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역사는 무엇입니까

[301호] 2013년 06월 14일 (금) 23:46:57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2012년 8월 내 나이 마흔셋에 처음으로 단독 저서(<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를 썼다. 그 책을 펴내기 전에도 나는 글쟁이였고, 편집자였고 공저자였지만 그냥 아는 사람들만 아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책을 낸 뒤라 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나마 내가 쓴 책 한 권 있다는 점이 남들에게 나란 사람을 다르게 볼 이유가 된다는 것을 20여 년 가까이 책을 만들며 사는 동안에는 미처 실감하지 못했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게도 <대한국民 현대사-국민으로 살아낸 국민의 역사>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책이 지닌 뜻 깊은 속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스크랩으로 본 현대사 1959~1992’라는 설명까지 따라붙어야 이 책이 지닌 의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오랫동안 <한겨레>에서 기자로 <한겨레21> <씨네21> 등 잡지에서 편집장으로 살아온 고경태의 부친이 34년간 모아온 손때 묻은 신문 스크랩북 스물다섯 권을 매개로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세대)와 진보 성향의 기자 아들(세대)이 때로는 회한의 시선으로, 때로는 불꽃 튀는 시비로 나눈 길고 긴 대화를 엮은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 성명에는 ‘고경태’라는 이름 옆에 아버지 존함 석 자도 함께 박혀 있어야 마땅했으리라.

개인 저서를 펴내는 가장 마지막 과정은 저자 약력을 스스로 기록해 편집자에게 넘기는 일이다. 나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내 삶이 굴절을 겪었다고 여긴 순간을 중심으로 약력을 적었는데, 되돌아보니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떤 순간마다 본의든 아니든 언제나 역사의 현장이나 그 시간대에 있었다. 사실 이 말은 매우 우스운 말이기도 하다. 보통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내 삶과 무관한 것이라 여기기 쉽지만 우리는 항상 역사의 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책을 기준 삼아 자신의 연보를 기록해보길

만약 지금의 내 말이 의심스럽거든 이 책을 기준 삼아 자신의 연보를 따라서 기록해보라. 자신이 태어난 해, 태어난 날, 처음 학교에 입학하던 해, 중학교·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 그 외에 자기가 살면서 의미 있었던 순간이라 기억하는 날들을 찾아 그 시절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대비해보면 누구나 자신이 역사의 한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공교롭게도 내 책의 추천사를 써주기도 한)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의 말대로, “역사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개입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주인이고 내가 기록한 가장 생생한 한국 현대사”를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렇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역사책이지만, 고경태의 이 책 <대한국民 현대사>가 유별난 점은 아버지가 선택하고, 아들이 개입한 역사책이라는 점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고(高), 봉(逢), 성(星)이었다. 그동안 아버지의 스크랩에 관해 쓰며 수백 번 아버지를 들먹였지만, 실명을 꺼낸 적은 없었던” 아버지와 아들이 이 책을 통해 만나고 대화를 시도한다. 어쩌면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정작 과거와는 거의 무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가 힘을 갖는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의 자식인 것처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동안 역사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의 일부, 그리하여 내가 행하는 모든 것 속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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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