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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벨라 차우 Bella Ciao




이탈리아 ‘칸초네’하면 우리는 먼저 나폴리와 푸르디푸른 쪽빛 바다와 언덕까지 이어진 하얀 지중해식 가옥들을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조금 더 나아가면 우렁찬 테너로 거리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테너가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떠올릴지도…. 하지만 이번에 말하고 싶은 노래는 곤돌라의 노를 젓는 뱃사공이 부르는 낭만적인 이탈리아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노래 이야기이다.


이탈리아 칸초네가 우리나라에 알려져 사랑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라고 하는데, 우리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는 것만큼 이탈리아 민중들도 노래 부르는 걸 꽤나 즐기는 민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민족에게 민족의 정한을 담은 노래가 없겠냐만, 이탈리아 사람들의 노래가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오늘날에도 반세계화 시위 현장에서는 빠지지 않고 불려지는 노래가 있다. 바로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빨치산의 노래 Bella Ciao"다.

이탈리아 칸초네의 전통적인 특징은 일반적으로 밝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 역시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국악에 서편제와 동편제, 중고제가 있는 것처럼 칸초네에도 몇 가지 풍이 있다고 한다. 칸초네 클라시코'Canzone Classico', 칸초네 나플레타노'Canzone Napoletano', 칸초네 포플라레'Canzone Popolare'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칸초네’ 하면 포플라레와 나플레타노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듯 칸초네는 밝게 빛나는 태양 아래서 탄생한 음악답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밝은 풍의 노래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벨라 차우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의 칸초네가 아니라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칸초네이다. 우리는 이탈리아하면 로마 제국을 연상하고, 이탈리아란 나라가 무척이나 오래된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란 국명이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1861년)은 불과 140여년 전의 일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는 사분오열되어 존재했으며 나머지는 우리가 “사랑의 학교”를 통해 잘 알고 있듯이 가리발디 장군의 의용군에 의해 통일왕국을 건설한 것은 근세에 이르러서였다.

이런 탓에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정치가 불안했고, 각 지역별로 서로 반목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이탈리아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가톨릭이었으나 가톨릭은 중세 이래 보수적인 정치질서를 유지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탈리아엔 왕이 있었고 무솔리니에 의해 파시스트가 지배하는 폭력적 집권 기간 20년이나 되었다. 교회와 대지주가 결탁하여 사회의 상부구조를 점하고 있는 나라 이탈리아. 그것은 우리가 여름철 달력에서 자주 보게 되는 나폴리의 쪽빛 바다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산과 계곡에서도 역시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벨라 차우는 본래 이탈리아 북부 지방의 노동요였다고 한다. 노동요가 대개 그렇듯이 느린 템포로 불려지는 노래였다. 이 노래가 언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시기는 1948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청년 평화 우호 축제' 때 이탈리아 학생 대표들이 부르면서였다고 한다. “Ciao”는 ‘안녕’, "Bella"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데, “안녕, 사랑하는 이여” 정도로 보면 되겠다.(가사는 여러 곳에 잘 번역되어 있다.)

이 노래가 어떻게 빨치산의 노래가 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노동요였다는 것과 스페인 시민전쟁 당시 의용군들에 의해서도 불려졌다고 한다. 무솔리니에 저항했던 이탈리아 내 좌파 게릴라들이 파시스트와 나치 독일군에 쫓겨 산악 지방에 은거하면서 일종의 투쟁가로도 불려졌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반부에 이르며 독일군과 함께 이탈리아 북부로 패퇴해가던 무솔리니가 그의 애인 클라라와 함께 이탈리아 빨치산에 체포되어 처형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Una mattina mi sono alzato,   어느 날 아침 일찍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Una mattina mi sono alzato,  어느 날 아침 일찍
E ho trovato l'invasor.           우리는 침략자를 맞으러 간다

O partigiano portami via,       빨치산들이 나를 데려가네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O partigiano portami via,       빨치산들이 나를 데려가네
Qui mi sento di moror.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네

E so io muoio da partigiano,  내가 죽거든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E so io muoio da partigiano,  내가 죽거든 빨치산이여
Tu mi devi seppellir.             나를 묻어주오

E seppellire sulla montagna   산 아래 예쁜 꽃 그늘에다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E seppellire sulla montagna   내가 죽거든 산 아래 예쁜 꽃 아래
Sott l'ombra di un bel fior.      나를 묻어주오

Casi le genti che passeranno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Casi le genti che passeranno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Mi diranno ≪che bel fior≫.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볼 테지

E questo e il fiore del partigiano 그 꽃은 빨치산의 꽃이라고 말해주오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E questo e il fiore del partigiano 그 꽃은 자유를 위해 죽은
Morto per la liberta.                   빨치산의 꽃이라고

1980년대 후반 현실사회주의 세력의 몰락은 한동안 놀라움이었으나 미국의 네오콘들에게 이는 확실하고도 불변의 절대적 승리로 비춰졌다. 그것은 그네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질서가 사회주의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을 꿈꾸는 모든 세력에 대해 도덕적인 승리까지 거머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네오콘들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론자들은 도처에서 공격당한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격화되면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는 세계 민중들에게 커다란 희생과 모순된 질서를 강요했다. 그 결과 이전의 그 어떤 좌파 정치조직도 이루어내지 못한 세계 민중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들였다. 그것은 세기말 1999년 시애틀에서 폭발했고,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서나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졌다. 반세계화 운동이 벌어지는 곳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바로 벨라 차우이다. 세계 민중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나가기 위해 어깨를 걸고 나섰다.

우리는 진압 경찰에 끌려가는 유럽의 이름 모를 젊은이에게서, 남미의 늙은 농부의 입에서 이 노래 벨라 차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투쟁가' 중에서  '인터내셔널'가와 더불어 이만큼 대중적인 노래도 없다고 하니 말이다. 열심히 배워서 언젠가 한 번 써 먹을 기회가 있으시길 바란다. 이 노래는 이브 몽땅과 밀바도 불렀지만 그 외에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가수들이 불러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원곡의 분위기도 잘 살리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니타 레인(Anita Lane)이 불러 "Sex O'Clock"에 수록한 버전을 소개한다. 아니타 레인은 Nick Cave의 연인이자 Nick Cave & the bad seeds 음악의 작사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 국내에는 <애국투사의 꽃>이란 이름으로 번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