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지하철(언더그라운드) 개통 150주년을 축하하며

-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몇 해 전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노년의 외국인 부부가 내게 길을 묻는 경험을 했다. 얼핏 처음 듣기에 ‘사보이 호텔’ 가는 길을 묻는 줄 알았는데 찬찬히 다시 들어보니 지하철(subway) 타러 가는 길을 묻는 것이었다. 이른바 ‘네이티브’ 발음에 익숙치 않은 탓에 실수할 뻔 했는데 어쨌든 나중에라도 알아듣고 진땀을 흘리며 길 안내를 해준 기억이 새롭다. 2013년 1월 10일은 인류가 지하철이란 것을 타고 다니기 시작한지 정확히 1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비숍스로드)과 페링던 사이의 6km 구간을 잇는 런던 지하철이 세계 최초로 개통되면서 인류는 SF소설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땅 속 열차’를 처음 경험하게 된다. 초기의 지하철은 증기기관차로 운행되었는데, 증기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전기 철도 방식의 전기기관차는 1890년 11월 4일, 스톡웰과 킹 윌리엄가(街)를 연결한 ‘시티 앤 런던 지하철’이었다.


이후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지하철이 들어선 도시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1896)였고,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빈(1898), 1900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1902)과 함부르크(1906)에 차례로 지하철이 들어섰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라 부르고, 보통 튜브(Tube)라고 하는데 우리가 지하철을 부를 때 이르는 서브웨이(subway)란 말은 영국에서라면 단순히 길 건너편을 연결해주는 지하통로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는 지하철을 메트로(metro)라고 부르는데, 런던의 지하철을 튜브라고 부르는 까닭은 처음 터널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틀의 모양이 수영장 튜브의 단면을 닮아서 지금까지 튜브라고 부른다. 현재도 런던 지하철(Underground)의 터널은 튜브를 닮아있다.






처음 영국에서 시작된 지하철 운행은 유럽을 거쳐 신대륙까지 널리 퍼져나갔는데 미국 보스턴(1901), 뉴욕(1904),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913년에 개통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도쿄(1927)가 시초였다. 우리나라의 지하철은 1971년에 착공해 1974년 8월 15일 서울시 1호선 서울역과 청량리 사이의 7.8km 구간을 연결한 것이 최초였다. 개통 당시의 지하철 규모는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1개 노선에 9개역, 전동차 60량 수준이었는데 당시엔 공식 명칭도 현재의 1호선이 아닌 종로선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이 우리보다 1년 앞서 지하철을 개통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앞서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북한의 지하철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1968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북한의 평양은 중국의 북경 지하철과 거의 비슷한 시기부터 지하철을 건설하기 시작해 1973년 9월 개통했다. 운영을 개시할 무렵에는 아직 기술력이 발전하지 못해 중국 장춘자동차생산회사의 객차를 일부 운용했다고 한다. 평양의 지하철은 평양시의 동서남북을 이어주는데 총 연장 40km로, 일일 평균 승객수는 4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런던 지하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시민들을 위한 대피호로 이용되기도 했다.



얼마전 미국의 자동차 전문매체인 ‘잘롭닉’이 실시한 ‘세계 최고의 지하철 시스템을 갖춘 도시’라는 주제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평양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10위) 보다 순위에서 앞서 9위에 선정되었다. 평양을 9위에 선정한 까닭으로 평양의 지하철이 무엇보다 주변 시설과 구조물이 청결하고 외벽의 장식 등이 매우 아름답다는 점과 세계의 모든 지하철 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평양 지하철은 지하 110m의 깊이에서 운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 지하철의 평균 깊이가 20m인 점을 감안한다면 정말 땅굴 파는 능력만큼은 남다른 데가 있는 북한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지하철인 런던 지하철이 세계 5위, 영국 지하철의 전통을 물려받은 홍콩 지하철이 4위, 프랑스 파리가 3위, 일본 도쿄가 2위, 우리나라의 서울 지하철이 역사 내부의 청결, 시설의 안락, 요금결제 및 안내의 편리함 등으로 인해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지하철은 대표적인 대중교통으로 특히 도심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지하철은 그 도시의 문화적 인식과 생활수준을 말해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 수준 못지않게 그 나라가 생각하는 공공성(가치)의 수준, 건축과 디자인, 예술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 지하철은 청결과 시설의 안락성, 요금 결제 편의성 수준에서 세계 1위일지 모르겠지만 지하철 역사의 건축과 디자인, 예술 수준 역시 세계 1위라고 내세우고 자랑할 만한 것일까. 






오늘날 영국과 런던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창조산업과 창조도시의 원조로 각광받고 있는데 이처럼 런던이 세계적인 창조도시가 될 수 있었던 밑바탕 중 하나로 런던 지하철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 지하철의 공공 디자인은 세계 디자인사에 길이 남는 기능성과 심미성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런던 지하철의 로고 같이 대표적인 디자인 몇 개만 봐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런던 지하철, 언더그라운드의 로고는 빨간 동그라미 안을 가로지는 파란 띠로 이루어진 UFO 모양의 지하철역 표지판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색깔별로 깔끔히 정리된 노선도를 꼽을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런던 지하철의 명료한 디자인은 도시의 중심과 외곽을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하고 있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전체적인 통일성과 개별적인 정체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이러한 통합된 디자인은 지금도 전 세계 공공디자인의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런던 지하철 디자인을 '영국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각교육센터'라고 부른다.


런던 지하철이 이 같은 명품 디자인을 자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07년 당시 런던 지하철을 운영하던 런던 제너럴 옴니버스 컴퍼니(London Gensral Omnibus Company)의 사장은 프랑크 피크(Frank Pick)라는 한 젊은이를 고용해 당시만하더라도 지하철 역사를 뒤덮고 있던 온갖 간판들과 산만하게 나붙은 광고 포스터를 한데 모아 정돈하는 업무를 맡겼다. 프랑크 피크는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어느덧 각종 간판과 사인물을 정비하는 달인이 되었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받아 런던 지하철의 디렉터가 되었다.





그는 시각물을 정비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디자인을 질적으로 강화하기로 하고 서체 디자이너인 에드워드 존스턴(Edward Johnston)과 건축 디자이너인 찰스 홀든(Charles Holden)을 참여시켜 대대적인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의 지휘 아래 존스턴은 런던 언더그라운드 로고(1925)를 만들었고, 홀든은 50여 개의 아름다운 역사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전기회로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해리 베크(Harry Beck)의 지하철 노선도(1933)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그의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은 이후 전 세계 지하철 노선도의 표준이 되었다.


이외에도 프랑크 피크는 지하철 공공디자인의 영역을 객차 좌석을 덮은 직물의 패턴 디자인부터 런던 지하철이 알려야 하는 각종 정보와 관련 행사를 홍보하는 포스터까지 일일이 신경 썼다. 그는 당시만 하더라도 전위적인 성향의 신진 작가들에게 디자인을 의뢰하여 단순히 지하철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삭막한 교통 환경에 새로운 미감을 불어넣도록 했기 때문에 런던의 아방가르드 예술은 런던 지하철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오늘날 영국의 창조산업(디자인과 미술을 포괄하는)이 성장하는 데 있어 프랑크 피크의 지하철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처럼 공공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지하철에 현대미술을 도입한 덕분에 프랑크 피크는 오늘날 20세기 최고의 아트 패트런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런던 지하철, 언더그라운드가 탄생 150주년을 맞는 오늘날까지 런던 시민들은 물론 런던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가는 수많은 세계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참고자료
창조의 제국(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 임근혜 저 |지안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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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