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尺竿頭進一步 十方世界現全身
100척(尺)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 있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와 내가 한몸이 되어 현하리라.

'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은 당나라 때 고승(高僧) 장사(長沙) 스님의 말이다. 1척은 대략 30.333...cm이므로 백척이란 330m 높이다. 이 높은 대나무 장대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거상으로 알려진 임상옥이 중국에 갔을 때 그가 팔려고 가져간 조선 인삼을 헐값에 사려고 상인들이 서로 담합해 구입하지 않고 간만 보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위기에 처한 임상옥은 함께 갔던 추사 김정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추사는 붓으로 '百尺竿頭進一步'라고만 썼다. 여기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삼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이에 놀란 중국 상인들이 임상옥 앞에 엎드려 싹싹 빌어 결국 모두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는 고사로도 유명한 말이다.

아침에 쌍용자동차 노동자 고동민의 글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글귀가 이것이었다.

"화단위에서 연행은 이제 안되나보다. 피켓을 들고 앉아있던 쌍용차해고자들을 경찰은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고있다. 그리곤 경찰에 둘러쌓여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화단에 서서 이야기 할 것이다. 우리는 물러 설 곳이 없다고."

애초에 내 생각은 이들 노동자들이 백척간두에 선 듯 위태롭고, 더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이 사회가 처한 현실이 백척간두란 것이었다.

우리는 아리따운 여성들이 주변에 많은 남자들을 농담삼아 꽃밭에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꽃밭을 만들고, 다시 그 꽃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또 꽃밭을 핑계삼아 몰아내려는 이 상황이 너무나 슬프고, 우습고, 또한 위태롭다.

백척간두에 노동자들을 세워놓고 흔들어대는 저 시방세~계들! 이 시방세~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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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을 감상해보게."

"그럼 은유를 쓸 수 있게 되나요?"

"물론, 틀림 없이."

달에는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인간의 말에도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우리가 지구에 있는 한 영원히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듯
내가 그의 마음이 되어보지 않는 한 한 인간의 말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달은 지구의 적도면에 대해 경사져 있고,
타원형 궤도를 운행하는 달의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달은 자기 중심으로부터 미세하게 떨고 있다.
이처럼 지구에서 본 달의 중심이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현상을
달의 칭동(秤動)이라 한다.

달의 떨림을 느낄 수 있다면
한 인간의 떨림도 느낄 수 있으리라.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달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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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한 칼럼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세 차례나 방문한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 박사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기 무섭게 얼른 물컵부터 뒤집는다. 그러곤 물을 따르러 온 종업원에게 물은 꼭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따라주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고 한다(이 대목을 읽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제인 구달이 방문한 식당은 아마도 고급 식당이었으리라 추측해보았다. '김밥천국' 같은 셀프서비스 식당이라면 어차피 자기 손으로 물을 따라마실 테니 문제 될 게 없을 테고, 보통 식당에선 물병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아주머니든, 알바 생이든 물컵에 물까지 따라주는 법은 거의 없으니까. ㅋㅋ 별걸 다 추측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부분은 제인 구달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다지 한국적으로 유용해 보이진 않았다).

어쨌든 제인 구달이 이렇게 행동하는 의미는 지금 세계에는 줄잡아 9억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원하거나 청하지도 않는 물을 따라주며, 마시지도 않을 물을 컵 가득 채워주는 일은 일종의 물낭비(죄악)이라는 것이다. 제인 구달의 이런 행동은 존경할 만한 일이고, 우리도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어쨌든 물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세계 물 부족 국가"라는 말이다. '물의 날' 같이 특정한 날은 물론 MB 시대에 이르러 4대강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전국 어딜 가나 숱하게, 지겹게 듣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자!

UN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리켜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래전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내놓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가 댐 건설이나 기타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목적에서 재탕, 삼탕하여 아예 골수까지 우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을 인구수로 나눠 일인당 강수량을 계산했는데,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을 거의 20~30%나 웃도는 수준이지만 워낙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인구수로 나누면 졸지에 사막국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통계의 장난이 벌어져서 그런 것뿐이다. 그런 걸 분석이라고 내놓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 국가이며, 그나마 수천년 잘 흘러가던 강을 제맘대로 들쑤셔 엉망으로 만드는 바보 같은 물관리 국가일뿐이다. 비록 우리가 물부족 국가는 아닐지 몰라도 물을 잘 관리하는 치수는 국가의 대사다. 그런 중대사업을 아무 철학도, 계획도 없이 자기 임기 내 제대로 된 환경평가 한 번 제대로 거치지도 않고,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나라에서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 한 잔이 절실하게 필요한 9억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싶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물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낭비국가이며 물관리가 엉망인 국가라고 UN이 지정한들 이상할 게 없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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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말한 바 있지만 미국의 무력 과시보다 두려운 것이 나로서는 현재 중국의 침묵이다. 중국이 무서운 이유는 그들의 무력이나 경제력, 외교력 보다 미국과 중국이란 힘센 두 나라의 암묵적 동맹시스셈의 성립이 한반도 평화에는 더 큰 위협이 되어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미국은 호주, 일본, 한국, 필리핀 해군 등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태평양 해상 작전 훈련인 림팩에서 중국을 배제해 왔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대중국 봉쇄 훈련이라며 강하게 항의해 왔다. 그런데 2년마다 한 번씩 전개되는 림팩 훈련에 내년부터 중국도 참여하기로 되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중국은 또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채무국으로서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소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 동서 냉전적 사고 아래에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마치 미소간의 양대 블럭처럼 서로 적대적인 경쟁관계일 것으로 은연 중 예상하기 쉽지만 좀더 다른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영국의 패권이 미국이란 또다른 동맹국가로 승계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미중, 중미간 동맹체제의 수립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미소 관계가 초나라와 한나라로 갈려서 서로의 궁(宮)을 노리는 장기로서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었다면, 미중관계는 장기가 아니라 바둑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미소간이 치열한 대결에 의한 패권다툼이었다면 미중간에는 싸움바둑과 집바둑이 혼용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진영 사이에서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패라고 생각하며 저울질하는 동안 판세가 아주 다른 방향으로 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중 양강의 대립 속에 어부지리라도 얻겠다는 판에 박힌 외교적 인식만으로는 큰 패착을 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예전에 미국과 일본의 빅딜(가쓰라 - 태프트 밀약)에 농락당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리영희 선생이 생존해 계실 때 이미 중국과 미국이 대만과 북한을 서로 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바도 있지만).

강자에겐 써먹을 수 있는 패가 많지만 약자에겐 제시할 수 있는 패가 많지 않은 법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평화 수호 의지가 중요하다. 잘못하면 만패불청(萬覇不聽:매우 큰 패가 나서 상대가 어떤 팻감을 써도 듣지 않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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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아버지로서"란의 '~로서'는 자격격 조사라 무거운 말이지만, "아버지처럼"이란 말은 무겁고, 무섭기까지 한 말이다. '~처럼'이 비교격 조사이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처럼' 비교 대상이 되는 순간 부모든, 자식이든 인생은 비루하고, 피곤해진다.



02.

스스로에게 진실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진실하지 말 일이다. 타인에게 진실하기 위해 필히 나를 속여야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므로... 입을 여는 순간 우리는 누구나 그런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죄인이여, 입을 다물라.



03.
맹세와 비밀은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을 지닌다. 흔하면 천해진다는.



04.

SNS시대에는 한 사람에게 한 말이 곧 만 사람에게 하는 말이 된다.



05.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주저하여 때를 놓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주저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살면서 늘 고민되는 부분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언제나 많이 주저하는 사람이다. 실패는 두렵지 않은데 실수는 언제나 두렵기 때문이다.



06.

첫사랑의 맹세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머지 맹세들의 무게도 함께 기억한다. 그 무게는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상대성이론(theory of relativity)은 여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건 맹세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자유지만 맹세를 믿지는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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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 대한 추억01 - 대마왕 신해철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보면 쌓이는 추억도 있는 법이다. "황해문화"는 인문계간지라 연예인과 인연 맺을 일이 별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편집위원들이 별난 사람들이라 그런지 가끔 내 입장에선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한 번 청탁해보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연예인에게 원고 청탁을 했다가 보기 좋게 딱지 맞은 기억이 있다.

한창 헌법에 대한 논의가 많아서 황해문화 기획으로 <헌법을 말한다>란 특집을 기획하여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새로운 헌법 정신을 듣는다'는 주제로 청탁했었다. 그런데 그 무렵 무슨 일인지 신해철 씨가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돌아보니 '대마왕'이란 그의 별명답게(나 역시 한동안 A서점에서 이런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ㅋㅋ) 신해철은 시비의 중심에 선 적이 꽤 많구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찌어찌하여 신해철 씨와 통화를 했는데 내가 이런저런 주제로 신해철 선생에게 그런 글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내자 그는....

"음, 제가 말로 하는 거면 어떻게든 해볼텐데, 글은 제 영역이 아니라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여 내심 말로 하듯 써주면 되는데 하면서 ... 몹시 아까웠던 기억이 난다. 2005년 8월 무렵의 일이다.




연예인에 대한 추억02 - 개그맨 서세원




신해철과의 인연이 원고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한 일이라면 개그맨 서세원 씨와의 일은 그가 우리에게 항의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어온 일이라 기억에 더욱 또렷하게 남는다. 2001년 겨울호(통권 33호)에 실린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문화비평 글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당시 이효인 선생은 '<조폭마누라> 대담 뒤집어 읽기'란 글을 게재했는데, 그 무렵엔 이른바 문화권력 논쟁이 한창 뜨거울 때였다. 당시 <조폭마누라>는 개봉 20여일 만에 전국 관객 320만명을 동원한 상업영화였다. 이효인은 서세원이 투자한 영화 <조폭마누라>를 자금력과 인맥을 동원한 문화권력으로 지칭하며 비판적인 글을 썼다.

서세원 씨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자신이 어째서 문화권력자냐며, 자기는 약한 사람이니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황해문화의 계간 문화비평 꼭지는 우리가 직접 기획해서 청탁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 전담 꼭지인지라 어떤 글이 실릴지는 원고가 도착하기 전에는 알수가 없는 일이고, 따라서 이 부분은 우리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필자 개인의 입장이란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이효인 선생의 연락처를 넘겨달라고 했는데, 그 부분은 편집자가 임의대로 처리할 수 없으니 내게 연락처를 주면 문의해본 뒤 연락하겠다고 말한 뒤에 끊었다.

그가 문제삼은 부분은 "하지만 정말 이 영화에 관한 문제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서세원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공중파 방송에서 이 영화를 선전했다는 점이다. 그는 공식적인 소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언급되지 않아도 될 프로그램에서도 이 영화를 언급했다. 이것은 상사가 지위를 이용하여 부하 직원을 성희롱하는 것보다 더 비루한 짓이다. 그는 <조폭 마누라>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품을 만들고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공중파 방송이라는 거대한 홍보 수단을 통하여 우리들을 희롱한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하여 수익을 남기는 것이 범죄라면, 상사의 성희롱이 범죄라면, 이것 또한 분명히 범죄다."라는 부분이었다.

지금은 이런 방식의 영화나 드라마 홍보가 하도 흔해져서 문제제기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처럼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런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어쨌든 개그계의 풍운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재능과 인기를 한몸에 받던 그였지만 이 무렵이 서세원 씨를 둘러싼 여러 풍문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던 터라 그 역시 매우 민감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이효인 선생께 전화를 했더니 전화 번호 알려주라며 도리어 역정을 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사건이 되었고, 그 역시 당시 사건들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많았던 듯 싶다. 어쨌든 이후 서세원 씨는 연예계 비리 사건, 세금 탈루, 조폭 관련 사건이니 뭐니 해서 워낙 여러 사안들이 봇물 터지듯 연일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터라 내 기억에도 더 오래 남는 모양이다. 개그맨이 아니라 목사님이 된 서세원 씨가 며칠 전 3월 12일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해서 그 시절 이야기와 관련된 오해와 해명을 했으니 좀더 자세한 내용은 그런 걸 찾아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야, 이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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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의 유골 감식결과 타살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 갑갑하다. 솔직히 여태 그걸 몰랐던 사람이 누가 있으랴. 모두가 알고 있던 일이었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부터 국정원 여론조작이 사실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나 맞는 말이고, 한국에서 울화나 불안은 좀더 공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의롭지 못하고, 무기력하며 우리가 악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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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인터넷 블로그의 고수, 블로그를 통해 유명인이 된(성공한) 사람쯤으로 소개될 때가 있다. 그런 말이 되는 혹은 말도 안 되는 소개가 나란 사람을 소개히기엔 역부족이고, 유명인을 지향한 바 없는 내 입장에선 억울할 때가 종종 있다. 일단 나는 블로그를 통해 유명해진 적이 없다. '블로그=홈페이지'라고 한다면 혹시 그건 약간 인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어쨌든 살면서 가슴에 새기는 이야기 중 하나, 만약 내가 어떤 분야의 고수라면, 혹은 고수가 되고 싶어한다면 이렇다고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손자병법"에 나온다.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 ~ 1645.6.13)


"손자병법"에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고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여유.
- 그에게는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무게가 있다. 아직 덜 익고 서투른 사람은 어수선하고 바쁘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이든 완전히 이해하고 장악한 사람은 그 경륜과 기술만큼이나 무게와 힘이 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신중함으로 대안을 찾아내고 위기를 겪어 낸다.

2. 무게.
- 그는 자신의 칼날을 함부로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강태공은 “남과 다툴 때 번쩍거리는 칼을 쓴다면 훌륭한 장군은 아니다”라고 했다. 진정한 최고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거나 뽐내지 않는다.

3. 겸손.
- 그는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의 갈 길은 자신이 직접 선택하는 소신과 자신감이 있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한다면 최고 중의 최고는 아니다’라고 손자는 말한다. 자신이 정한 원칙과 소신은 타인의 칭찬이나 환호,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4. 비범.
- 손자는 진정 고수의 병법에는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미덕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이중에서도 내가 첫손으로 꼽는 건 '겸손'이다. '겸손'만이 나머지 덕목들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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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의 제왕, B-52가 한반도 상공에 뜬단다. 키리졸브 훈련 때문인데 흔히 미국의 핵우산이라고 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데, 핵우산의 촘촘한 살대를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이른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잠수함(잠수함발사탄도탄,SLBM), 그리고 공중발사탄도미사일(ALBM)이다. 이중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대륙간을 미사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국 근방에 설치될 필요가 없어 자국의 은밀한 장소에 배치되기 마련이고, 잠수함발사탄도탄은 그 자체로 은밀성이 최고의 장점이기 때문에 드러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무기가 지닌 현시효과에 의한 전쟁억지력으로 핵추진 항공모함을 미국 군사력의 집결체인양 떠드는 경향이 있지만 항공모함, 그 자체는 재래식 전력의 성격이 강하다. 다만 해군력이 주는 강력한 현시효과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1952년에 초도비행을 한 폭격기로 올해 환갑을 맞은 무기인 B-52는 현시효과란 측면에서 실제 운용 비용까지 매우 실용적인 무기이다. 개발 연도가 오래되다 보니 대중의 인식 속에 이 무기는 첨단무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이 무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ALBM(공중발사탄도미사일), 다시말해 핵탄두를 실어나를 수 있는 핵미사일 발사 플랫폼이자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폭탄 탑재량을 자랑하는 전략폭격기로 향후 40년 이상(2040년까지) 운용할 계획의 현역 무기이자, 동시에 미래 무기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 책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중에서 B-52부분 일부를 인용(108~110쪽)한 것이다.

전쟁억지수단이 된 핵폭탄을 대신한 전쟁수단

전략폭격의 끝은 핵공격이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17초, 히로시마 상공 570m 지점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이 폭발했다. 핵폭탄은 십만 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에 섭씨 300,000도에 이르는 불기둥을 뿜어냈고, 1초 후 불기둥은 반경 250m로 부풀어 올랐다. 버섯구름은 7km 상공까지 솟아올랐고, 폭발로 인한 열 반응은 16km 상공까지 미쳤다. 아무런 사전경고 없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은 폭발 즉시 그리고 며칠 동안 대략 14만 명의 사람을 죽였다. 3일 후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7만 명이 더 죽었다. 그 후 5년간 방사능에 피폭된 13만 명이 죽었고, 1975년까지 3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원폭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60년대 중반이 되자 미사일 기술의 발전이 전략폭격기의 존립기반을 흔들기 시작했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발사한다면 값비싼 전략폭격기보다 위력은 강하면서 값은 저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폭탄 개발비용이 20억 달러였는데, B-29 폭격기의 개발비용은 30억 달러였다고 한다.


그러나 핵무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엔 한 번도 실전에서 사용될 수 없었다. 동서냉전기간 동안 수립된 상호확증파괴전략은 핵전쟁이 곧바로 인류의 멸망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은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 연속적인 핵공격을 가해 만주와 북한 일대를 핵 오염 지대로 만들어 중국군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다행히 계획으로 끝났다. 이후에도 쿠바 미사일 사태 등 몇 차례의 핵전쟁 위기가 있었지만 핵무기는 사용되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핵무기는 너무나 강력한 파괴력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무기가 되었고, 덕분에 위력은 조금 약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전략폭격기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B-29는 한국전쟁에도 사용되었다. 4년의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이 주축이 된 UN군은 1백만 회 이상 출격하여 한반도에 476,00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공중전에 제트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UN군은 2천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특히 미국과 서방의 항공전문가들은 미그15(MiG-15)가 보여준 소련의 기술력에 경악했다. 지금까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미국의 제트전투기에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뛰어난 전투기를 개발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자 보잉은 제트 엔진을 이용한 폭격기 개발에 나섰고, 1951년 중반엔 미국 최초의 제트 폭격기 B-47(Stratojet)을 개발한다. B-47은 9.9톤의 폭탄을 탑재하고 6,437km를 비행할 수 있었지만 냉전은 더 크고, 더 강력한 폭격기를 요구했다. 1952년 4월 15일, 보잉은 B-52(Stratofortress)를 탄생시켰다. B-52는 길이 48.5m, 날개 길이 56.3m, 8개의 제트엔진으로 약 22톤(나중엔 27톤)의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를 탑재하고, 16,013km를 비행할 수 있다. 미국은 해외 기지가 아니라 본토에서 이륙해 지구상 어디든 폭격이 가능하길 바랐다. 보잉은 707 민항기의 설계를 이용해 공중급유기 KC-135(Stratotanker)를 만들었다. 이 비행기는 길이 41m, 날개 폭 39.6m에 최대속도 940km/h로 제트 폭격기와 비슷한 속도로 날면서 25,000갤런의 연료를 공급할 수 있었다. B-52 폭격기 개발 이후 한동안 미국에선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략폭격기 개발이 주춤해졌지만 초강경 보수주의자였던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B-1과 스텔스 기능이 도입된 F-177, B-2 같은 최신예 전략폭격기들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B-52는 이들 폭격기들이 모두 퇴역한 이후인 2045년까지 계속해서 전략폭격기의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현재 B-52에 탑승하는 주요 승무원 대부분은 비행기의 기령(機齡)보다 어리고, 심지어 2대에 걸쳐 같은 비행기에 승무원으로 탑승하는 일도 있다.





B-52가 1950년대 중반에 개발된 기체인데도 다른 최신형 폭격기들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B-52의 엄청난 살상능력이 지닌 현시효과(顯示効果) 덕분이었다. 1991년 벌어진 걸프전 당시 미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군은 매일 1천회 내지 1천 5백회를 출격했는데, 전략적 요충지였던 바스라(Basra) 서안의 이라크 정예 공화국 수비대는 3시간마다 한 번씩 B-52의 공습을 당했다. 당시 B-52는 고성능 집속탄을 사용하는 대신 표준형 500파운드짜리 폭탄만을 사용했는데, 지하 벙커에 자리 잡고 있는 이라크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긴 어려웠지만 심리적 효과는 대단했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다국적군은 이라크 병사들에게 B-52가 어떤 부대를, 언제 공격할지 미리 경고하는 전단을 뿌렸다. B-52는 예정된 시간에 예고한 부대를 정확히 공격했는데, 이라크 군으로 하여금 B-52의 공습은 도저히 피할 수 없으며 단지 항복만이 살 길이라는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전술이었다. ‘토마호크’ 미사일 같은 스마트무기들은 TV에 방영된 것처럼 이라크의 중요시설을 정확히 공격했지만 실제 전장에 나가있는 병사들의 사기를 꺾지는 못했다. 스마트무기는 전선의 일반 병사들을 직접 겨냥한 위협이나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B-52 폭격기들의 대대적인 위협은 집중적이고 파멸적이었으며 일선의 병사들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그 결과 이라크 병사들의 탈영병/포로 대 전사자 비율은 24.67대 1로 탈영병 수치가 높기로 악명 높았던 베트남전의 0.19대 1을 압도적으로 능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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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 상공에 폭격기의 제왕, 아니 그 죽음의 제왕이 떠 있다. 이라크 전쟁 발발 10주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2003년 3월 20일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4월 9일 바그다드가 점령되었고, 전쟁 발발 두 달만인 5월 1일 미국의 조지 부시 주니어 대통령이 항공모함 위에서 자랑스럽게 종전 선언을 했지만 전쟁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미국은 다시 지난 2011년 12월 종전 선언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주장했던 이라크 전쟁의 세 가지 목적 "사담 후세인 제거, WMD 제거, 이라크 민주화" 중 유일하게 사담 후세인 제거만 성공했을 뿐 나머지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미군 4,500여 명 전사, 3만2000여 명이 부상당했다. 다른 한 편 이라크 전쟁 발발 10년 사이 11만2000명 이상의 이라크 민간인이 숨졌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17일(현지시간) 발간됐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보고되지 않은 희생자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라 만약 이 수치까지 감안한다면 사망자 수치는 17만40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B-52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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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박노자도 말한 바 있지만 한국에서는 글줄께나 읽었다는 사람일수록 러시아문학의 대표작가로 톨스토이 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윗길로 놓는 사람들이 많은 듯 싶다. 왜? 톨스토이가 그렇게 만만해? ㅋㅋ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였고, 두 사람 모두 러시아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가라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생존 당시 두 사람의 작품 고료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톨스토이가 장당 500루블을 받았던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을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톨스토이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고료를 받아야 했다.

명성을 얻은 뒤, 그러니까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조차 장당 300루블에 불과했다.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료가 쌌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항상 돈에 목말랐기 때문이고, 그가 항상 돈에 목말랐던 까닭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잘 알려진 대로 도박중독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유독 도박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1849년 12월 21일 젊은 혁명가를 꿈꿨던 28살의 젊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대 위에 섰다. 그러나 짜르는 젊은 지식인들을 죽이는 대신 다시는 체제 전복 같은 보람있는(?) 일에 나서지 못하도록 겁만 주고 싶었기 때문에 사형대에 세운 뒤 이들을 다시 풀어주었다. 당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정은 훗날 그가 펴낸 장편소설 "백치"에 잘 드러나 있다.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눈을 질끈 감았겠지만 그 순간 예정된 구원이 다가왔다. 저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달려왔던 것이다. 사형 직전에 목숨을 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고, 그가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형기를 마친 뒤 군대에서 사병 복무까지 마친 뒤인 1859년의 일이었다.

극적으로 사형을 면하긴 했지만 이후 그의 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아내가 죽고, 형이 죽고, 잡지 경영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후 그는 빚쟁이들에게 쫓겨가며 도박에 몰입했지만 도박은 그의 인생을 극한의 빈곤 속으로 처넣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하게 계약을 맺었고, 도박으로 원고료를 탕진하기에 바쁜 데다 마감에 쫓기는 바쁜 일정 때문에 그의 걸작들 중 상당수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구술필기의 형태로 집필됐다.

사형대 위에서는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던 도스토예프스키였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한국의 글쟁이들은 도박 중독자들도 아닌데 원고료도 안 주면서 글을 쓰게 한다거나 먹고 살기 힘들 정도의 각박한 원고료만 지불하는 상황은 아무리 자기네도 힘들다고 하지만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서 예술인 소셜 유니온이 꼭 필요한 곳이 한국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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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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