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이어 폭격기’로 본 '정보'에 대한 어떤 생각.





지난 냉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전략폭격기 중 하나가 구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백파이어폭격기'란 것이 있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일은 솔직히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핵무기를 투사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핵무기를 소형화하면 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다양다종해지기 때문에 누구라도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고 싶어 하지만 핵무기란 기본적으로 원자를 분열시키기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온고압이 필요한 무기이므로 소형화하기 위해선 대단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간혹 우리 힘이든, 남의 힘이든 첨단 로켓을 개발하여 쏘아 올리면서 이번엔 위성의 무게가 몇 톤까지 가능하다거나 뭐라거나, 블라블라 하면서 로켓의 탑재 중량을 따지는 이유는 로켓이란 것이 언제라도 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사하면 로켓이요, 저들이 발사하면 로켓도 미사일로 의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어쨌거나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한들 그걸 목표지점까지 안전하게 보내서 터지게 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그걸 가지고 있다가 우리나라에서 터지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서 동서냉전이 시작되자 구소련과 미국은 서로 상대방 진영까지 어떻게 하면 핵탄두를 안전하게(?) 날려 보내서 요격당하지 않고, 무사히 폭발시킬 수 있을까 경쟁을 벌였다.

다시 말해 동서냉전 시대 무기개발의 역사를 한 마디로 축약하면 단순히 핵무기를 개발한 역사가 아니라 핵탄두를 소형화하고, 핵탄두를 상대방 진영에 무사히 투사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 역사이자, 반대로 상대의 핵탄두가 우리 진영까지 넘어오지 않도록 저지(요격)한다는 역사다. 그리고 이 역사는 동서냉전이 해체된 이후엔 그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와서 MD(미사일방어체계)란 말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핵을 상대 진영에 투사하는 무기 체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가 육지에서 발사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고, 둘째가 핵잠수함에서 발사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고, 셋째가 전투기나 폭격기 등에서 발사되는 공중발사 핵순항미사일(ALCM)이다.

'핵폭탄'하면 사람들은 과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을 떠올리지만 현대 핵전쟁에서 핵폭탄이란 곧 '핵미사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목표상공까지 비행기가 직접 날아가서 공중 투하하는 핵무기는 없다는 말이다.

인천문화재단이 발간하는 문화잡지 이름이 "플랫폼"인데, 무기 체계에서 플랫폼이란 대부분 이렇게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말한다. 육상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이동시키는 차량, 잠수함, 전폭기 등이 바로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플랫폼들로 개발된 무기시스템이다.

동서냉전 초창기 미국은 엄청난 강대국이었다. 지금이야 군사력만으로 강대국이라 할 수 있지만, 당시엔 모든 방면에서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트 전투기들이 개발될 만큼의 국력이 있었고, 실제로 새로운 전차와 전함과 무기 체계들이 개발되었다. 이 무렵 자고나면 새롭게 개발되는 전투기 시리즈들의 코드 넘버가 '100'자리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 제트 전투기들을 이른바 '센추리 시리즈'라고 불렀다. 그런데 베트남전 이후 미국 경제가 몰락하면서 국방비가 삭감되자 미국 국방부는 구소련이 가지고 있는 무기 체계를 엄청나게 부풀리기 시작했다.

모순(矛盾)의 싸움에선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군대의 힘을 부풀려야 상대적으로 예산을 따내기가 쉬울 수밖에 없다. 놓친 월척이든 이미 잡은 월척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강태공들에겐 점점 더 커지는 법이듯이 말이다. 결과적으로 미 국방부의 대표적인 '뻥' 사례 중 하나로 밝혀진 폭격기(물론 그렇다고 이 폭격기를 가볍게 무시할 정도란 뜻은 아니지만)가 바로 Tu-22M 백파이어 초음속전략폭격기였다(현대전쟁에서 어떤 무기 체계에 '전략'이란 말이 붙는다면 거의 무조건 핵무기 체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시면 된다).

Tu-22M 백파이어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소련 위협론의 유력한 증거로 떠들썩했던 초음속 폭격기였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이 폭격기가 소련에서 발진해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까지 와서 핵 폭격이 가능한 기종이라고 주장했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이 기종은 대륙간의 대양 횡단비행 능력이 부족했고, 유라시아 대륙의 주변 작전시 전역 폭격기로 사용되는 기종이라고 보아야 마땅한 정도였다. 또 당시 소련의 폭격기 기종들은 가속 및 속도에 중심을 두어서 항속거리 등에서 문제가 있었다.

어쨌든 이처럼 떠들썩하게 부풀려 두긴 했지만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실체가 판명되었으나 논란이 될 만큼의 고성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았다고 판명되었다.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사실 미국 CIA(중앙정보부)는 이 기종이 개발되고 얼마 안 된 냉전 당시에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알았을까?

당시 미 중앙정보부는 위성 촬영 등을 통해 이 기종의 전체 제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 기종의 무게는 알 수 없었다. 무게를 알아야 엔진의 추력 등을 계산해 상승한도, 항속거리, 최대 속도, 순항 속도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정보는 기체 제작에 사용된 금속의 재질을 파악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건 일급 기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길이 42.46 m
폭 34.2 m(후퇴시 23.3m)
높이 11.05 m
자체중량 54,000 kg
총중량 124,000 kg
상승한도 13,300 m
최대속도 마하 1.88
엔진 사마라/쿠즈네초프 NK-25(A/B) x 2
행동반경 2,400 km
승무원 4
제작(개발) Tupolev

미 중앙정보부는 항공기 제작 공장에서 기체를 제작하고 남은 금속을 이용해 소련의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의 기내 옷걸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소련을 여행하는 여행객으로 가장한 요원이 아에로플로트의 기내 옷걸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린 뒤 청소부를 매수해 쓰레기 더미에서 옷걸이를 빼내는데 성공했다. 미 중앙정보부는 이 옷걸이를 비밀리에 미국의 연구소로 보내 금속의 합금 비율과 밀도 등을 분석햇고, 결국 백파이어 폭격기의 무게를 산출해내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 폭격기의 항속거리가 그들이 염려했던 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미 중앙정보부(랭글리)와 국방부(펜타곤) 그리고 보수우파 강경세력인 레이건 행정부는 굳이 이런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 이른바 '스타워즈(Star Wars)' 계획이라 불리는 전략방위계획 - 을 발표하고 추진하여 오늘날의 미사일방어계획(MD)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나는 어떻게 알았을까?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 지하철 앞에는 좌판을 벌여놓고 한 권에 500원 하는 싸구려 책들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있었다. 거기에서 파는 책들 중엔 이름 없는 출판사가 일본의 탐사전문(?) 저널리스트들의 책을 대충 번역해서 대충 만든 책들이 있는데 간혹 그런 책들 중에도 건질 만한 것들이 있다.

예전에 내게 처음 일을 가르쳐주었던 선배는 극작가로 데뷔한 작가였는데, 이 선배는 내가 읽는 책들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그런 충고를 해준 적이 있다.

"너 글쟁이가 되려면 그렇게 좋다는 고전이나 명저만 읽으면 안된다. 그런 책들이 좋은 책이긴 하지만 정작 그런 책에선 뽑아먹을 게 별로 없거든. 진짜는 <선데이서울>이나 <아리랑> 같은 책에 실린 수기 같은 거야. 그런데 실린 형수를 사랑하게 된 시동생 이야기 같은 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사실, 세상에 유통되는 모든 유용한 정보 혹은 이야기란 모두 어떤 이들 눈에는 쓰레기더미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읽고 분석하고 조합해내는 시선의 필터를 통해 건져낸 것이다. 유능한 이야깃꾼 혹은 정보분석관은 그 필터(시선과 저변)가 특별한 사람인 것이지 언제나 특별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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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