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믿어라"
- 윌리엄 E.B. 듀보이스


지금 내 책상에는 삼천리 출판사에서 나온 한 권의 책 "니그로:아프리카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있다. 책을 받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삼천리가 미쳤구나'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물론 이 말은 나쁜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윌리엄 E.B. 듀보이스(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1963)'이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삼천리가 미쳤구나'란 말 속엔 '과연 이 책이 몇 권이나 팔릴까…. 그런데 왜 이 책을 냈을까…. 참 좋은 출판사구나.' 등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다.  

듀보이스란 이름은 미국의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이름이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는 1868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그레이트배링턴에서 태어난 흑인(아프로 아메리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발표한 것이 1863년 1월 1일의 일이었다. 노예해방이 있은 지 5년 후에 태어나 1895년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이어 피스크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한 뒤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역사학과 사회학, 경제학 등을 가르쳤는데, 1905년 사실상 최초의 흑인민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아가라 운동(Niagara Movement)'을 제창했다. 그는 1903년 "흑인의 영혼(The souls of Black Folk)"을 발표하며, 이전까지 교육을 통한 지위향상을 주장해온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 1856~1915)'의 온건 노선에 반대했다.

부커 T. 워싱턴은 흑인 민권운동의 '안창호'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노예로 태어난 흑인민권운동 지도자 중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투쟁할 때가 아니다'며 미국 남부 지역의 공공연한 흑백분리 정책 등과 대결을 회피하며 타협했기 때문에 '항복주의 노선'이란 비판을 받았다.  

B.T. 워싱턴의 온건노선에 반대한 듀보이스의 노선은 흑인지식층의 지지를 받았고, 1905년 나이아가라 운동은 1909년 '전국유색인종협회(NAACP)'의 창설로 이어졌다. 그는 1910∼1932년 NAACP의 기관지인 《크라이시스 Crisis》를 편집하면서 흑인민권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범아프리카주의'를 제창했다.

범아프리카주의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인물이 가나의 초대 대통령인 '콰메 은크루마(Kwame Nkurmah, 1909 ~ 1972)'이다. 그는 이른바 '검은 황금(흑인 노예)' 무역의 집산지였던 아프리카 서남부 해안(골드코스트) 출신으로 가나의 독립운동을 지휘하여 1947년 통일골드코스트회의(UGCC)의 서기장이 되었고, 1957년 골드코스트가 가나로 독립하면서 1960년 가나의 초대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듀보이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범아프리카주의'를 표방하였는데, 1966년 쿠데타로 실각하여 기니로 망명한다.


콰메 은크루마(Kwame Nkurmah, 1909 ~ 1972)


범아프리카주의(Pan- Africanism)란 백인의 지배에서 탈피해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적 연합을 결성하자는 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시몬 볼리바르의 '범라틴아메리카주의'도 이와 비슷한 개념을 추구했다. 사실 범아프리카주의의 기원은 19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실질적인 출발은 1919년 윌리엄 듀보이스를 중심으로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범아프리카회의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듀보이스는 뉴욕, 파리, 런던, 브뤼셀 등을 중심으로 흑인들과 연대하여 백인과 같은 수준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을 개최했는데, 1930년대 들어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진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아프리카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국가이자 흑인 왕국) 침략은 범아프리카주의 운동가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전 세계 흑인들에게 범아프리카주의의 필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개최된 제5차 범아프리카대회에서 듀보이스는 은크루마와 함께 의장직을 맡았다. 범아프리카주의는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독립과 민족자결을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범아프리카주의는 조지 패드모어(George Padmore, 1903~1959) 등에 의해 일정하게 공산주의로 경도되는데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듀보이스는 인권과 평화, 사회변혁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다른 한편으론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소련의 이익에도 부합하여) 1958년 레닌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듀보이스는 196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며칠 전(2013년 8월 24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워싱턴 대행진 50주년 기념행사가 NAACP 주도 아래 성대하게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50주년을 맞이한 듀보이스에 대해서는 부각되지 못한 까닭도 아마 거기에 있으리라.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흑인민권운동의 역사를 기술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마틴 루터 킹 목사나 말콤 엑스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까닭(헬렌 켈러의 생애사가설리번 선생과의 관계라는 초기 역사 기술에 머무르는 까닭도 그녀가 생애 후반기를 사회주의자로 살았기 때문이다)도 거기에 있다. 윌리엄 듀보이스는 1961년 가나의 은크루마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나에 갔고, 그곳에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가나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가나 아크라에서 정부 후원 아래 백과사전 편찬사업에 몰두하다가 1963년 세상을 떠났다.

이 책 "니그로: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단지 미국 내 흑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역사, 백인들에 의해 날조되거나 왜곡된 아프리카와 흑인의 역사, 인종주의가 정치, 윤리적으로는 물론 학문적으로도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란 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해 쓰인 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1915년에 펴냈는데, 이 책이 나오던 해 미국에서는 D.W.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 개봉되었다.

* '윌리엄 듀보이스'에 대해 언젠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다루고 싶었는데 공부는 부족하고, 그와 관련해 읽을 만한 책 한 권이 없어 언젠가는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저작을 직접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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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