가 이제 조금 더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아직 우리들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200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