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였을 거다.
그 세계는 사람들이 밥이나 빵을 먹지 않고,
공기만 마셔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천국(?)이었다.
그 동화를 읽고 정말 한동안 상상이 그쪽으로 뻗친 적이 있다.
정말 내 모든 것이 아직 순진하고 순수하던 무렵이었다.

그러던 내가 굳이 인간이 공기만 마시고 살지 않아도
미래세계의 언젠가 풀타임섹스머신이 저렴하게 등장한다면
최소한 남자들 중 상당수는
그냥 잉여로 존재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영화 <A.I.>에서 주드 로는 '지골로 조' 로봇으로 등장한다. 그는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섹스머신으로 프로그램되었다. 그런 이유로 뭇남성들은 이 로봇만 보면 파괴하고픈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내가 이런 상상을 하게 된 것은 우리 건물 화장실에 이런 광고 문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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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문구를 읽고, 나는 황인숙의 시 "후회는 없을 거예요"를 떠올렸다.

후회는 없을 거예요

- 황인숙


후회 가득한 목소리로
오, 오, 오오, 여가수가 노래한다
남겨진 여자가 노래한다
마음을 두고 떠난 여자도 노래한다
후회로 파르르 떠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인터넷 벼룩시장에서
마사이 워킹화를 산다
판매글 마지막에 적힌
‘후회는 없을 거예요’
그 한 구절에
일전엔 돌체앤가바나 손목시계를 샀다
작년 여름엔 소니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후회는 없을 거예요
벌써 후회하는 듯한,
후회는 없을 거예요
서글픈 목소리로 나직이,
후회는 없을 거예요
그 시계와 카메라는 상자째
서랍 안에 있다
후회는 없다
오, 오, 오오~

<출처> 황인숙, 문학과사회, 2008년 겨울호(통권 84호)

“킥킥”, 황인숙의 신작시를 읽으며 나는 “킥킥” 웃었다. 오다가다 서너 번 스쳐갔던 것이 황인숙 선배와 내 인연의 전부였다. 구태여 스쳐가는 만남을 부여잡기 위해 학연을 내세운 바도 없지만, 언제나 허공 어디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선후배 같은 세속의 인연쯤 안중에 없을 듯이 보인 탓도 크다. 무엇보다 나는 선후배로 만나기 전에 그녀의 애독자 중 한 명이었으므로, 나중의 인연을 시인과 독자의 관계보다 앞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스침은 시인이 풀어놓은 일상의 공간을 충분히 상상하게 만든다. 실은 우리 모두 비일비재(非一非再) - 한 번도 아닌, 두 번도 아닌 - 한 경험 속에 익숙한 일들을 그녀는 시(詩)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마사이 워킹화, 돌체앤가바나 손목시계, 소니 디지털 카메라”같은 브랜드 제품들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시대의 풍속도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들일 뿐이다.

‘후회는 없을 거예요’란 구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을 먼저 떠올렸는데 막상 ‘후회는 없을 거예요’를 놓고 인터넷 검색기를 돌려보니 “딱!! 5분만 읽어봐 주세요! 후회 없을 겁니다. 저 두 첨엔 안 믿었는데 밑 져야 본전이구 해서 시작 했답니다~”부터 시작해서 “돈따는 재미 ...높은승률....님도느껴보세요...후회는없을겁니다.”까지 죄다 돈 쓰는 얘기 아니면 돈 벌 기회를 제공해주겠단 글들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현상에 은폐된 대중의 욕망도 들춰보면 사실 그런 것이다. 개인은 더 이상 삶의 향배를 ‘사회적 기획’ - 그것이 거시적인 경제정책이든 아니면 근대 개인의 해방을 기획했던 계몽적 기획이든 - 을 통해 개선해나갈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비판적 지성이 사라진 시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부재하게 된 대중의 관심이 이제는 ‘사회적 기획’에서 ‘개인적 기획’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대릴 한나는 군위안부용 안드로이드 프리스(Pris) 역으로 등장했다.


월간 『신동아』 12월호(2008)에 실린 미네르바의 글에는 그가 어째서 대중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지에 대한 이유가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들 개개인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로 <스태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란 내용을 적고 있다. 그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친절하게도 개개인이 어떻게 해야 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지 해설해주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준다. “더 이상 사회를 믿지 말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길을 찾아봐!”라고 말한다. 그런데
월간 『신동아』 12월호(2008)에 글을 쓴 미네르바는 진짜였을까? 그는 진짜 미네르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더 진실같은 시대다.

그런데 내가 “킥킥”대며 웃은 까닭은 황인숙 시인의 시적인 삶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거나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현상에 은폐된 대중의 욕망을 읽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아침나절 공중화장실에서 발견한 광고문구가 황인숙의 시 속에 나오는 ‘후회는 없을 거예요’보다 더 극적이고, 또한 매우 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문구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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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에 에디트 피아프의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의 마지막 부분을 연결했더라면 훨씬 더 와 닿을 뻔 했다.

왜냐하면 나의 삶, 나의 기쁨이
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실제 애인보다 "훨" 편한 애인은 전화기 저 끝(tele)에 있고, 뒤끝도 없다. 이런 시대에 “제발, 후회 좀 하고 살아!”라고 하면 욕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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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란 처지(處地)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말로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입장의 동일화가 가장 큰 연대의 정신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교육의 기본 테제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연의"에는 위나라를 세운 조조가 죽자 그 뒤를 잇기 위해 형제들끼리 치열한 권력쟁탈전이 벌어지는 대목이 있다. 양수와 순욱의 조력을 받는 조식과 가후의 조력을 받는 조비의 권력싸움은 권력 앞에 부모자식도, 형제도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결국 형제간의 권력쟁탈전에서 승리한 조비는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조식을 죽이라는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이되(그것이 동생을 살리려고 한 것인지, 죽이려는데 명분이 부족하여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형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를 짓되, 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숙제를 내어 동생 조식을 생사를 건 시험에 들게 한다.

그때 쓰인 것이 조식의 유명한 '칠보시'이다.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上煎何太急(상전하태급)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서로 들볶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가

지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용자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노동자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마치 조식의 칠보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자식들인 셈이다. 그런데 "서로 들볶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가" 아마 그 밑바탕엔 나만은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있을 게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듯 사회 전체적으로 고객감동서비스에 대한 강박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어딘가에 화풀이를 하고 싶어지고, 이것이 악순환이 되어 '서로 들볶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그렇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내의 다른 체제에서도 자원의 분배와 소비의 문제에 있어 '시장'의 가치를 절대로 낮게 보지 않는다. 시장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존재해왔던 매우 합리적인 분배의 도구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시장에서의 합리주의로만 존재할 때 인간의 관계에서 '염치'는 사라지고 '얌체'만 남는 건 아닐까.


나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사회성의 기본 중 기본이다. 언젠가 나는 마음속에 '남(타인)'을 품지 못하면 결국에 '나'도 품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자연(영성)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탓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 또는 어떤 생명체의 희생을 통해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모든 생명체의 원죄이며 업보다.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가 어미의 자궁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생명체는 모체의 영양분을 탈취하는 존재이고, 이후 자궁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다른 생명체를 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언제나 배가 고팠던 원시의 인류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가깝게 느꼈던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생명을 취한 뒤에는 동굴이나 바위 벽면에 자신들이 취한 생명을 그려넣어 이들의 목숨이 다른 어딘가에서는 지속되길 기원했다.

이것을 악어의 눈물이나 위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어찌되었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선 농부가 이런 생명의 존엄에 대해 가장 가깝게 느끼는 이들이다. 현대의 문명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음식이란 공장에서 나오는 산물에 가깝다. 그렇기에 음식을 적나라한 다른 생명체의 목숨으로 느끼는 이들은 아기들뿐이다.

아이들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생선을 보고도 종종 먹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생선이 눈을 뜨고 있으며 온전히 생선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때가 많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인간은 그 스스로도 비인간화의 길을 걷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빚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생명에 대한 두려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 그것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육은 인간을 인간으로 키우지 못하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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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 일본 트라우마의 비밀을 푸는 사회심리 코드
권혁태 (지은이) | 교양인 | 2010-08-20


권혁태의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지난 2010년에 나오긴 했지만, 그 해에 나온(다시 말해 그해 나온 책들 중에 내가 접해본) 책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일 뿐만 아니라 내가 읽어본 일본 관련 서적 중 가장 빼어난 책으로 손꼽는 책이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일본의 최근 행보들을 일본의 근현대사를 고찰함으로써 그 이면에 감춰진 일본이란 국가의 욕망과 의도에 대해 사회과학적 분석을 가하고 있다. 분석의 내용과 형식이 매우 정치(精緻)한 책인데, 어떤 까닭에서인지(교양인은 심리학 저서들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의 출판사인 교양인은 책제목은 물론 헤드카피까지 '일본 트라우마의 비밀을 푸는 사회심리코드'라고 심리학 서적 냄새가 물씬 나는 느낌으로 밀어서(그 결과 한 마디로 책을 베려버렸다) 이 책이 지닌 여러 미덕을 훼손시켜버린 느낌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은 마치 일본에 대한 그저 그런 인상비평 책들 ‘느그들이 일본을 알어?’ 같아 보인다. 게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표지 이미지 속 여인은 정말 ‘안습’이다. 표4의 카피 역시 '일본의 집단 심리를 읽는 네 가지 코드 불안, 분열, 트라우마, 그리고 자기기만'이다. 이래서야 이 책은 그저 그런 심리학자의 일본탐방기 같아 보일 수밖에. 저 네 개의 단어가 물론 이 책의 열쇠말일 수도 있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단어들이 사용된 까닭은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도출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표4에 이용된 느낌은 마치 선험적으로 주제를 정해놓고, 일본에 대해 접근한 것처럼 오인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노란 색 표지라니….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 편의 우월감과 다른 한 편의 열등감을 떠나 일본과 우리의 근대는 일본이란 어머니(아버지)이자 자매를 미국이 근친교배시킨(이건 내 입장에선 굉장히 순화시킨 단어 선택이다)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는 까닭은 '한국과 일본의 근대'가 미국이란 공통의 DNA를 강제로 물려받은 까닭이 크다. 그런 까닭에서라도 우리는 일본을 좀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하기사 내게 안 그런 분야가 하나라도 있겠냐만).

그것이 이 책을 단지 일본 우경화에 대한 고민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정치의 맥락에서 일본은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중국과는 등거리 외교를 해왔지만 한국은 대륙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대륙(중국)의 역사에 더 깊은 영향을 받아왔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입장이 좀더 명확하게 갈리는 부분은 이 대목이 될 것이다.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건 일본의 불안을 읽는 것이지만 동시에 한국의 불안과 미래를 읽어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한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일본 내의 좌파 정당과 정치세력의 몰락 과정에 대해 섬세하게 묘파하면서도 중요한 맥들을 짚어주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 좌파의 ‘분열’ 과정이다. ‘우치게바’를 우리말로 옮기면 ‘내부 폭력’쯤 될 터인데,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경우엔 적군파를 통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이지만 1980년대 운동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형태는 다소 완화되어 있지만 우리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여러 내부폭력들이 존재했고, 경험했다. 일본과 비교해 조직 내 위계, 성역할 분담을 가장한 차별과 성폭력 등등의 문제란 점에서 좀 더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형태의 폭력이었다.

난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노동 운동이 도덕적으로도 파탄났음을 드러낸 장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97년 IMF를 앓고 이 땅은 '구조조정-정리해고'라는 강요를 순리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미쳐도 곱게 미치란 말이 있고, 프로야구에서도 비록 오늘 경기에서는 패하더라도 내일의 경기를 위해선 오늘 어떤 모습으로 패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1998년 여름의 현대자동차노조는 ‘구조조정-정리해고’에 맞서 30여일이 넘는 투쟁을 하면서 추하게 미쳤고, 추하게 패했다.

약간의 살점을 얻는 대신, 척추가 부러진 것이다. 당시 노조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정리해고 시키지 않고, 가장 적은 사람들을 정리해고의 대상에 올리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투쟁을 일단락지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대상이 사업장에서 열심히 밥 짓고, 파업현장에서도 역시 열심히 밥 짓던 식당노조 아주머니들이었다는 것이다. 30여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싸워왔지만,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서는 누구도 아주머니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없었고, 그들의 고통을 아는 체 하는 이들도 없었다. 사측이 노조에게 그랬던 것처럼, 노조 또한 아주머니들의 분노와 절규를 외면했던 것이다. 1998년 현대자동차노조는 함께 연대 투쟁하던 이 아주머니들을 한때 ‘운동의 꽃'이라고 추켜올렸다. 그런데 운동의 꽃을 꺾어 바친 것은 누구였을까?

이 사건은 비록 적군파의 ‘우치게바’와 형태는 다르지만,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살인 못지않은 파괴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폭력성과 위선이란 측면에서 사실 훗날 나타나게 될 용산참사나 쌍용차노조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의 징후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쌩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후 노동운동은 현재까지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때의 각인효과는 일베의 출현에 이르기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잠이 안와서 뒹굴거리다 문득 눈에 띄어 다시 펼쳐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들이다. 내가 책을 쥔 채 다시 잠들지 않은 것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책인지 다들 알겠지? ㅋㅋ

*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교조가 해직노동자를 버리지 않으면 법외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안되는 정부의 요구에 맞서 투쟁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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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구엔지압(武元甲, Vo Nguyên Giap, 1911.8.25 ~ 2013. 10. 4)





보구엔지압, '붉은 나폴레옹(Red Napoleon)'인가?

현행 발음 표기대로라면 '보응우옌잡'이 맞다고 하는데, 그냥 입에 밴 대로 보구엔지압이라고 해두자. 그가 지난 10월 4일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를 탁월한 군사전략가라고 말하는데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자 동시에 뛰어난 혁명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그를 일러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붉은 나폴레옹(Red Napoleon)'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가 이런 별명을 좋아했다고도 하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그는 나폴레옹과도 거리가 멀다. 도리어 그는 러시아에서 나폴레옹을 패퇴시켰던 미하일 쿠투조프와 닮았다.

역사상 차르의 궁전에 깃발을 꽂는데 성공했던 외국 군대는 징기스칸의 몽골군을 제외하곤 없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과 그의 위대한 군대( La Grand Armée)는 자신들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프랑스가 러시아의 유럽 동맹국을 공격하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러시아는 1805년과 1807년 두 차례에 걸쳐 나폴레옹에게 크게 패하면서 군대의 10분의 1을 잃어야 했고, 프랑스와 불평등 조약에 서명해야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는 조약을 준수할 의사가 별로 없었고, 나폴레옹 역시 알렉산드르 황제의 러시아를 호시탐탐 넘봤다. 나폴레옹의 넘치는 자만심이 화를 불렀다. 그는 적국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도 잘 드러난다.

"알렉산드르 1세여, 나의 70만 대군이 모스크바 근처에 다다랐다. 더이상 험한 꼴 보기전에 항복하라!"

당시 나폴레옹을 상대하던 적장은 미하일 쿠투조프였다. 쿠투조프는 예전에 이미 나폴레옹에게 크게 패했던 경험이 있는 장군이었으며 당시 러시아군의 전력은 여러 면에서 나폴레옹의 군대에 비해 훈련과 장비면에서 뒤떨어졌다. 그는 일부러 후퇴하는 전략을 택해 나폴레옹에게 텅빈 모스크바를 내준 뒤 곧 불을 질러 파괴했다. 나폴레옹이 할 수 없이 철수하게 되자 쿠투조프는 그가 왔던 서쪽 길목만을 터주었다. 위풍당당하게 러시아를 침공했던 그의 위대한 군대는 만신창이가 되어 러시아 평원에서 묻히고 말았다. 1814년 3월 알렉산드르 황제는 당당하게 파리에 입성했다.

역사교사를 장군으로 만든, 사람 볼 줄 알았던 호치민과의 만남

보구엔지압을 쿠투조프에 비견하는 것은 물론 여러 면에서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쿠투조프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던 알렉산드르 1세는 쿠투조프 장군의 지연작전과 초토화 작전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사실 이런 작전은 황제는 물론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없는 법이다. 황제 역시 쿠투조프 장군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며 매우 무능한 장군으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던 지압이 1940년 호치민을 만나러 중국에 갔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9세였다. 지압을 만난 호치민은 나이 30도 안 된 지압에게 베트남 공산당 군대를 양성하고 조직하는 임무를 맡기고, 그에게 '장군' 칭호를 내렸다. 지압 장군은 군대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언론인, 고등학교 역사교사 출신이었다. 물론 그는 혁명가로서, 역사전공자로서 군대와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 혁명사와 나폴레옹의 군사작전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를 '붉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을 얻게 한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호치민이 사람을 보는 눈이 얼마나 남달랐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구엔지압은 베트남 중부 쾅남다낭성(省)에서 출생했다. 그는 하노이대학을 졸업하고 1930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창립됨과 동시에 입당하였으며, 1930년대 말부터 1940년까지 중국에 가서 호찌민[胡志明]의 지도하에서 활동하다가 1941년 베트남에 잠입하여 베트민(Viet Minh)을 결성한 후, 여러 성(省)에 혁명세력의 근거지를 만들어서 항일(抗日) 게릴라부대를 지도하였다. 1945년 독립과 함께 내무장관이 되었고, 1946년 국방장관이 되었다. 프랑스군이 진격해 들어오자 해방군 총사령관이 되어, 1954년 디엔비엔푸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베트남은 20세기의 30년 전쟁이었다. 한 세대가 흘러가는 동안 5명의 미국 대통령이 인도차이나의 현실을 잘못 인식했고 자신들이 만든 환영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그 환영은 처음엔 공포였으나 나중에는 희망으로 변했다. 이러한 공포와 희망은 현실을 분명하게 파악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마침내 부정할 수 없는 악몽이 되어 버렸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으며 내부적으로는 남북전쟁 이후 가장 깊은 갈등을 초래했다." - 존 스토이신저

베트남전은 미국과 베트남의 단순한 인내력 대결이었을까?

지압 장군이 세상을 떠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압 장군과 베트남전쟁을 회고하는 글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하면서 "지압은 병참술의 대가였지만 그의 명성은 그것을 넘어선 것에 기인한다. 그의 승리는 그와 호찌민이 승리를 확신한 '버티기' 전략으로 이뤄진 것이다. 아무리 막강한 적이라 해도 나라를 멸망으로 몰고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더라도 감내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의미한다. 호찌민은 프랑스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사 열명을 죽여라. 우리는 프랑스군 한명을 죽일 것이다. 결국은 당신들이 먼저 지칠 것이다."라고 했고, 이어 "미군은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한번도 진적이 없으나 전쟁에서 패했다"고 말했다.

"오자병법(吳子兵法)" 도국(圖國)편에 "천하가 싸움에 휩쓸렸을 때(天下戰國) 5번 이긴 자는 화를 면치 못하고(五勝者禍), 4번 이긴 자는 그 폐단으로 약해지고(四勝者弊), 3번 이긴 자는 패권을 잡고(三勝者覇), 2번 이긴 자는 왕이 되며(二勝者王), 단 한번 이긴 자가 황제가 된다(一勝者帝)"란 말이 있다. 실제로 지압 장군의 전술은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식민모국과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강대국을 상대로 인명 손실을 감내하는 지연작전과 소모전의 양상을 띠었다.

케네디를 비롯한 그의 군사고문단들은 베트콩 병사들이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말할 때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검은색 파자마'를 입은 베트콩은 가짜군대이며 남베트남이 합법적인 정규군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는 그 반대였다. 당시 지역 전문가들이었던 로스토우와 테일러 등은 베트남을 한국과 같다고 보았지만 이들 역시 베트남과 한국의 중요한 차이를 간과했다. 즉 한국은 어쨌든 군복을 착용한 적군이 정식으로 국경을 넘어 침략한 정통적인 의미의 전쟁을 치른 반면 베트남은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사실상 전선이 없는 정글지대의 이점을 이용해 게릴라들이 치르는 정치 투쟁이었다.





실제로 지압 장군이 이끄는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우리가 기억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전술적으로 막대한 피햬를 입었다. 1968년 전술적으로 그다지 가치가 없어 보이던 케산의 미군기지를 향해 수많은 베트콩들이 몰려 들었다. 많은 이들이 이 전투가 프랑스와의 대결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던 디엔비엔푸 전투의 재판이 될 것이라 여겼지만, 실제로 케산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미국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북베트남군은 케산에서 물러났다. 당시 케산 전투를 지휘했던 론스(David E. Lownds) 대령에게 기자들이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초라한 언덕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나?"라고 묻자, 론스 대령은 자랑스럽게 답했다.

"적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이기겠다는 생각이 부질없음을 우리가 그곳에서 생생하게 보였주었습니다."

그러나 케산 전투는 곧 들이닥칠 1968년 '구정(테트)공세'의 철저한 위장이었다. 미국과 군부의 시선을 케산에 묶어둔 상황에서 지압 장군은 테트 공세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전력을 다한 테트 공세에서 베트콩은 초기에 잠깐 그들이 원했던 성과를 거두었을 뿐 이후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때 입은 인적, 물적 손실이 너무나 막대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인적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도 테트 공세 이후 더이상 전쟁을 지속시킬 수 없었다.

베트남이 그토록 많은 인명 손실을 감당할 수 있었던 까닭, 대의명분

보구엔지압 장군은 미국인 전기작가와의 인터뷰에서 테트 공세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구정공세를 군사적인 목적에 국한시켜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우리는 더 넓게 생각했습니다. 구정공세는 군사적이면서, 정치적이고 동시에 외교적인 활동이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전쟁을 단계적으로 축소시키기를 원했습니다. 이건 아주 포괄적인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군사 전략인 동시에 정치 전략이었습니다. 우리도 적을 섬멸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싸울 의지는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구정 공세의 이유입니다."

베트남에서 미군을 지휘했던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 "베트남전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습니다. 중대 단위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맞붙은 곳에서는 모두 이겼습니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도 물론 이겼죠."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전혀 다른 의미이긴 하겠지만 지압 장군도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우리는 전투에서 여러 번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한 번도 지지 않았습니다."

딘 러스크 같은 인물도 "개인적으로 나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나는 북베트남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를 과소평가했고 미국인의 인내력을 과대평가했다"면서 마치 이 전쟁이 의지력의 싸움이었던 것으로 평가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국의 패배 요인을 분석할 수 없다.

앞서 "오자병법(吳子兵法)" 도국(圖國)편을 이야기했는데, "단 한번 이긴 자가 황제가 된다(一勝者帝)"란 이야기 앞에 오자가 전쟁에 임하는 자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강조한 이야기가 있다.

"무릇 국가를 잘 다듬고 군사력을 기르려면 반드시 예를 가르치고, 의를 고취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염치를 알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 크게는 나아가 싸우기에 충분하고, 작게는 싸워서 지키기에 충분하다. 싸워서 이기기는 쉬워도 이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吳子曰, 凡制國治軍,必敎之以禮, 勵之以義, 使有恥也. 夫人 有恥, 在大足以戰, 在小足以守矣. 然戰勝易, 守勝難)." 이게 무슨 말일까? 부국강병을 이루고, 국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내부의 이데올로기, 동양적으로 말해서 대의명분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의 호치민을 마오쩌둥의 꼭두각시 정도로 여겼지만, 베트남과 중국은 미국이 오기 전부터 오랜 세월 치고박은 앙숙이었으며 호치민은 1920년 프랑스 공산당 창설자 중 한 명이자 옛 볼셰비키 당원이었다. 그는 공산세계에서는 마오쩌둥보다 더 원로 공산주의자였으며 자신의 정의를 지닌 인물이었다. 데이빗 할버스탐은 그를 일러 "한쪽은 간디의 모습을, 또 다른 한쪽은 레닌의 모습을 가진 완전한 베트남인"이라고 묘사했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자신들이 미지의 상대로 전쟁을 치르면서도 그들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 결과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의 대학들은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역학 연구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만약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은 인도차이나에 7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 투하된 폭탄의 80배이며, 1945년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300배에 해당한다. 또 막대한 군비와 인명 손실과 국론분열을 경험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지 않은 전쟁이 어디에 있겠는가만 베트남전쟁은 그 자체가 거대한 햄버거힐이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만약 미국이 디엔비엔푸 이후 프랑스에 이어 베트남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베트남은 공산화되었을까?

아마도 베트남은 훨씬 더 일찍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산주의는 분명 모스크바나 베이징과는 다른 독립적이고 강력한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불타는 제3의 공산주의였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 정도 공산주의였다면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처럼 미국도 수용할 만한 수준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의 공산화를 잠시 유예하기 위해 5만 8,000명 이상의 미국인과 300만 명 이상의 베트남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1,500억 달러를 사용하고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을 수 없었고, 내버려두었더라면 공산화되지 않았을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의 도미노를 건드려 버렸다.

보구엔지압 장군은 호치민 사후 도입된 집단지도체제 아래에서 전쟁 기간 동안의 지도적 지위를 상실하고, 오랫동안 침잠해 있어야만 했다. 지난 1976년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부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였고, 1976~1982년 베트남공산당 정치국원을 지냈으며 1981~1991년 다시 부총리를 지냈다. 그리고 2013년 10월 4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명령으로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동지들과 젊은이들이 지금쯤 그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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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과 오바마 케어

셧다운이 뭐여?


지난 2013년 10월1일부터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이 시행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오바마케어'와 관련한 예산안에 대하여, 미국의회 상/하원에서의 합의 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 역시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셧다운, 셧다운하는데 도대체 셧다운이 뭐지? 하는 의문도 가질 수 있겠다. 우리 식으로 말해서 어감상 가장 근접한 것은 '조업중지, 직장 폐쇄' 같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제도란 다음(2014년도) 회계년도(fiscal year)가 시작되는 2013년 10월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였으므로 그날부터 연방정부의 공무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없게 되므로, 공무원들 중 반드시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에 대해 일시해고 조치, 다시 말해 무급휴가(실직) 상황이 된다는 말이다.

셧다운의 원인은 이른바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안의 존폐여부를 둘러싸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는 의료보험의 범위를 더욱 넓혀서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하는데, 미국 인구 3억명 가운데 의료보험을 받지 못하는 인구가 4천 7백만 정도이며,  건강보험 비수급자의 경우 의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셧다운의 원인: 오바마케어

만약 오마바케어가 적용될 수 있다면 3천만명 이상이 추가로 신규 보험 혜택을 받게 되며 이가운데 상당수는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민족이며 1천만명에 달하는 비시민권자, 영주권자들도 역시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공화당과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때 간과해선 안될 부분 중 하나가 일종의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빈곤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란 선입견이다. 게르트 기거렌처의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숫자놀음이 주는 착각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데, 인종별 빈곤율을 내면 흑인과 히스패닉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실제 수치로 보았을 때 미국 내 빈곤인구의 절대다수는 이른바 '백인 쓰레기'란 속어로 불리는 백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인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과 흑인, 히스패닉 인종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이란 도식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문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방식은 아닌 셈이다.  

미국이 셧다운 사태로 치달았던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조지 부시 주니어가 집권한 동안엔 셧다운이 발생하지 않았었다. 이번 사태 이전의 마지막 셧다운은 17년 전인 1995년 민주당 빌 클린턴 집권시절의 일이었다. 어쨌든 연방정부가 셧다운에 들어가면 정부는 정치권이 잠정 예산안에 합의할 때까지 200만명의 연방 공무원 가운데 필수 인력을 제외한 80만~120만명의 직원을 당장 일시해고 해야 한다고 하니 미 연방정부의 노동유연성도 참 대단하다. 셧다운 기간동안엔 긴급한 핵심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공공 프로그램도 따라서 함께 중단된다.

그런데 미국 공화당은 어째서 의보개혁안에 반대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야당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고 강력하게 밀어부치려고 하는걸까? 국민건강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보수적인 시민들조차 국민건강의료보험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에 대해선 극력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면(특히나 미국의 악명높은 의료체계에 대해서는 이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더라) 공화당이 예산안 통과까지 멈출 만큼이런 이런 제도에 감히 반대하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

공화당이 배짱 튕길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비롯해 우리는 여러 경로로 미국의 의료보험 체계가 심각할 정도로 문제란 사실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전체 인구의 17%인 5000만명 정도가 무보험 상태에 노출돼 있다. 미국 중산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직 자체라기보다 실직에 따른 건강보험 상실이라고 한다. 민간 건강보험은 비싸고 건강보험 없이 질병에 걸릴 경우 파산하거나 노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을 사귈 때 건강보험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아이의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부부가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기 위해 이혼하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은 맹장염 수술 약 2000만원, 자연분만 400만원, 감기 진찰 한 번에 10만원이 든다. 만약 당신에게 보험이 없다면 말이다. 미국에서 한 해 파산을 신청하는 가계의 절반은 파산 원인이 의료비 부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민간의료보험료는 너무 고가이기 때문에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5400만명(대한민국 인구수 만큼)이 의료보험 조차 없이 생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경기 악화와 보험료 상승으로 인해 직장에서 보조하는 의료보험의 비중 또한 줄어드는 추세여서 의료보험 문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폴 크루그먼 같은 미국의 진보세력들은 미국 사회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최우선 정책으로 '의료개혁'을 꼽았다. 일단 현재에 처한 가장 큰 불안 요소 하나를 제거하고, 여기에서 성공을 거둬야만 미국의 불평등을 고치는 더 광범위하고, 어려운 임무로 눈을 돌릴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실제 미국 국민들은 오바마 케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당연히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 같지만 실제 현실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지난 2010년 <NBC>와 <월스트리트 저널>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36%만 개혁안을 지지했고, 갤럽의 조사에선 개혁안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은 단지 28%에 그쳤다. 사실, 개혁안의 내용을 보면 미국인들이 그의 개혁안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바마케어는 모든 시민들에게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으로 1965년 노인 건강보험(메디케어)를 도입한 이래 가장 중요한 복지정책이다. 미국 직장인들은 직장을 통해서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65세 이상의 건강보험료를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메디케어, 생계곤란층을 위한 메디케이드도 있다. 문제는 건강보험을 지원하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정부 지원에서 빠지는 소득이 낮은 계층(우리 식으로 말하면 차상위계층)이다.

결국, 복지는 세금이다

미국 의보개혁 수정안의 주요 내용은 앞으로 10년간 약 9400억달러를 투입해 무보험자 약 3200만명에게 보험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보험인 메디케이드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의 범위를 확대하고 중산층에겐 보조금을 지급하여 의료보험 수혜 대상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또다른 중요한 조처로서 개인이 풀을 이루어 의료보험거래소에서 보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보험회사들을 규제하는 조처들도 도입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나머지 3억명의 미국인들이 조금씩 돈을 걷어 병원비를 대신 내주자는 말로도 들린다.

결국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들 이름을 따서 재단을 만들고, 박애와 자선을 기부를 통해 실천하는 부유층들의 반대는 당연하다. 왜? 기부와 세금은 엄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기부를 많이 하면 천사가 되지만, 세금을 많이 내면 그냥 부자일 뿐이다. 그리고 기부는 부호가 대상과 목적,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세금은 그렇지 않다. 박애자본주의의 진면목이 그것이다. 또한 더많은 세금을 감당해야만 하는 고소득층의 반대도 당연하다. 혜택과 불안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야만 하는 중산층들은 보험료가 더 오를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의 사보험체계는(물론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심각한 병력이 있는 사람들의 보험 가입이 매우 어렵다(이런 사람들에게 보험 가입을 쉽게 하도록 해주면 보험회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했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막상 보험을 청구하면 여러 이유를 들어 보험료 지급이 거절당하는 빈도도 매우 높다. 특히 미국의 민간보험회사들은 보험료 중 상당부분을 보험금 청구를 거절하고, 의료기록을 감시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공적 보험은 이런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심각한 병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보험 혜택을 주지 않도록 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들도 같은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기존 가입자들의 보험료는 또다시 인상되어야 한다. 또 메디케이드 가입자가 늘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3500만명의 기존 메디케이드 수혜자들은 불평할 수 있다. 정부는 비용절감을 위해 메디케이드 수가를 줄이려 하고, 일부 의사들은 돈 안 되는 메디케이드 환자를 안 받으려 한다. 또 직원 50명 이상 기업체는 이제 직원들의 의료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샘 월튼은 그나마 기존의 직장보험 조차도 가입해주지 않아서 비난을 받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직원 채용을 꺼리거나 감원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높는다(이 수법은 정말 오래된 방식이다). 어차피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기존의 무상 공공의료 보장제도인 메디케어에서 의약품 구입 비용이 제외된다. 새롭게 혜택을 받게 되는 3200만 명 중 1600만 명은 절대빈곤 계층으로 기존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무상 공공의료)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오바마 개혁안과 무관하다.

결국 오바마케어의 혜택을 받는 계층은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차상위 계층 1600만 명뿐이다. 이들이 개혁안의 최대 수혜자이고, 이들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나머지 1600만 무보험자들은 결국 개인 부담으로 보험에 가입해야만 한다.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해마다 695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전체 미국 국민들의 5%(1600만명)만으로 이들만이 개혁안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오바마 개혁안 지지율이 36%나 된다는 것이 도리어 신기한 일이다. 공화당이 배짱 튕기며 반대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는 거다. 더군다나 미국은 오랫동안 연방정부가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전쟁과 외교를 제외하고)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만큼 그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오바마는 왜 이렇게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할까?





어째서 진보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보수는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진보가 어찌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세금만 더 내고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느낄지도 모르는 중산층에게 눈에 띄는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이고, 보수가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중산층에게 복지는 피 같은 내 돈으로 세금 내서 생색도 안 나게 남 돕는 일이란 걸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다.

사실, 복지는 정치인의 무덤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 공약을 선점하긴 했지만,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본인만 몰랐다.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고 프랭클린 아저씨가 말하기도 했다지만, 죽음은 예수님도 피하고 싶어할 만큼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란 점에서 세금은 죽음과 동격이다. 복지개혁의 성과는 당장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수가 약간씩 손실을 봄으로써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혜택 받는 사람은 적고, 당장 손실을 보는 것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오바마는 어째서 이렇게 힘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일까? 얼마전 늦은밤에 모 역사학자와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당신의 절친이자 한때 복지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이제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모 정치인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애증을 잘 아는 터라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정치를 한다는 사람은 자신이 국민들을 위해 성취하고 싶은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남의 참모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정치적 커리어를 유지해나갈 수가 있는데 그 분은 권력의지가 약했거나 처음부터 제대로 된 비전도 없이 급작스럽게 정치를 한 것 같다"고.

오바마는 시카고 빈민가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로서 봉사활동을 해왔고, 의료보험이 없어 파산하고, 집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그에겐 이것이 그의 꿈이자 비전이었을 거다. 나는 정치인에겐 그런 신념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대선에 나서고 나서야 부랴부랴 유권자들의 눈치를 보며 정책을 만들고, 선거에 나설 때마다 말이 달라지고, 실현될 수도 없는 거짓 공약을 내놓고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경우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미국은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현재 여러 분석들에 따르면 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은 현재의 셧다운 여파로 인해 내년 선거에서 다수당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할 것이란 추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우리는 의료보험이나 여러 가지를 놓고 지난 민주화 10년간 우리가 미국보다는 좀 낫지라고 자부심을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한국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정책은 사실 이미 100년 전 루스벨트 대통령 때 처음 나온 것이었다. 만약 오바마 정부가 부족하고 아쉽긴 하겠지만 이 개혁 정책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오바마 정부 최대의 업적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대통령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도, 크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평생 염원하고, 꿈꾸는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과 설득력,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해야 한다. 설령 패배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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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은 "첼로무반주모음곡(Bach suites for solo cello No.1)"과 더불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바흐의 음악일 것이다. 아마도 바흐의 기악곡들 가운데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오르간곡'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에게 친숙한 곡들은 "G선상의 아리아"를 제외하고는 앞서 말한 두 개의 곡이 아닐까 싶다.

첼로무반주모음곡과 파블로 카잘스에 얽힌 일화에 대해선 내 홈피(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파블로 카잘스 편)에 소개되어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첼로무반주모음곡의 경우엔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라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하기에, 로스트로포비치를 비롯한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도전하더라도 여전히 첼로무반주모음곡하면 일단 파블로 카잘스를 이야기한 뒤 다른 연주자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름하여 '절대명반'인 셈이다.

그에 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많은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완다 란도브스카, 칼 리히터, 로잘린 투렉,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안드라스 쉬프, 머레이 페라이어 등)가 각축을 벌이는 격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하더라도 글렌 굴드의 연주(연도별 녹음)을 비롯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버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가지고 있는데, 같은 작곡가의 같은 곡이라도 어떤 연주자이냐에 따라 해석도 가지각색이라는 것이 클래식 음악 감상의 묘미이기도 하다(물론, 내게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단 한 장만 가져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무조건 글렌 굴드, 굴드다. 그 다음엔 아마도 어떤 굴드일 것인가로 고민하며 머리가 터지겠지만).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할 무렵엔 이미 피아노가 나와 있었으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노가 아니라 악기로서는 아직 좀더 시일이 걸려야 만 하는 미완성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에 바흐는 집에서는 '클라비코드(Clavichords)'를 주로 연주했고, 일반적인 독주나 협주곡 등에서는 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클라비쳄발로라고도 불리는 '쳄발로(cembalo)'를 즐겨 사용했다.

바로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건반악기 중 하나였던 클라비코드는 단순한 단현 악기(monochord)에서 발전된 것으로 당대의 가장 예민하고 감응력이 있는 건반악기였지만 이 악기는 음량이 작았기 때문에 조용한 가정에서 독주 악기로 적절했다. 그러나 바흐는 이 클라비코드 특유의 섬세한 음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비코드는 훗날 가정용 건반악기 자리마저 피아노에 넘겨주던 18세기까지 인기를 누렸다.

우리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둘러싼 잘 알려진 일화는 이 곡이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으며 바흐에게 평소 많은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곡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화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바흐의 초기 전기 작가인 포켈에 의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카이저링크 백작을 모시고 있던 음악가 고틀리프 골드베르크는 잠 못 이루는 자신을 위해 편안하고 경쾌한 곡을 작곡하라는 백작의 지시를 받고 고민 끝에 스승 바흐를 찾아가게 되었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는 즉시 작곡을 시작해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백작은 커녕 잠이 쏟아지던 사람도 깨울 만큼 아름답고 때로는 시끄럽다고 말해야 할 정도의 음악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후세의 음악사가들은 포겔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포겔의 주장을 받아들이던 그렇지 않건 간에 1741년이나 1742년에 '다양한 변주곡과 아리아'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출판되었던 작품집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다소 간편한 이름으로 바뀐 점만큼은 골드베르크와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신세를 진 셈이리라(실제로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곡을 '나의 변주곡'이라 부르며 애호했다고 하는데, 바흐에겐 거금의 작곡료를 지불해 당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의 공식 표제 "Aria mit verschiedenen Veraderungen vors Clavicimbal mit Manualen"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두 단의 건반을 지닌 쳄발로'를 위해 쓴 곡이다. 30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열 곡은 두 단의 건반을, 열 다섯 곡은 한 단 그리고 세 곡은 둘 또는 한 단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고, 남은 두 곡에는 아무런 지시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는 한 단의 건반밖에 없으므로 사실상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자장가라는 설을 불식시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이 악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바흐는 이 작품의 구조를 '주제(Aria) - 30개의 변주 - 주제(Aria da Capo)'라는 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리아를 뺀 30개의 변주는 놀라울 만큼 치밀한 수학적 논리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 수미쌍관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32개의 곡들은 16번 변주곡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그러나 이 곡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 바흐라는 한 작곡가의 위대함을 엿보이게 만드는 것은 대위법도, 수학적 엄밀함도 아닌 30번 변주에서 쏟아져 나오는 파격에 있다. 정교한 도미노 퍼즐처럼 겹겹이 포개어 놓았던 구조적 엄밀함을 후반부(30번 변주)에 가면 당시 독일에서 유행한 민속적 선율이 등장하면서 한 번에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 바흐의 참 얼굴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완전무결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예술의 매력이자, 개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본래 쳄발로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훗날 피아노 연주를 위한 편곡을 부조니가 진행했지만 20세기 들어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의 완다 란도브스카(Wanda Landowska)에 의해 원전 연주가 시도되면서 이 곡 역시 새롭게 각광 받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가 어제 들은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i)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완전 디지털 녹음이자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쳄발로 원전연주란 점에서 비록 'OPUS111'이란 마이너레이블에서 발매되긴 했지만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음반을 처음 CD플레이어에 장착하면 쏟아져나오는 쳄발로의 영롱한 음색과 풍부한 잔향에 저절로 귀가 솔깃했진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투명하며 명징한 소리가 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든다. 프랑스 출신의 쳄발로(하프시코드) 주자답게 피에르 앙타이는 매우 유려한 선율과 찰랑거리는 소리에 빠져들게 만들지만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조금 지겹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아쉬움이 있다.

뒷심이 달린다는 건 아마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후반부로 가서도 여전히 뛰어난 기교와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뭔가 조금 지루하고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이 음반을 녹음(1993)할 당시만 하더라도 피에르 앙타이가 아직 젊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연주적으로 뛰어난 소리와 우아한 멜로디, 고운 음색의 찰랑거리는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다른 대가들의 연주에 비해선 '심지'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http://youtu.be/ZLI8oh8wY6A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주는 음악적 쾌감과 이제는 대가로 성장한 피에르 앙타이의 젊은 시절 연주를 소장한다는 측면에서 권할 만한 음반임에는 틀림 없다. 앞의 것은 OPUS111 레이블의 1993년 녹음, 뒤의 것은 Mirare MIR 9945 레이블의 2003년 녹음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따진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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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 유희, 축제, 카니발, 연희"는 각기 다른 개념이지만 비슷한 개념이며 따로 떼어놓기 어려운 개념들이기도 하다. 장 뒤비뇨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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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놀이와 '축제'를 혼동한다. 놀이는 규칙의 수용을 이야기하며 과격한 근육행위에 기호를 부여하고 자연적인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스펙타클(spectacle: 연행적인 방법을 통해서 어떠한 행위를 펼쳐보이며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지각 가능하도록 하는 것)로 통합되는 것이다. 반면에 축제는 규칙을 위반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규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위반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축제 때 일반적으로 보이는 '규칙 없음'이나 '방탕'을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다.

축제는 기호나 규칙을 파괴하는데, 이것은 축제가 그것들을 인식하면서 침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탈문화된 세계, 즉 규범이 없는 트레멘덤(tremendum)과 같은 공포의 공간을 생성시키는 세계와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략>... 축제는 문명들이 변화하는 순간에 그 문명들의 틈새에 살며시 끼여든다.
<장 뒤비뇨, 류정아 옮김, "축제와 문명", 한길사,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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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놀이와 축제를 혼동한다. 뒤비뇨의 말을 부정하진 않지만 '놀이와 축제, 놀이와 예술, 놀이와 창조, 놀이와 상상력, 놀이와 사회, 놀이와 인간'은 구분되지 않는 가운데 수만 년을 함께 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축제와 놀이는 종종 문화인류학의 범주 안에서 연구되며, 문화인류학과 사회학은 종종 혼동된다.

다음의 책들은 축제와 놀이 또는 그밖에 혼동되는 것들에 대한 책이다. 만약 누군가 놀이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고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아마도 그건 내 나름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다음의 책들을 추천한다.






 
축제 이론 : 류정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년 2월
- 류정아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축제 연구의 대가'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펴내는 커뮤니케이션 관련 총서 중 하나로 매우 실용적인 문고본이다. 이 방면에 관심이 있고, 이제 막 입문하려는 분들이라면 참고할 만한 시리즈로 가치가 높다.

1.아널드 반 제넵: 통과의례
2.마르셀 모스: 증여론
3.에드먼드 리치: 시간의 패러독스
4.빅터 터너: 리미날리티와 코뮤니타스의 창조성
5.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6.로저 카유아: 놀이와 인간의 정체성
7.바흐친: 반(反)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8.마리안느 메스닐: 민속학에서 민족기호론으로
9.장 뒤비뇨: 문명과 판타지 그리고 자유로움
10.리처드 셰크너: 퍼포먼스와 스펙터클

이중에서 마르셀 모스, 빅터 터너, 하위징아, 로저 카유아, 바흐친, 장 뒤비뇨 등은 국내에 저서가 한두 권 정도는 소개된 적이 있지만 사실 노동중독사회, 과로사회 등으로 호명되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나머지는 거의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기초 이론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먼저 읽을 만하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808867)

놀이의 반란 - EBS 다큐프라임 화제작! :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지은이) | 지식너머 | 2013년 6월
- 이 책은 EBS에서 방영해서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교육적인 의미에서 '놀이'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실제 교육현장(물론 영유아가 중심에 있긴 하지만)에서 벌어지는 현장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9392)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 진중권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05년 3
- 이 책이 나온지도 벌써 꽤 되었다. 읽은 사람들도 많고 여전히 잘 팔리는 책이라 별도의 소개가 필요할까 싶기도 한다만 굳이 말하자면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20가지 놀이를 7가지 범주로 나눠 미학적으로 사유해본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0331)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 생각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놀이 탐구 :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은이), 이상원 (옮긴이) | 에코의서재 | 2008년 7월
- 이 책은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시인, 교사 그리고 컴퓨터 아티스트이며 심리학과 문학을 공부한 저자가 상상력과 창조의 원천으로 '놀이'를 바라본 것이다. 어찌보면 놀이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현장에서의 여러 예시들을 통해 놀이가 가지고 있는 창조력의 원천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717113&start=slayer)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은이) | 윤미나 (옮긴이) |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05-18 | 원제 play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872901)

앞서의 책들 중 첫 번째 책을 제외하고는 이론서라고 하기엔 다소 소프트한 편인데 비해, 지금 소개하는 네 권의 책은 '놀이'와 '축제'에 대한 본격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놀이에 관한 책이 이론서라고 딱딱하기만 하다면 모순일 수 있겠다. 아래의 책들이 쉽냐고 묻는다면 나로선 그렇다고 대답하겠다만, 분명 어렵다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게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냐. 필요하면 봐야지. ㅋㅋ

놀이와 인간 - 가면과 현기증 (Le masque et vertige) : 로제 카이와 (지은이), 이상률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4년 4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2335)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 요한 하위징아 (지은이), 이종인 (옮긴이) | 연암서가 | 2010년 3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057)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 미하일 바흐찐(철학자) 저 | 이덕형 역 | 아카넷 | 2001.05.3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103401)

축제와 문명l 한길컬처북스 21 : 장 뒤비뇨 (지은이) | 한길사 | 1998-05-2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0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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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리처드 오버리 (지은이) | 조행복 (옮긴이) | 교양인 | 2008-12-25 | 원제 The Dictators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은이) | 김남섭 (옮긴이) | 교양인 | 2012-07-05 | 원제 Comrades: A World History of Communism (2007년)







속삭이는 사회 1.2
- 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 내면, 기억
올랜도 파이지스 (지은이) | 김남섭 (옮긴이) | 교양인 | 2013-08-30



  





나타샤 댄스
- 러시아 문화사
올랜도 파이지스 (지은이) | 채계병 (옮긴이) | 이카루스미디어 | 2005-06-30 | 원제 Natasha's Dance (2002년)






* 책 한 권을 잘(?) 읽기 위해 반드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최신간인 올랜도 파이지스의 "속삭이는 사회 1.2"를 잘 읽기 위해선 약간의 워밍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교양인이 "스페인내전" 이후 출간하는 책들의 흐름이랄까 기획 방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교양인이 최근 펴내고 있는 책들은 저자들끼리도 매우 가까운 사이이다. 이건 학문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도 가까운 듯 보인다. 서로서로 추천사를 써주는 사이들이니까 말이다.

먼저 "독재자들"에 대한 로버트 서비스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리처드 오버리의 책 "독재자들"에 대해 "도발적인 통찰력으로 흘러 넘치는 책"이라고 했다. 이번엔 리처드 오버리가 로버트 서비스의 책 "코뮤니스트"에 대해 한 말을 살펴보자.

"로버트 서비스는 이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에서 역사를 공정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이것들이 서로 상대방 책을 최고라고 추천하고 있는 거다.

"속삭이는 사회"는 누가 추천했나 한 번 볼까? 아니나 다를까... 같은 교양인 출판사에서 펴낸 "스페인 내전"의 저자 앤터니 비버다.

앤터니 비버는 올랜도 파이지스의 책 "속삭이는 사회"에 대해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 저자와 그가 이끄는 연구 팀은 일기와 회고 기록을 발굴해내고 수백여 명의 생존자들과 직접 인터뷰했다. .... 조심하여라. 이 책을 읽으면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현대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저작임이 틀림 없다."

ㅋㅋ

이 사람들 모두(앤터니 비버, 리처드 오버리, 로버트 서비스, 올랜도 파이지스) 영국에서 요즘 잘 나가는 역사학자들이다. 서로서로 칭찬해주는 분위기를 나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쩐지 약간 낯이 뜨거워지는 건... 올랜도 파이지스의 책 "나타샤 댄스"는 러시아 문화사에 대한 상당한 재미를 주는 수작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물론 위에 이야기한 책들은 모두 한 번쯤 읽어둘 만한 것들이다.


다만, 이것이 대처 이후 영국의 역사학계의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좌파를 묘사할 때 냉정하고 객관적인 기술과 냉소적이고 주관적인 기술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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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배우란 캘린더걸처럼 계속 바뀌는 법이긴 하지만, 여배우란 말에서 '여자'를 빼고 '배우'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요근래 배우 중 내게 있어 그런 배우는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이다.





1975년 10월 5일 생이니까,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볼 나이다. 케이트 윈슬렛을 처음 발견한 영화는 나도 물론 "타이타닉"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의 계보에는 물론 매우 다양한 배우들이 있는데, '오드리 헵번'만큼이나 '캐서린 헵번'을 좋아하고, '캔디스 버겐'을 좋은 배우로 생각하며, 한동안 '미셸 파이퍼'를 참 좋아했다. 물론, 여전히...

미셸 파이퍼가 나온 영화들은 그리 많이 보지도 못했는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미셸 파이퍼'만이 여배우 중에서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에 대적할 수 있으며 가장 잘 맞는 배우 궁합이다. 두 사람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고, 파괴적이면서도 유리잔처럼 쉽게 상처받는 영혼을 지닌 캐릭터가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또 한없이 처량하고 궁상맞은가 싶으면 동시에 자기 분야의 전문직종 종사자로 변신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캐릭터를 지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영화는 "스카페이스"였는데, 이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는 알 파치노가 나중에 배신하게 될 보스의 정부(팜므 파탈) 역을 했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몇 편의 영화에서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참 좋았다. 어쨌든 오늘은 미셸 파이퍼 이야기를 하는 날이 아니므로 ... - 하여간 미셸 파이퍼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능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케이트 윈슬렛이 "타이타닉"에 처음 등장할 때만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았고, 워낙 디카프리오 팬층이 두텁고, 열광적이었던 토라 그에 비해 여배우가 너무 밀리는 것 아니냔 평들이 있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알 파치노+미셸 파이퍼'가 좋은 궁합인 것처럼 '디카프리오+캐슬린 윈슬렛'도 좋은 궁합이긴 한데, 알 파치노와 미셸 파이퍼가 서로 막상막하라면, 나는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커플의 경우엔 윈슬렛이 좀더 윗길이란 생각이 든다. 디카프리오의 영화를 보노라면 자꾸만 패트릭 스웨이지가 떠오르는데, 아역 출신 배우가 지니는 핸디캡을 디카프리오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과장되고, 넘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역배우 시절 자신의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국 배우들에겐 미국 배우들에게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기품이 있는데, 아마도 그건 액센트의 문제도 있겠지만 탄탄한 기본기 때문이기도 할 게다. 케이트 윈슬렛은 조부모대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다고 하니 오죽할까 싶기도... 케이트 윈슬렛은 덩치를 보아도 그렇지만 당당한 스케일이 있다. 아마도 그런 성향이 엿보였기 때문에 "타이타닉"에도 캐스팅되었지 싶다. "타이타닉"은 철저히 재난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따르지만 그 안에 담긴 내부의 서사구조는 성장영화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케이트 윈슬렛은 한 여성으로 겉보기에 튼실하고 화려한 부르주아의 삶, 허위와 환멸로 가득찬 "타이타닉" 1등칸의 삶을 과감하게 벗어버린다. 물론 그 과정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의 러브라인이 있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누가뭐래도 케이트 윈슬렛이었다. 그녀가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갇힌 애인 디카프리오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도끼로 부숴버리는 장면은 사실 그녀 자신을 옭죄고 있던 족쇄를 부순다는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이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배우가 출연작으로 고르는 안목도 있고, 참 훌륭한 배우란 생각을 여러 차례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영화는 상당히 많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영화 중에서 고른다면 "리틀칠드런(2006)"과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다. 두 영화는 매우 닮은 꼴 영화인데, 두 편 모두 가정 이야기를 다룬 멜로물이다.

퇴근하고서 아내가 저녁을 지을 동안 또는 주말에 집에서 쉴 때 아내에게 개인 휴식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가끔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게 된다. 그곳에 우리 딸 아이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은 날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싶을 때가 있는데, "리틀 칠드런"이란 영화의 거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변호사도 아니고,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도 아니지만 ... 굳이 자세한 영화 소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 섬세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갈 필요가 있는 영화라서 그렇다.

둘다 참 좋은 영화이므로, 감상을 권한다. 그렇게 놓고 보니 케이트 윈슬렛은 부르주아지 계급의 유부녀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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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 - 글쓰기의 10가지 규칙






지금까지 50편에 가까운 소설을 펴낸 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가 87세의 나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범죄소설의 대가, 디트로이트의 찰스 디킨스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로부터 비롯된 '하드보일드'한 문체를 더욱 끌어올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생전에 "작가는 투명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작가는 쓸데없는 말이나 생각을 최대한으로 줄여 독자가 이야기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게 해야 한다"는 독특한 문체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이런 대가(?) 아니 베테랑 작가의 충고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 뉴욕타임스에 '레너드의 10가지 작문규칙(Elmore Leonard's Ten Rules of Writing)'이란 것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의 글은 김연수가 옮긴 책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에도 실려 있다(책을 소장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애써 찾아볼 필요는 없다. 시중에서 이 책을 파는 곳은 한 군데도 없으니까).

솔직히 나는 작가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으므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모른다. 요즘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모르는데 별로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것이겠지만 세간의 평을 옮겨오면 "그의 문장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문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가끔은 문법을 무시할 때도 있다. 독자는 글의 주인공들과 함께 호흡하며, 레너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작가로서 '투명인간'이 되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 다음은 그가 말한 "글쓰기의 10가지 규칙"이다. 위키피디아를 인용했다.

이것들은 내가 책을 쓸 때 (독자들에게) 내가 안보이게 만들어주고, 뭔가를 말해주는 게 아니라,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도록 도와주는 몇 가지 원칙들이다. 만일 당신이 특별한 언어나 상상력을 갖고 있다든가, 당신이 남이 듣기에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면 자신을 '안보이도록' 하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 것이고, 그럼 안 읽어도 좋다...........10가지를 모두 합쳐서 한 가지로 만든다면, 만일 쓴 것처럼 보일 때는, 다시 쓴다는 것이다.

1. 날씨얘기로 시작하지 말 것.Never open a book with weather.
2. 사건의 발단을 쓰지 말 것. Avoid prologues.
3. '말했다'외에 다른 동사를 쓰지 말 것. Never use a verb other than “said” to carry dialogue.
4. '말했다'는 말을 수식하는 부사를 쓰지 말 것.Never use an adverb to modify the verb “said”
5. 감탄 부호를 절제할 것. Keep your exclamation points under control.
6. '갑자기' 따위의 말을 쓰지 말 것. Never use the words “suddenly” or “all hell broke loose.”
7. 특유의 방언을 쓰되 아낄 것. Use regional dialect, patois, sparingly.
8. 자세한 인물묘사를 피할 것. Avoid detailed descriptions of characters.
9. 장소나 사물에 대한 지나치게 세밀한 묘사를 피할 것. Don’t go into great detail describing places and things.
10. 독자가 건너뛸 부분이라면 아예 쓰지 말 것. Try to leave out the part that readers tend to skip.

* 그리고 이건 "바람구두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단 한 가지 충고"다.

"글쓰기에 있어 유일하게 유효한 충고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글쓰기에 대한 모든 충고를 잊어라. 그럴 시간에 입 닥치고, 지금부터 당장 써라! 남들이 네 이야기를 모두 써먹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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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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