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야 할 이유(why)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방식(how)에도 견딜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나는 극한의 상황에 처했던 인간들이 남긴 수기(혹은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인간이 남긴 대부분의 이야기는 한 인간(평범한 영웅들)이 원하지도, 예기치도 않았던 고난을 겪지만 결국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국 거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독하게 평범한 일상, 살림살이가 있을 자리에 정돈되어 있고, 가족이 모이는 저녁 나절의 밥상머리다. 이건 일상의 지극히 평범한 나사 하나가 빠지는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교훈이다.

남의 고통을 즐긴다는 오해를 무릅쓴 더러운 유미주의자의 입장에서 히말라야나 안데스의 조난자들의 이야기나 나치 치하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까닭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심사숙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제노역을 하던 어느 날 한 수감자가 기막힌 일몰 광경을 바라보며 말한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프랭클은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토록 오랜 세월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모든 인간이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똑같이 유대인 수용소를 경험했고 생환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옮긴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통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58년 무렵 뉴욕 레고 파크.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내가 열 살인가 열 한 살이었을 때…. 난 하우이, 스티브와 어울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만 스케이트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 얘들아! 기다려.”
“꼴찌다! 꼴찌! 하하하”
“같이 가! 얘들아.”
아버진 마당에서 뭔가를 고치는 중이셨다.
“마침 들어오는구나. 이리 와서 이것 좀 잠깐 잡아주렴.”
“훌쩍, 네?”
“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나무를 잘 붙들려무나.”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절두고 가버리잖아요.”
아버진 톱질을 멈추셨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아트 슈피겔만, 권희종 외 옮김, 쥐, 아름드리미디어, 1권, 본문 5-6쪽>


이것은 단지 역사 속 나치 치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수용되어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이 자꾸만 히말라야 정상에 추락한, 안데스 고원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의 삶처럼 변해가고 있다. 죽은 자의 시신을 놓고 인간적인 장례를 치러줄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시신이라도 뜯어먹고 살아남아야 할지 이 사회가 점점 더 심각하게 강요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주지 않으면서 살아남기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빵조각까지 다 주어버리던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 준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을 수는 있으나 단 한 가지 빼앗을 수 없는,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자유, 즉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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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운전하는 다마스를 타고 함께 한계령을 넘어 놀러갔던 추억도 있고, 언젠가 이 차를 구입해서 조그만 일인용 캠핑카로 개조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단종된다니 아쉽다.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가 올해말 단종되는데 지금까지 이 차량들을 이용해 먹고 살던 영세상공인들의 대안은 앞으로 오토바이 또는 농기계로 분류되어 도심운행에 제약이 있는 이른바 사발이 오토바이 정도 말고는 없다는 뜻이 된다.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류의 장비를 운용해야 하는 영세상인들(예를 들어 세탁소 같은)이 비바람은 물론 폭서와 한파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견뎌야 한다는 뜻이라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가 이른바 환경오염을 줄여주는 매연저감장치 장착비용 때문에 단종시킨다는 명분도 문제다. 







매연저감장치를 강제하는 규정이 세워진지 이미 몇 해가 지났건만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건 어차피 퇴출시킬 계획이었다는 뜻이고 명분은 환경오염이지만 결국 그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많은 매연을 뿜어낼 2행정 탈거리(오토바이 같은)로 전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업체를 가지고 있지만 막상 그 나라 국민들 중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 반드시 그런 종류의 차가 필요한 나라 국민들은 그런 차를 가질 수 없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런 점을 놓고 보더라도 국가에서 경승용차는 물론 매연저감장치를 장착한 경상용차 개발과 이용을 촉진하는 등 정책적인 배려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자동차 정책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굳이 단종된다는 경상용차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소비자가 존재하는데도 규모의 경제를 해야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강제되는 지점에서 기업(생산업체) 역시 수익 논리에 떠밀려 생산되지 않거나 사라지는 제품들도 많이 있다. 앞서는 차량 이야기를 했지만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컴퓨터 디스플레이다. 나처럼 문서작업을 위주로 하는 사람에겐 4:3비율의 디스플레이가 좋지만 이런 제품들은 더이상 시장에서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디스플레이 생산기업들이 와이드 비율의 디스플레이만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세계 1~2위의 디스플레이 생산기업이 있는 나라에서(물론 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벌어지는 일들이다.

우리는 생태계나 문화계의 건강을 위해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잠시도 떨어져 살아갈 수 없는 시장 생태계에서의 다양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제품, 틈새 제품을 생산하는(특히나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중소기업들이 퇴출되고 대기업이 모든 것을 독점하고 강제하는 구조에서는 이처럼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상황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경쟁논리와 소비자의 권리를 말하지만 그 경쟁논리 앞에 소비자에 대한 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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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다는 말은 너무 진부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되돌아보면 언제나 이 말 이상의 말을 찾기가 참 어렵더군요. 지난 한 해 모자라고 서툰 사람의 글을 찾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새해에는 내실을 다지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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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선정한 올해의 책(사회과학 부문) :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이토록 탁월한 자본주의 문명사

김동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이 책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먹을거리, 탈거리, 입을 거리, 즐길 거리에서부터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미디어, 광고, 여론조사, 애니메이션을 거쳐 전쟁에서 사용되는 총, 21세기 문명의 필수품인 석유, 여행 시 반드시 들르게 되는 호텔, 섹스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을 지탱하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일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책이다.
          



1913년 포드 자동차 공장(위). 헨리 포드(위 오른쪽)는 벨트 컨베이어를 이용해 생산성을 높였다.

이 책이 매우 흥미로운 이유는 오늘 우리 생활에서 극히 중요한 상품들이나 생각이 어떻게 대량으로 공급되기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준다는 점 외에도 그것을 공급자인 사람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냥 총, 석유, 자동차, 코카콜라, 바나나 등 이렇게 상품이나 물건 위주로 서술을 하면 훨씬 딱딱해질 내용도 일생 동안 그것을 고안해서 상품화하고 세계 저 구석에 사는 사람들의 손에까지 도달하도록 만든 기업가 개인의 성공과 좌절의 이야기로 재구성하게 되면 흥미를 더하게 된다. 또한 저자는 모든 소재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 위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영화·소설 등의 장면과 여러 풍부한 이야깃거리들을 연결하고 있어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도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그 ‘물건’들의 추악함도 들춰내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사이자, 문화사이며, 기업사이기도 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현재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했으며, 대부분이 기업가이고, 또 그 대부분이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을 무대로 활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그 이전의 제국과 달리 총과 칼로 식민지를 정복한 나라가 아니라 상품과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전 세계인을 고객으로 끌어들여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자본주의·물질문명·미국을 좋아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미국이 이러한 상품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개척하려는 도전정신·창의성·혁신의 열정이 깔려 있었다. 과연 오늘 우리가 먹고 입고 즐기는 것 중에서 현대 문명의 기관차를 이끈 이들의 역할을 빼고서 말할 수 있은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세계 문명을 이끈 기업가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어두운 점, 이들 기업과 그 기업들이 만든 물건이 세계를 제패하는 과정에서 야만적인 노동 착취, 정치권과의 부도덕한 유착, 식민지 정복, 쿠데타 배후 조종 등 추악한 일이 동시에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그래서 이 책은 현대 문명의 어두운 점을 함께 조명하며, 오늘의 풍요 뒤에는 어떠한 잔인한 일들이 진행되었는지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위대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또한 이 거대한 문명의 빛과 그늘의 흐름을 타고 있는 한 행위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시사주간지 <시사IN>은 연말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내 책이 2012년 올해의 책(사회과학 부문)으로 선정되었다. 추천위원은 박권일(계간 <자음과 모음R> 편집위원), 박상훈(후마니타스 대표), 변정수(출판평론가), 이권우(도서평론가, 한양대 특임교수), 이현우(서평가, 온라인 필명 '로쟈'), 장동석(출판평론가), 정승일(한국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 한미화(출판평론가) 


** 앞서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이 8명의 추천위원들에 의해 걸러진 선정이었다면 내 입장에선 같은 동업자들이라 할 수도 있는 "출판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책(국내서)" 편에도 선정되었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기쁘다.

별책부록에 수록된 기사 중 일부만 인용해보면...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도 큰 호평

국내서로는 <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 그린비), <욕망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전성원 지음, 인물과 사상사), <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 또하나의문화) 등이 많이 거론되었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의 지적 여정기이자 사유의 자서전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800쪽 가깝게 두꺼운 책인데도 마치 여행기처럼 금세 읽혔다"라고 독후감을 전했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는 헨리 포드에서 마사 스튜어트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을 통해 사람과 도시, 삶의 변화를 관찰한다. 필자 전성원 씨는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이며, 블로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운영자로도 유명하다. 역사학자 한홍구가 "날 보고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라 하지만, 전성원은 그런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꼼꼼한 디테일을 가졌다"라고 말한 것처럼 책의 구성력이 돋보이고 팩트가 디테일하다는 평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다양한 지식을 끌어들여 논리를 펼쳐나간다. 첫 저작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괜찮은 필자를 발견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25>도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탐침한 논픽션이 드문데, 사당동의 변천사를 통해 빈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길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와 <사당동 더하기 25>는 출판 편집자뿐만 아니라 인문.사회분야 전문가 추천위원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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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에 들어서야 우리나라에서 비로소 '중국학'이 시작된 기분이 든다. 중국 혹은 중국학의 시작의 기점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에 대해 나는 이 분야에 대한 배움이 부족한 사람이라 쉽게 말하긴 어렵지만 아직 중국이 중공이던 시절인 1977년 리영희 선생이 엮은 "8억인과의 대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잘 모르는 분들은 이 책을 리영희 선생이 쓴 것으로 아는데 이 책은 라티모어, 갈브레이스, 솔즈베리, 테릴, 뮈르달 등 당대의 석학들이 쓴 것을 리영희 선생이 편역해 옮긴 책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문화대혁명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비롯해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아니라 중공만 존재하던 시절, 이 책이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반공이데올로기를 넘어 중국을 좀더 객관적으로(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선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의 일이었으므로 그에 따른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충격은 이후 학문적으로 계승되었다기 보다는 소련과 북한을 제외한 또 하나의 사회주의 모델로서 계승하거나 발전시켜야 할 모델 중 하나로 인식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거기엔 68혁명의 사상적 베이스 중 하나로 마오이즘이 깔려있었던 탓도 적지 않았을 게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은 한국경제의 하위파트너쯤으로 인식되면서 출판 영역에서도 어떻게하면 중국을 베껴먹을 것인가 정도 수준에서의 접근이었다면 중국에 대해 학문의 영역에서 좀더 깊이있게, 진지한 접근이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 물밑에서 중국을 진지하게 접근한 학자들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음, 뭐 복잡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올해 중국과 관련해 출간된 책 중에서 몇 권을 소개하고 싶어서 시작한 말이다.

중국만화가인 리쿤우의 만화작품 "중국인이야기"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아버지의 시대'가 출간되었다. 2부 '당의 시대'와 3부 '돈의 시대'도 곧 출간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404009

현이섭 선생의 "중국지(상.하)"는 상권 용쟁호투 편에서 중국의 혁명전야에서 시작해 내전기간을 하권 대란대치 편에서는 신중국 건국 이후 4인방 체포 직후까지를 다루고 있다. 국내 저자의 작품으로 신중국혁명사의 개론으로 일독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다만 저자의 시선이 다소 복합적이지 못하다는 점(선악구도)에서는 감점 요인이 좀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76756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767573

그러고보니 백승욱 선생의 "문화대혁명: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와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도 올해 나온 책이다. 앞의 책을 읽고 좀더 심화된 내용이 알고 싶다면 후자로 건너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06614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827643

오래전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었고, 책으로 나왔을 때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중국(인)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분의 책인 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중국 근현대 인물열전이다. 나머지 책들도 빨리 나왔으면 하고 있는 중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62119

첸리췬의 "망각을 거부하라-1957년학 연구기록" 역시 올해 나온 중국학 서적인데 중국 문화대혁명의 시초가 된 반우파운동의 기록이다. 중국 역사의 아픈 기록을 담고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본 것이 "장칭-정치적 마녀의 초상"이다. 교양인이 펴내고 있는 '문제적 인간' 시리즈 9번째 책이기도 하다.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99779

로스 테릴이 자음과모음에서 2008년에 펴낸 "마오쩌둥"과 연계해서 읽어보는 것도 한 재미일 것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4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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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멘터리 '킹메이커'의 2부 제목은 '중도층은 중간에 있지 않다'였다. 좌와 우는 물론, 스스로를 중도로 분류하는 유권자들조차 사안별로 자신의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사안에 따라 좌와 우를 넘나드는 선택을 하지만 통계의 착시효과로 인해 중간층으로 비쳐질 뿐이라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자신도 '리버럴'에 속하며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진영논리를 윤리와 혼돈하지 말라며 비판하는 태도 역시 그들이 비판하는 계몽적인 태도와 양비론의 다양한 변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흔히 진보진영의 계몽적인 태도, 물론 일부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대중을 가르치려 하는(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50-60세대를 저주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선 못마땅하지만 대중은 이를 싸잡아 비난하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익숙하며 피곤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속물들 못지 않게 '검은 가면을 쓴 흰 피부'들도 혐오스러운 까닭은 발언의 온도차는 있을지라도 "피지배자들의 언어를 말살하고 자신들의 언어를 강압적으로 이식"하며 피지배자들의 타당한 분노(근원적 정체성)를 스스로 의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대중의 반지성주의를 등에 업고 자신과 동일한 입장(스탠스)를 취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사이비 지성의 창궐도 혐오스럽지만, 성찰을 가장해 대중의 분노를 기껏해야 진영논리와 윤리의식의 잘난 척으로 비하하는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에서도 나는 성찰의 코스춤에 그칠 뿐 대중에게 스스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스스로의 언어를 갖도록 하는 방식이 아니란 점에서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절반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또 절반은 그를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승자에게는 축하를 보낼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패자에게 돌을 던지는 일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옳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옳은 주장을 펴는 후보가 승자가 되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는 언제나 논리학자들이 전담했을 테지만 정치는 논리보다 심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슬퍼하는 이들을 충분히 슬퍼하게, 분노하는 이들을 충분히 분노하게 할 일이다. 위로와 위안은 그 뒤의 일이며 그뒤에야 비로소 우리는 성찰과 대안 모색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남보다 한 발 앞서 이성을 찾고 향후 정치를 모색하고 분석하는 것이 또한 지식인의 몫이겠으나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당신의 말에 깨우침을 얻을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나.


진창에 넘어진 자는 스스로의 손으로 진창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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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났을 때 대통령은 박정희였고, 내 딸이 태어나고 치른 첫 번째 선거에서 대통령은 박근혜가 되었다. 사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혈육이 대를 이어 통치자가 되는 것을 이상한(또는 비정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극히 짧은 한 순간이다. 그것을 한반도의 역사로 치환해보면 그 역사는 더욱 더 짧아진다. 2012년 대선을 분석하기에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몇 가지 지점은 고민스럽다.

우선 나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인으로 신분이 바뀌는 상황은 극한의 독재 상황을 겪고 민주화한 공화국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시선의 한 지점에는 한국이 제3세계(식민 독재를 경험하고 이후 근대화를 추진한 나라) 국가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 이후의 상황이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비출지는 몰라도 제3세계권에서 전임 통치자(그가 국부였든 독재자이든 권위주의 정부였든 간에)의 후광을 얻어 후임자(가까운 근친이나 혈육)가 선출된 사례는 매우 많았다.

이외에도 민주적 정부 체제 아래에서도 유교적 권위주의 질서(동남아의 민족적 구성이나 종교적, 문화적 사례와 관계없이 이 경우 대부분은 정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화교 경제권 아래에서)가 통치의 명분이나 효과면에서 제법 능률적으로 작동한 사례들이 제법 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통치를 독재로 바라보기보다 여전히 유교적 권위주의 정치체제 정도로 이해하는 노년층에게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성공(?) 사례를 박근혜 당선인이 재현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리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선거를 전쟁에 비유하는 까닭은 선거 과정에서의 네거티브, 여권 후보에게 호의적인 또는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언론의 여론 조작 사례 조차 선거 승리 이후의 결과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 H. 부시와 마이클 듀카키스의 선거는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의 네거티브 선거전이었고, 이 선거에서 부시 후보는 대선 초반 듀카키스 후보 보다 계속해서 지지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리 애트워터(Lee Atwater), 다쓰베이더, 나쁜 놈(Bad boy)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던 불과 37세의 선거전략가를 기용해 엄청난 네거티브로 결국 듀카키스를 낙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이들이 사용했던 네거티브 홍보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거짓 혹은 이전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과오였던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를 뒤바꿀 수는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정책과 비전을 보여준 후보는 없었다. 거기에 선거를 지배한 커다란 이슈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이번 선거는 사실상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치러지기에 매우 적합한 선거였으며 실제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네거티브(흑색선전)로 진행된 선거였다. 네거티브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최고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란 단지 적합한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후보의 정책과 정견을 알리고, 국민의 동의를 얻는 (홍보)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이 비록 양강 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향후 자신의 정책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절반의 반대자들은 물론 설령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손쉽게 지지를 철회할 사람들에게 정책 진행 과정에서 저항에 부딪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또 한 가지는 이번 선거가 이념, 지역간 갈등을 넘어 세대간 갈등이라는 새로운 갈등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선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청년 세대의 3분의 1은 박 후보를 지지했다고 하지만 20-40세대('핵심경제활동인구'의 절대다수)는 박 당선인의 경제정책(비록 박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한 효과는 있다지만)에 대해 비판적이며 비우호적이란 뜻이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20-40세대의 인구가 줄고, 50-60세대가 늘어났다는 분석은 현재로선 다소 멀리 나아간 듯 보이지만 어쨌든 양측 지지자들이 총집결해 치른 선거에서 50-60세대의 결집율이 더 높았다는 것이 높아진 투표율은 잘 보여준다.

문제는 박 당선인 측과 새누리당이 다음 번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4년 중임제 개헌이 없다면 2017년 대선)에서 지금과 같은 세대간 갈등을 해소할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대통령 후보 간 토론 당시 박 당선인의 발언과 비록 정당 추천 후보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세력이 다소간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문용린 후보로 단일화를 이루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박근혜 집권 이후 정부 명칭을 '국민행복정부'로 하겠다는데 국민행복정부 기간 중에 스스로를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게 될 사람들은 교육계 종사자들, 특히 '전교조 교사'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교육은 대한민국 최대의 배틀 그라운드로 떠오르고 있으며 어떤 이름이 붙든 현재의 20-40세대를 앞뒤로 샌드위치처럼 고립시키려는 교육의 이념적 보수화 정책이 한국 보수 세력의 새로운 재집권 카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 최대의 패착은 누가 뭐래도 민주당의 무능이다. 박근혜에게 박정희 프레임을 씌운 것은 국민(이른바 중도층으로부터 진보(노동)층)의 반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친노 세력의 착시 현상 때문이며, 후보 단일화 전략을 메인 전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 전략은 '전쟁은 언제나 지난 번 마지막 전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자들이 패배한다'는 교훈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 집행부란 사실이다. 자신들이 보여줘야 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안철수의 비전도 자기화하지 못하는 기생정당화해버렸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에게, 정치쇄신은 안철수에게 빼앗겨 버린 뒤 문재인은 유권자들에게 이것 만큼은 문재인만이 할 수 있으며 문재인이 해내겠다는 이슈를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채 선거를 치렀다.

민주당 내부의 분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무엇보다 이번 선거가 아픈 까닭은 2002년 대선 이후 10년 세월 동안 진보의 지리멸렬, 완벽한 패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는 과정은 물론 이후 사회당과 통합한 진보신당이 사실상 사회당계와 구 진보신당 계가 분열되어 대선 후보를 내는 과정은 20년 진보정당 지지자들마저 이번엔 진보세력도 심판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민주당의 몰락과 두 차례의 패배는 진보가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제 그 대안의 몫(이미지)은 안철수에게 넘어갔다. 진보정치세력이 김대중, 노무현 시대(이른바 자유주의 정치 세력이 집권한 동안) 노동자, 서민이 이전 정권들 보다 나은 삶을 살았느냐고 대중들에게 퉁명스럽게 혹은 계몽적으로 되묻는 동안 대중은 진보정치세력의 행보를 눈뜬 장님처럼 보았을까? 이 점은 진보정치세력 스스로 뼈아프게 되물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어쨌든 결과는 나왔다. 어떤 이는 MB 정권 5년도 살아냈는데 박근혜 정권 5년 못 참겠는가라며 자위한다. 하지만 5년 전 그 어떤 이들이 민주화 10년, 과연 MB라 할지라도 이런 과정을 얼마나 되돌이킬 수 있겠는가라며 민주화는 대세라고 자위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심판해야 할 때 심판하지 못하는 국민은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민주주의의 징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 10년이란 좋은 기억은 이제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 좋겠다. 이제야 말로 보수 정치 세력이 10년을 집권하는 상황이 도래했으며 이 말은 권력과 언론, 재벌의 유착이 좀더 공고하게, 좀더 공공연하게 대한민국의 리빌딩을 시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과반을 넘긴 지지와 국회를 등에 업은 수직적 권위주의 정권의 탄생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가파르고 거친 일이 될 것일지 일말의 희망과 의지로 견뎌내기에는 걱정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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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직후 연평도에서 만난 눈웃음이 장난 아니었던 멍멍양 ^^


페이스북은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묻는다.

궁금해서 묻는 것도 뭐라고 할 말도 없지만 아무 생각 없는 내게도 생각을 강요하는 측면은 있다. 내가 이른바 매문(賣文)을 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더라? 돌이켜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오래된 일도 아닐 텐데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스스로 마음에 염을 세우긴 내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엔 결코 내 글을 돈받고 파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었고,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출판평론가 최성일 선생이 출판저널 근무할 때 첫 청탁을 받았던 것이니 제법 오래 전 일이긴 하다.

어쨌든 잘해야 1년에 한두 번이던 것이 1년에 서너 번이 되고, 그것이 언젠가는 한 달에 한두 번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해 전부터는 고정 연재 일거리들도 밀려들었다. 처음에 외부 청탁 원고를 쓰기로 마음 먹었을 때 초반엔 오는 일은 절대 사양치 않고 무엇이든 하겠노라 -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나의 글쓰기가 오로지 나의 것만은 아니라는 알량한 80년대식 운동권 마인드가 남아서 그런 것이고, 또 하나는 나 같이 하찮은 쪼가리 글쟁이에게 청탁할 정도면 그쪽 마음은 오죽하겠냔 마음이 반이었다 - 결심했고, 어쨌든 그 결심을 최근, 그러니까 급성 A형 간염 발병 이전까지는 고정 연재를 뒤로 미루어두기는 했을 망정 사양하거나 거부한 적은 없다.

원고료가 없는 글쓰기도 사양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 결과가 피로누적에 과로사할 지경이 되어서 2010년 11월 말 무렵엔 대상포진이 왔고 - 나도 참 미친 놈인 것이 이때 연평도포격사건이 있었는데 그 무렵 달달이 '인물과사상'에 120매씩 연재를 하던 중에 대상포진이 발병했는데도 영감님 모시고 연평도구호사업한답시고 연평도까지 또 배 타고 들어갔었다 -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뒤인 올(2012년) 11월 말에 급성 간염이 와서 뻗어버리는 상황이 왔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나도 나이 40을 넘겨 버렸던 거다. 이젠 내 마음과 달리 몸을 달래가며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단 뜻이다.

사실 문예창작과 졸업했는데 나라고 전업 글쟁이를 꿈꿔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기대받는 예비 글쟁이 중 하나였으니까, - ㅋㅋ 동기들도 제법 이곳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더 심한 거짓말은 못하겠고 - 하지만 결국 한 번도 전업 글쟁이 생활에 도전해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탓도 컸겠지만 글쓰기, 특히 문학에 대한 열망이 내가 알던 것보다 형편없이 작았던 탓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그도 아니라면 먹고 사는 문제가 턱 앞에 걸려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워낙 가진 것이 없었기에 내가 문학을 열망할 무렵엔 단 1년도 습작에 전념하며 버텨낼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사실 대학 졸업 무렵 학기말 내딴엔 제법 오랫동안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나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처음에 나는 문학을 통한 '불멸'을 원했다. 내딴엔 대단히 추상적인 관념의 덩어리들을 만지작거리며 살았단 뜻이다. 그런 추상적인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문학을 내 영혼 구제사업으로 승격시켰던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불멸'이나 '소멸'이나 나에게는 모두 그게 그거란 결론에 도달하면서 문학도, 인생도 하찮아졌다. 세상에 나 따위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들 그게 뭐 대수냔 우습지도 않은 생각이 한 번 들기 시작하니 문학이 좇만 해졌고, 아마도 나는 그로부터 쾌락주의자가 된 것 같다.

대단한 쾌락 같은 걸 누려보자고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며 즐겁게 살자고... 누군가 빛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어둠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나를 괴롭히고 불태우던 욕망의 불길이 잦아들었고,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지니 세상도 편해졌다. 다시 말해 욕심을 버리고, 오늘에 충실한 삶을 위해 즐겁게 살아가게 되었단 얘기다. 한 편으론 문학을 꿈꾸며 한 편으론 계간지를 만드는 삶이 아니라 계간지를 만들며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를 즐겁게 하게 되었단 뜻일지도 모른다.

남을 빛나게 하는 어둠이 되리라 그렇게 살다보니 애쓰지 않았지만 내게도 빛날 기회가 종종 찾아왔다. - 물론 그 사이 내가 놀았단 뜻은 아니다. 오늘에 충실한 쾌락주의자는 매일매일 열심히 산다 - 책도 내고, 강의도 다니고, 칼럼도 쓰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에 별로 연연해 하지 않는 나를 보았다. 어차피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고, 내일의 나는 또 오늘과도 다를 게다.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할 거란 사실을 안다. 그 진실을 내 안에 품고 있지만 연연해 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냥 오늘의 이 쾌락을 위해 묵묵히 전진한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오늘 나는 그냥 책을 읽는 거다.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나는 기꺼이 소멸을 맞이하리라.

그게 지금 내 생각이다. 페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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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나는 잘 알 수 없는, 유명하지 않은, 따라서 신뢰할 수 없는 저자일 텐데 누군가는 먼저 내 책의 제목에 이끌려서 내 책을 읽었을 테고, 누군가는 개인적 필요에 따라 내 책을 읽었을 게다. 책을 내면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독자의 서평이다. 어쩌면 책이란 미지의 상대에게 띄우는 '유리병편지'이고, 나는 그 '유리병편지'가 언젠가 먼 세월, 먼 세상을 거쳐 다시 내 손에 돌아오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온 흔적을 내 몸의 일부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http://www.garosoogilbooks.com/?p=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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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전성원, 인물과사상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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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01. 제민일보(2012년 08월 17일, 금)
- http://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92906

02. 경향신문(2012년 08월 17일, 금) : 고영득 기자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8171924025&code=900308

03. 한겨레(2012년 08월 17일, 금) : 권귀순 기자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47598.html

04. 한국일보(2012년 08월 17일, 금) : 채지은 기자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08/h2012081721153884210.htm

05. 매일경제(2012년 08월 17일, 금): 김슬기 기자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520011

06. 국제신문(2012년 08월 17일, 금): 이경식 기자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20818.22015192609

-------------------------------------------------------

07. 중앙일보(2012년 08월 18일, 토) : 채인택 기자
-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079766&cloc=olink|article|default

08. 서울신문(2012년 08월 18일, 토) : 손원천 기자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18019004

09. 부산일보(2012년 08월 18일, 토) : 김영한 기자
-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120818000015

10. 미디어오늘(2012년 08월 18일, 토) : 조현미 기자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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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호일보(2012년 08월 23일, 목): 양수녀 기자
-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7461

12. 인천일보(2012년 08월 23일, 목):조혁신 기자
- 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7319

13. 울산매일신문(2012년 08월 24일) : 김정숙 기자
- http://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8120

14. 경남도민일보(2012년 08월 24일)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89072

15. 광주일보(2012년 08월 24일) : 김지을 기자
-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345734000475873026


16. 대전일보(2012년 08월 24일) : 최진실 기자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21216

17. 영남일보(2012년 08월 25일) : 김수영 기자
- 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20825.010160725220001

18. (대구)매일신문(2012년 08월 25일): 장성현 기자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8295&yy=2012

19. 매경이코노미(2012년 08월 27일): 문희철 기자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541896

20. 한겨레21(2012년 08월 27일)
-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786.html


21. 인천in(2012년 08월 27일): 박은혜 기자

- http://www.incheonin.com/detail.php?number=20758&thread=34r05

22. 주간경향(2012년 08월 28일, 주간경향 990호): 정원식 기자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208211425351&pt=nv

23. 동아일보(인천/경기)(2012년 08월 28일): 박희제 기자
- http://news.donga.com/3/all/20120828/48921600/1

24. 경인일보(2012년 08월 29일)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675480

25. 인천신문(2012년 08월 29일): 유승희 기자
- http://www.i-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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