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추안 감독의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은 영어 제목 'The Last Supper'가 영화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유방 역을 맡은 '류예', 항우 역을 맡은 '오언조, 한신 역을 맡은 '장첸'의 연기는 물론 여씨 부인역을 맡은 '진람'의 연기가 기존 중국 배우들의 과장되고 기름진 연기와 달리 기름기를 거둬내 담백한 편이다.

영화 속에서 만찬은 영화의 앞 부분과 뒷 부분에 두 번 반복된다. 앞의 한 번은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인 장락궁을 함락시킨 뒤 권력과 환락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장량의 조언을 듣지 않고, 불필요하게 항우를 자극시켜 죽음 직전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홍문의 연(鴻門宴)'을 겪은 뒤 극적으로 생존하는 만찬이다. 항우와 유방은 진을 멸망시킨다는 공동의 대의로 뭉쳤으나 이후 천하쟁패를 위해 투쟁하는 관계가 되는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가 '홍문의 연'이었다.

뒷 부분의 만찬은 항우를 제거하고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 자신의 권력을 후대에 안정적으로 전해주기 위해 오랜 맹우이자 또 한 명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한신'을 처단하기 위해 마련한 만찬이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은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이 말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한나라를 창업한 한 고조 유방이 한신을 비롯해 견마지로를 다했던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겁박해 숙청했던 사례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하진 않지만 한신 역시 토사구팽의 세태를 한탄하며 죽었다는 일화로 이 고사성어에 빛과 그늘을 더해주기도 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중국 당국에 의한 검열에만 5개월여가 소요되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보시라이'의 실각 사건 같은)를 주는 등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을 건국한 혁명 주역들의 2세인 '태자당(혁명 원로 및 고위 간부 자제 그룹)' 출신으로 시진핑과 같은 계열이고, 리커창(후진타오)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다. 이 구도를 고스란히 '귀족(항우) vs. 평민(유방)'으로 놓을 수는 없지만 - 그렇다면 '여씨 부인(상하이방)'인가? -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한신을 숙청하기 전 여씨 부인의 입을 통해 이런 대목이 두드러지는데, 여씨 부인은 자신이 만나본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항우(귀족)'였다며, 자신도 인질로 잡고 있어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지 않고 놓아 주었으며 유방도 여러 차례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항우는 백골이 되었다고 말한다.

평민 출신의 '유방'은 "왕후장상에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寧有種乎)"라고 외치며 귀족 출신인 항우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권력을 잡고나자 바로 자신이 내세웠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겁박당하는 상태가 되었다. 역사가로서 사마천은 현대의 지평으로 바라보았을 때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사마천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것은 평범한 농민 출신의 혁명가 '진승'을 역대의 제후들을 올리는 자리인 〈세가〉의 반열에 둠으로써 그를 역대의 제후들과 동렬(同列)로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주나라가 그 도(道)를 잃자 (공자는)<춘추>를 지었다. 진나라가 정치를 잘못하자 진섭(진승)이 봉기하고 제후들도 난을 일으켰는데, 그 기세가 풍운을 일으키면서 끝내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천하를 다투는 발단이 바로 진섭의 반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훗날 반고가 저술한 《한서》가 기본적으로 《사기》를 그대로 초록(抄錄)한 것임에도 진승을 열전에 넣고서도 그를 찬양하는 말을 모두 빼버린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사마천은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하지 않았으니 '항우'를 <본기>에 넣은 것도 후세인으로서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유방이 천하를 쟁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새로운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일찌감치 멸망한 까닭에 대해 중국인들이 느끼는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은 시황제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진의 수도 함양(장락궁)을 차지한 유방에게 진의 마지막 황제 '자영'은 천하통일의 패업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이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에서 천하의 자객들을 무릎 꿇게 만든 '천하'론은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데, 진 시황제가 멸망한 까닭은 그의 대의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항우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과한 복고주의자로 역사적 반동인 셈이었다. 일찌기 공자는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하였는데, 이때의 하늘을 민중의 '시대정신'이라 보았을 때, 항우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민중의 열망과 진나라가 이룩한 변화된 세상의 구조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항우가 공자가 흠모한 주나라 문왕의 도를 따랐다기 보다는 귀족 출신의 신분적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을 보는 내내 일본판 <멕베스>로 구로자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이 있다면, 이것은 중국판 <맥베스>가 아니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내용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루 추안 감독이 상당히 서구적인 감감과 감수성을 지닌 감독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최근 중국 영화들을 볼 때마다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은연 중에 미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처럼, 중국 영화들 역시 중국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들 때문이다.

마치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코리안시리즈 3차전 시구에서 하고 많은 브랜드 중에 굳이 일본 브랜드 신발인 '아식스'를 신고 나온 것에 대해 여러 추측을 하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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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