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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사회과학

폴 조아니데스 - Sex - Guide to Getting it on/ 다리미디어(2004)



Sex - Guide to Getting it on / 폴 조아니데스 지음, 대릭 그뢰스 시니어 삽화, 이명희 옮김 / 다리미디어 / 2004년 7월

바람구두, 섹스책을 사다....


내가 어쩌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게 기억이 안 난다. 분명 이 책은 나온지 아직 한 달도 채 안 된 따끈한 책인 걸로 봐서 어딘가 신문 서평을 읽었거나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럴 텐데 기억이 안 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섹스책이라서 나 스스로 아, 이런 걸 읽어도 될까 하는 묵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거다. 게다가 이 책은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도 아니고, 아내가 서점에 나갔다가 "뭐 읽고 싶은 책 없어?"하는 뜻밖의 제의를 받은 덕이다(참고로 울 마눌은 내게 용돈 말고 다른 걸 해주는 법이 거의 없으신 분이다, 농담이다. 농담). 하여간 사무실에서 쫄따구(여자 - 참고로 저 랑 같은 학교 출신임 - 어떤 학교는 특별한 편견을 조장하기도 합니다.)가 앉아 있는 가운데 "응, 섹스 책"이라고 난 지극히 덤덤함을 가장해 말했다. 울 쫄따구보다 놀라운 반응을 보인 건 울마눌이었다. 수화기로 흘러드는 아내의 목소리는 약간 놀라움과 짜증이 섞인 것처럼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도대체 이 인간은 "중세 마법에 관한 책"부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인간들 얘기까지 사들이다 못해 이젠 섹스책이라니...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랴. 소위 "삘"이 와서 꽂혔는데... 결국 자기 친구랑 서점에 갔다가 보나마나 서점 점원에게  더듬거리며 "혹시 섹스란 책 나왔어요?"하고 물었을 것이다. 아니면 집요하게 본인이 서점 구석구석을 뒤져서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21세기는 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큰 소리 뻥뻥 쳤지만, 불행히도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가 개처럼 길거리에서 섹스하는 지경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논의에서 성 혹은 섹스는 특히나 성행위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도 금기 중에서도 금기다.
'데즈몬드 모리스'가 그랬던가? 동물, 그 중에서도 포유류 중에 숨어서 섹스를 하는 유일한 짐승이 사람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고백컨대 나도 임신한 여자를 향해 이상한 눈길을 준 적이 있다. 어려서 "성교"란 것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모든 인간은 그 과정을 통해 수태되고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이 역겹다고 해야할지 하여간 뭐라 말하기 곤란한 그런 복잡한 심경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는 거다.

니가 몽정을 알아? 남자들이 변기에 오줌을 묻히는 이유는?

예전에 나는 잠깐 영화 시나리오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화여대(학교가 중요하다는 말은 분명 편견이지만?) 출신의 한 친구가 있었다. 영화도 많이 보고, 영화 시나리오 공부도 많이 했고, 상식도 풍부한 똑소리 나는 친구였는데 그가 쓰고 싶어한 시나리오는 태반이 페미니즘적인 것들이었다. 문제는 페미니즘적인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상업적인 시나리오로는 참 어려운 주제이고, 더욱 어려운 일은 잘 쓰기가 그보다 더 어렵다는 거다. 하여간 이 친구는 남성의 몽정(night pollution, 夢精 )에 대한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썼는데, 월경(menstruation , 月經)이란 걸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몽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여자가 쓴 몽정 이야기가 어설프고 서투르게 들렸다. 문예창작을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개의 문예창작은 집필과 그에 대한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대개는 자기 작품에 대한 간단한 개요를 말하고, 그에 대해 토론자들이 나서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는 건데, 이렇게 말하니까. 대개 재미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이런 식의 수업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사람 피 말리는 일인지 잘 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혹은 잘 읽어주려고 해도 전문적인 작가가 아닌 사람이 쓰는 글이란 게 대부분 엉성하기 이를 데 없어서 맘 먹고 공격하려고 들면 속 상한 건 둘째고 선 채로 눈물만 안 흘려도 다행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워낙 주제가 주제이고, 페미니즘적인 내용이란 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도 어설프게 이야기했다가는 시대착오적인 골빈 남성에 마초이즘에 푹 절은 재수없는 인간으로 모멸 당하기 딱이라서 그런지 이 친구의 시나리오를 이야기할 때는(분명 본인 잘못도 있었겠지만) 대개의 남자들은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그런데 나는 그 무렵 어린 소녀가 등장하는(롤리타 같은 스토리 아니다, 뭐) 호러 비슷한 시나리오를 준비 중에 있었다. 스티븐 킹 원작,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공포 영화 "캐리(Carrie, 1976)"하고 좀 비슷했다고 해야 할까? "캐리"는 초경을 경험하는 어린 소녀의 잔혹한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해서 그에게 아무래도 니가 몽정에 대해 남자 친구에게 좀 어설프게 들은 것 같은데, 나에게 너의 초경 이야기를 해주면 나도 너에게 내 첫 몽정에 대해 이야기해주겠다는 제의를 한 적이 있었다. 나로서는 너무나 진지한 제의였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는 나에게 몹시 화를 내며 그날 시나리오 수업 분위기가 싸해진 경험이 있었다. 이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 시대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제대로 알고 있거나 이에 대해 진지하면 진지한 대로, 농담이면 농담인 대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건드렸던 것이라면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가 다녔던 대학에서는 사진과 학생들이 강의실 지하 복도에서 서로의 나체를 촬영하며 누드 사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고(누드 모델을 돈 주고 사느니 그 편이 학생들로서는 훨씬 이익이었을 거다), 나로서는 그런 분위기를 예술의 분위기, 예술에 꼭 필요한 자유로운 향기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하여튼 우린 넘치는 성담론 속에 살면서도 성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여성들은 종종 남성들이 소변을 보고 난 뒤 변기에 오줌이 튀는 걸 더럽다고 말한다. 그거 하나 딱 조준 못 하느냐면서 타박하지만, 정작 남성들이 오줌 방향을, 특히나 처음 발사하는 순간에 그 오줌발이 어디로 튈지는 본인도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다. 특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성과학(性科學, sexology)란 측면에선 더욱 그렇다. 성과학이란 것은 성에 관한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특히 성행위 자체에 한정해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행위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A.D. 1966년 지상에 클리토리스가 재림하다

이 책을 읽다가 나는 꽤 여러 차례 웃었다. 나는 야나기타 리카오의 "공상비과학대전" 같은 책이 아니면  책을 읽다가 소리내어 웃는 일이라곤 거의 없다. 대개는 '씨익'(에반게리온의 씬지 아버지 '이카리 겐도우'처럼) 웃으면서 밑줄을 긋거나 아니면 저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웃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하도 웃으니까. 울 마눌님께서 '왜 그래' 하면서 드디어 책에 대한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필자인 "폴 조아니데스"는 앵글로 색슨계 작가들이 조나단 스위프트 이래 연마해 구사하는 블랙유머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1960년대에는 굳이 달에 도착한 우주인의 예를 들지 않아도 일상이 된 과학 덕분에 여성, 남성 모두 "클리토리스(clitoris)"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클리토리스는 결코 1960년대 비로소 생겨난 기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명칭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고, 그 기능을 아는 사람은 남녀 양성을 통들어서 더더욱 없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이 새로운 발견을 미니 페니스 정도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파트너에게 쾌감을 선사하고 싶었던 남성은 자신이 애무받고 싶은 강도로(남성의 페니스는 그다지 미니 사이즈는 아니지 않은가)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페니스를 애무하듯 클리토리스를 문지른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여성은 극히 불편해지고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남성이 그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 <16-17쪽>


그리고 이 책은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우습지만 결코 우습지 않은 정치적 이야기 몇 가지를 들려준다. 가령, 19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미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어느 배우 출신의 정치인은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독신 문제를 다루는 행정국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 행정국이 독신 남녀들의 순결을 계도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인 대통령은 이렇게 순결을 계도하고자 했음에도 그의 딸은 다리를 벌린 섹시한 포즈로 남성용 섹스 잡지에 출연했다.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인은 군대 내의 마스터베이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군의관 장성을 해임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높이고자 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그는 금욕을 골자로 하는 법안에 수백만 달러를 할당하라고 명령했다. 오로지 섹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위해 말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재임 중에 일어난 부적합한 관계로 인해 미국의 초등학생들이 저녁 식탁에서 부모에게 '오랄 섹스'가 무엇인지 묻게 만들었다.

섹스 - 세계의 근원(The Origin of the World)에 대한 호기심

이 책을 읽는 어떤 사람들은 이 책에 포함된 몇 장의 삽화와 어떤 이야기들이 특히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앞서 이야기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꾼 친구처럼 나의 이런 독후감이 또 그럴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구스타프 쿠르베가 그린 "세계의 근원"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대로 여성의 성기를 있는 그대로 그린 작품이다. 터키계 이집트인 대사였던 칼릴 베이가 1886년 쿠르베에게 주문하여 그려진 이 작품은 주문한 당사자조차 남들 보는 앞에 걸어두길 꺼릴 만큼 적나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엔 얼굴, 팔, 다리 모두 배제된 채 오로지 여인의 복부와 성기만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고 난 뒤 한 친구는 "상상할 수도 없는 망각 속에서 작가가 발, 다리, 엉덩이, 배, 허리, 가슴, 손, 팔, 어깨, 목, 그리고 얼굴을 그리는 것을 잊어버렸다(김영애, 페로티시즘, 2004, 개마고원)"고 쓰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인권이 확립되지 않고, 인체의 신비가 아직도 여러겹 쓰개치마에 의해 가려져 있던 시절 여성의 육체가 남성들을 위한 끝없는 성 판타지가 되던 시절이었다.

이 그림 주문자 칼릴 베이는 이 작품 앞에 덮개 그림을 주문해서 덮어놓고, 일부 친밀한 친구들만 불러서 감상하곤 했다. 이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부다페스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나치에 의해 압수되었고, 다시 어떤 개인 소장가의 손으로 흘러든다. 그는 자끄 라깡이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이 그림의 노골적인 것을 걱정한 나머지 앙드레 마송에게 덮개 그림을 주문해서 그림을 감춰 두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뉴린 무어와 J.케네스 데이비슨은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섹스 경험과 그에 따르는 죄의식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성에 대해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여성은 남성가 관계 맺는 횟수가 적고 한결 더 진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죄의식을 느끼는 여성은 섹스에 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소녀들보다 더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첫 경험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충격적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자신의 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소녀들이 더 어린 나이에 섹스를 시작했으며, 성 파트너의 숫자도 더 많았고 진지하지도 않았다. 또한 죄의식을 느끼는 소녀들은 대부분 '우연히 데이트한 파트너' 혹은 '그저 어쩌다 만난 남성'과 처음 성경험을 가진다."라고 한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임상학적으로 말해서) 모두 미국의 사례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들어 온 주변의 이야기들(음담패설을 말하는 게 아니다)을 종합해보았을 때, 성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일수록 더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때로 어떤 경험들은 되돌이키기엔 많이 늦은 적도 있었다.

성에 대해 쉽게 혹은 밝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종종 변태이거나 무례한 사람 취급받기 쉽다. 그러나 우리들은 근엄하기 짝이 없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젠트리들, 귀족들이 성적으로는 가장 문란했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우리 역사상 성적으로 가장 엄격하던 시절에 우리는 정치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가장 폭력적인 시대를 살았다. 이 책은 전혀 어렵지 않고, 읽다 보면 실제 생활(반드시 성 생활을 의미하지는 않지만)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무식 속에 있었던 가를 깨우치게 해준다. 결혼하신 분은 하신 분대로, 아직 미혼인 사람은 미혼인대로, 자녀들에게 보다 올바른 성교육을 해주고 싶은 분은 또 그 이유에 합당하게 읽을 만한 책이다. 단, 한 가지... 이 책은 서두에 이런 경고를 하고 있다. "이 책에 포함된 정보로 인해 개인 혹은 신체가 직/간접적인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손해나 피해를 입는 경우, 혹은 상처와 병이 생길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이 없음을 밝힌다." 그 경고의 이유가 궁금하다면 물론, 이 책을 읽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주자면, 성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개인적인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가령, 남성들의 80% 이상은 공중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타인의 성기를 의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