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학교다
- 산길, 강길, 바닷길에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역사

조지욱 (지은이) | 낮은산 | 2013-10-28

나는 '길'을 사랑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문명과 소통을 상징하는 길이 생명에겐 죽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길을 걸을 때마다 가끔이라도 그 길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조지욱 선생의 책 "길이 학교다"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펼쳤다.

그저그런 청소년 상식 증진용 도서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마감 뒤끝의 심심파적 읽을거리 정도로 시작했는데 "청소년들을 독자로 겨냥한 듯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깔끔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내용에 담긴 수준 높은 통찰이 돋보이는 훌륭한 지리(地理) 입문서"였다고만 정의하고 넘기기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사실, 김두식 선생의 책 "다른 길이 있다"를 먼저 읽을지 이 책을 먼저 읽을지 하다가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가 이 책처럼 인터뷰집은 아니어도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기에 지금의 내 심리상태로는 지금 읽기에 버겁게 여겨진 탓에 이 책을 먼저 들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조지욱의 책 서문에 해당하는 "길이란 무엇일까?"는 세상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는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어디 가는 길이니?"
"아프리카의 배고픈 어린이들을 구하는 길은 무엇일까?"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마라."

하나는 이동통로로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방법으로서의 길이오, 또다른 하나는 도리로서의 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큰 맥락에서 이 세 가지 길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저자의 속깊은 관점과 이것을 통합해낼 수 있는 탁월한 역량이 없었다면 이 작업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을 읽노라면 그 길(세 가지 길)을 함께 걷는 듯 하고, 함께 걷고 싶어지게 만든다.

"경상북도 문경에는 '토끼비리'라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있다. '비리'란 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를 뜻하는 사투리이다. 지금도 토끼비리를 지날 땐 긴장하고 주의해야 한다. 까불면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토끼비리는 폭이 30cm가 채 되지 않는 곳도 있다. 이 길이 조선 시대에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했던 길이다." (24쪽)

그런데 이 길은 1,100년 전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에게 쫓겨 목숨을 빼앗길 뻔한 그곳에서 시작된다. 견훤에게 패해 쫓기던 왕건이 이곳까지 쫓겨왔으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토끼가 벼랑을 타고 가는 것을 발견하여 뒤쫓아가서 살아난 길이다.

"초한지"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쫒겨 척박하고 후미진 촉땅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나와 천하를 쟁패하기 위해 벼랑 끝에 닦은 길을 '잔도(棧道)'라고 하는데, 국내 유일의 잔도가 바로 '토끼비리'란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길이다. 그는 이처럼 역사적인 길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가하면 색다른 유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어 나는 '노가다'란 말을 지금까지 일본어로 'dokata[土方]'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았는데, 이 책에선 경인선을 건설할 당시 일본인 반장이 구호를 부칠 때 일본말로 "노(좋다, 으뜸)"라고 구호를 부치면 조선인 일꾼들이 "가다(덩치, 모양)"라고 후렴을 붙이며 무거운 것을 들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물론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산을 넘는 길

우리 역사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지명 '철령'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다.

"14세기 말은 고려가 문을 닫고 조선 시대가 열리는 시기였다. 힘 빠지는 고려를 지켜보고 있던 명나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령 북쪽 땅(지금의 함경도)을 먹겠다'고 선전포고한다. ...<중략>... 이에 고려 우왕은 명나라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성계 장군에게 5만 군사와 함께 출전하여 고구려의 옛 땅인 요동지역까지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잠깐, 왜 명나라는 철령 남쪽만을 고려로 인정하려 했을까?

철령은 태백산맥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산의 길목에 해당하는 고대다. 철령은 우리 땅의 척추이자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인 백두대간의 등허리에 있다. 북쪽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면 남쪽 태백산맥 능선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철령은 이토록 중요했기에 그곳에 '철령관'이란 관문이 있었고, 이 관문은 지역 간 경계가 되어 철령관 동쪽 강원도 땅을 관동, 서쪽의 평안도 일대를 관서, 북쪽의 함경도 땅을 관북 지방이라고 한다."(67-68쪽)

해마다 한두 차례씩 우리나라의 역사유적을 찾아가 공부를 하는데, 살아있는 역사기행이 되기 위해선 단지 현장의 문화유적을 살펴보고 '아! 좋구나. 아름답구나'하고 돌아오는 정도론 부족하다. 살아있는 역사기행이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는 일이다. 그런 마음 공부 없이 그저 가서 아름다운 경치와 맛난 향토 음식에 젖었다가 돌아오는 건 그냥 관광이다.

철령은 천혜의 요충지로 우리 군대가 함경도 땅을 지나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반대로 중국이 한반도로 내려올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이기도 했다. 삼국시대 당나라가, 고려시대 명나라가, 조선시대 이여송이, 한국전쟁 당시 팽덕회의 중국인민해방군이 어디쯤에서 멈추고자 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이 부분에 대해선 소설가 유하령 선생이 전에 말씀하신 부분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이처럼 역사적인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생태적인 길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진화론의 섬, 생태의 보고 갈라파고스 제도가 인간의 발걸음에 의해 망가지고 있는 현실,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비행기와 자동차 행렬에 치어죽어가고 있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가 하면 수에즈, 파나마 운하에서 시작해 운하사업으로 진행되었던 4대강과 경인아라뱃길의 허상에 대해 조목조목 질타하고 있다.

댐이란 말이 네덜란드에서 유래된 말이란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같이 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의 도시들 지명에 유난히 담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 댐은 여러 가지 유용한 면도 있지만 자연생태와 인간의 삶에 끼치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프랑스는 댐이 이익보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문제가 더 크가며 지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댐들을 해체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길이 진리다

그는 미국 키시미 강의 사례를 든다. 1928년 미국 플로리다의 대홍수로 2,000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은 그 원인을 분석했다. 문제는 운하 때문이었다. 자연적인 강의 흐름을 무리하게 직선화하고, 강바닥을 파내고 갑문을 설치하면서 문을 열어야만 물이 흐르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또 높은 둑으로 수중 생물이 육지와 하천을 오갈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요. 육상 생물들이 물을 찾아오는 길도 끊겨버렸다. 그런데도 미국은 1971년까지 23년간 3천만 달러를 들여 키시미 강 운하를 만들었다.

이곳을 찾던 철새들의 95%가 발길을 끊었고, 결국 하천 주변에 살던 주민들도 이곳을 떠났다. 자연히 지역 간 왕래가 줄었고, 운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이곳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는데 3억 달러를 들이고도 아직까지도 완전히 복원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고 있다.

걷기 좋은 올레길이 좋은 길일까?
속도가 무제한인 아우토반 고속도로가 좋은 길일까?

아마도 좋은 길이란, 좋은 생각으로 만드는 길과
좋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음으로 보이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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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