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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이문재 - 마흔 살

마흔 살

- 이문재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세 시의 햇빛이 갯벌 위에
수은처럼 굴러다닌다
북북서진하는 기러기 떼를 세어 보는데
젖은 눈에서 눈물 떨어진다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

나이를 먹으면 옛날일은 바로 어제 일 같이 생생한데
어제 일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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