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CY/Tempus Edax Rerum'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10.11.08 시를 읽는 이유
  2. 2010.11.07 無題
  3. 2010.11.07 귀속(歸俗)과 귀속(歸屬)
  4. 2010.11.06 악순환
  5. 2010.11.06 내가 싫어하는 일 세 가지 (2)
  6. 2010.11.04 풍소헌(風蕭軒)의 유래 (2)
  7. 2010.11.04 빈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8. 2010.11.04 매혹(魅惑; 도깨비 매 / 미혹할 혹)의 재발견 (2)
  9. 2010.11.02 일기...
  10. 2010.11.02 執中無權 (1)

장정일은 책을 내는 자신을 일컬어 '위조지폐범'이라고 말했다. 8,900원 하는 책 한 권을 내면 인세 10%를 받으니 자신은 890원짜리 지폐를 발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읽고 보니 맞는 말이라 피식 웃었다. 한국은행이 지불을 보증한 한국은행권의 액면 가치로 환산되긴 하지만 그는 분명히 책 한 권당 890원어치의 가치, 화폐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위조지폐범이다.  

얼마전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읽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글쎄'라고 답했지만 오늘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에 포스트잇을 가만히 붙여 나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강태공이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듯 그렇게 시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처럼 앉아 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에도 나는 세상에 온통 절망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MB가 노무현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이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한다고 했을 때 사진 속 이라크 소녀를 보며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크게 울었기 때문에 내 눈물의 의미가 대관절 무엇을 뜻하는지 내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울음이었다. 그렇게라도 울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내 양심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며 남을 위해 많이 울라고 충고해준 적이 있다.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이 사실은 자기를 구원해주는 눈물이라고 말이다. 그것이 비록 악어의 눈물 같은 것일지라도... 울지 않고 잘 참아내는 잘난 인간보다 우는 인간이 차라리 덜 비루하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지난 해 촛불시위 때 거리에 나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간혹 듣던 이야기다. 지금은 정권 초반이라 촛불을 들어도 안 될 거라는 식의 비판, 촛불을 들고 그저 거리를 배회한다고 해서 세상이 어떻게 되진 않을 거라는 답답함. 

왜 시를 읽느냐? 그건 지난 촛불시위에 나갈 때 사람들에게 해준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다. 시를 읽는 시간에 내가 다른 어떤 일을 한다면 그보다 더 세월을 잘 보낼 수 있겠냐고?  "시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이라던 김지하의 시에 대한 정의에 내가 감복한 이유다. 시의 바다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낚는 시간이 남들 보기엔 한가롭고, 무료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나 나름대로 어둠을 어둠이라 말하면서 내 안의 어둠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이라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그 안에서 한국은행이 발행한 가치 이외의 다른 가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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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

내가 한 번도 학자로 살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까닭,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자연과학을 전공하거나 이 분야의 지식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까닭은 내가 문학을 선택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와 정확히 겹친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모호한 인간이기에 오래도록 논쟁을 거듭하며 제련되는 결론, 혹은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한 논쟁을 거듭하고, 훈련을 쌓는 일을 싫어한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설령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결론(논리)을 방어하기 위해 누군가와 논쟁을 벌일 만큼 그 결론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나는 결론을 믿지 않는다. 학문이 정의를 내리고, 명제를 만드는 동안 문학이나 예술은 말한다(혹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고, 사람이니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거지." 끝까지 질문만 있고, 결론이 없다는 점에서 문학과 예술은 삶과 서로 닮는다.


2.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자본주의와 동거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진보, 좌파적인 사람, 아니 거의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이 된 말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말은 아무래도 '함정'이란 생각이 든다. 기업은 기껏해야 '법인'에 불과한데,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기업을 의인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다시 말해 기업에게 '사회적 권리(시민권)'을 인정하여 기업이 정치, 사회, 문화에 참견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 아니라 '주주'들에게 물어야 한다.


3.

이분법은 많은 것을 감추지만 반대로 많은 것을 드러내고 명확히 해준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이 어느 부분에서 첨예하게 형성되는지 잘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 '이분법' 혹은 이분법적 사고를 원인으로 지적하지만 정작 이분법이 은폐하는 것은 이분법 사이에 숨겨져 잘 드러나지 않는 갈등과 이해의 여지가 아니다. 이분법이 은폐하는 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분법으로 드러나는 갈등의 이면을 섬세하고 사려깊게 살필 여유와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갈등의 근본원인이나 주변 상황들을 섬세하고 사려깊게 살피는 대신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살피러 갔다가 길을 잃는다. 


4.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이나 '대변혁' 같은 급격한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현대 자본주의와 심각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주체'가 자본 대 '노동자'같은 계급적 주체, '여성, 성적 소수자, 장애인, 외국인 이주노동자' 등 시민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다양한 마이너리티들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세대'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물론 '현재'를 파괴하지만 가장 가혹한 피해자들은 우리들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들이 살아갈 미래의 터전을 파괴한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피해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 다시 말해 지금 당장은 견딜만 하기 때문에 - 거대한 침묵의 공모로 미래의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를 좀 먹고, 파괴하는데 동조하고 있다.


5.

존 레논은 "천국이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노래한다. 그는 역시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현대인들 대부분은 "천국이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한 부류는 상상할 필요가 없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천국을 상상할 여유가 없다.


6.

한때 집 장사를 했던 숙부 밑에서 자랐기에 나는 사업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집 장사라는 것이 큰 돈 들여서 큰 돈 버는 일이라 어떤 의미에선 큰 돈 들어오기 전까지는 내내 궁핍해야 하고, 정작 돈이 들어왔을 때는 그 돈으로 다음 집을 지을 터와 자금을 비축해야 한다. 그래서 숙모는 가끔씩 월급쟁이가 최고란 말을 입에 올렸다. 

내가 사업가가 되지 못하고, 혹은 자영업자의 일종인 전업 글쟁이가 되지 못하고, 월급쟁이로 사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그 영향이다. 나는 예측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언제고 죽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두렵다.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인터넷으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상대에게 호감을 갖고, 그와 넷상으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주인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는 짐승은 다시 누군가의 손에 의해 거두어져 살게 되더라도 늘 끊임없이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친한 사람의 경계를 다음과 같이 두고 있다. 아무런 볼일이 없어도 상대방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사람, 그래서 문득 아무런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게 되고,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친할 친(親)'에 '볼견(見)'이 들어 있는 이유는 친하기 위해선 자신을 먼저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부모가 많은 자식들을 일일이 보살펴주듯 내가 그를 헤아리고, 보살펴 준다는 의미다. 그래서 친할 친의 반대말은 '성길 소(疎)'이다. 친하다는 건 편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를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헤아려 줄 의지가 있는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8.

노예를 해방한다는 명분으로 치러진 미국 시민전쟁(남북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전쟁비용)은 모두 66억 달러에 달한다. 이 정도 금액이면 당시 시가로 노예를 모두 사서 자유민으로 만든 뒤 그들이 지난 100년 동안 체불한 임금을 모두 지급하고도, 해방된 흑인 노예 한 가정당 40에이커의 농장과 노새 한 마리를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필경 경제학자들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전쟁 비용은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라 경제의 순환구조로 보자면 사회적으로 적절한 비용으로 지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예들에게 자유와 토지를 제공하고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건 종종 잊혀져 버린다. 전쟁은 평화보다 더 많은 걸 제공한다. 누군가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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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無題
불교에서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가했던 승려가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것(在家生活)을 일컬어 환속(還俗)이라고도 하고, 귀속(歸俗)이라고도 한다. 생사일대사의 인연을 걸고 용맹정진하여 도를 깨우치겠다는 발심으로 승려가 된 자라 할지라도 속세로 돌아가는 일, 환속이든, 귀속이든, 퇴속(退俗)이든 자유의지로 돌아갈 수 있으며 누구의 허락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발음인 '귀속(歸屬)'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갑자기 북한산에 오르고 싶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그곳에서 하늘도 보고 싶고, 추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서울 시내를 굽어보고 싶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회사에 귀속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없으며,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아무리 강렬하게 희망해도 말이다. 귀속자(歸俗者)자는 귀속(歸屬)이라 삶이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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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불교, 인연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분노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침묵을 버리고 저항에 나선 뒤 오래 버티어 살아남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바른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불의에 휩싸여 있으며 이전보다 더 악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살아가야 하는 일...

악순환이란 말을 떠올리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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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군가를 기다려줘야만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같은 일에 대해 두 번 설명하는 일이고,
마지막 하나는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다.

앞의 두 가지는 내 성질이 못 되먹어서 그러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내가 못 나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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執中無權  (1) 2010.11.02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풍소헌(風蕭軒)의 유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라는 책에서 전, 당, 각, 루, 정, 재, 헌 등 각 건물을 구분하는 법을 적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분적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조선시대의 궁궐 건축에도 역시 그런 위계와 건축 양식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각기 달리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은 그런 위계와 의미, 건축 양식에 따라 다른데, "전"은 궁궐의 건물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 왕과 왕비, 전왕비, 왕 어머니나 할머니 등이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건물로 세자나 영의정 등은 전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당"이란 "전"에 비해 외적 규모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어도 "전"보다 한 단계 낮은 건물을 일컫는 말로 "전"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당"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합"과 "각"은 "전"이나 "당"에속하는 부속 건물이다. 그러므로 불교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웅전"으로 "전"이 되고, 그 이외에 토속신앙의 산신령을 모시는 건물은 "산신당"이 되는 것도 이런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술의 전당은 무슨 뜻일까?)

"재"와 "헌"은 왕과 왕비도 쓸 수 있지만 그보다는 주로 왕실 가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기거활동공간으로 재는 숙식 등 일상적인 주거용이거나 조용하게 독서나 사색을 하는 용도로 쓰이는 건물을 의미한다. 헌은 동헌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대청 마루가 발달되어 있는 집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공무적 기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루와 정의 경우엔 바닥이 지면에서 한 길 높이 정도의 마루로 되어 있는 집을 일컬어 루라 하고, 연못가나 개울가의 휴식 공간 또는 연회 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은 정이라 한다. 같은 루의 형태라 하더라도 일층만으로 된 경우엔 각, 이층일 경우엔 루라고 불렀다. 전이란 말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지만 "당" 아래의 말은 일반 사대부들도 당호나 옥호를 지을 때 각자 편의로 지어 붙일 수 있었다.

내가 구태여 헌(軒)이라 한 것은 대청마루의 느낌, 바람 소리 쓸쓸하게 듣기 가장 좋은 곳, 인터넷 공간이란 결국 남들에게 훤히 내보이는 위치이므로 앞 뒤로 막히지 않은 헌의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풍소헌(風蕭軒)"의 풍소(風蕭)는 사마천의 "사기" 열전편에 실린 자객 형가(荊軻)와 고점리(高漸離)에 대한 내 애정이 담겼기 때문이다.  

형가는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그의 선조가 본래 제나라 사람이었으나 위나라로 옮겨와 살다가 다시 연나라로 가서 살았다.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며 많은 이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긴 했으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옮겨와 사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중국의 객가를 생각해보라) 텃세가 있는 법인데, 연나라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형경(荊卿)이라 불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인품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형가는 생각이 깊으며, 책을 좋아하는 선비였고, 인품이 고결하여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와 교제를 나눈 상대 역시 어질고 호방한 인물들이었다.

형가가 연나라로 와 정착하자 당시 연의 재야 인사였던 전광(田光) 역시 그가 벙상치 않은 인물이란 사실을 알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교제를 청했다. 그 무렵 진나라로 볼모로 잡혀갔던 연의 태자 단(丹)이 진나라에서 도망쳐 연나라로 돌아왔다. 태자 단은 진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기 전에는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진왕 정정(政:훗날의 진시황)을 만나 어렸을 때부터 친구의 정을 쌓았다. 정이 진나라의 왕이 되자 태자 단은 다시 진나라에 볼모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진왕은 어렸을 때 친구였던 태자 단을 잘 대접하지 않았다. 결국 단은 진왕 정이 전국 통일이라는 무서운 야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고, 장차 연의 멸망을 막기 위해 진나라에서 도망쳐 연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진의 보복과 진왕 정의 야심을 사전에 막아내기 위해 태자 단은 자객을 물색하지만 연나라는 작은 소국이어서 그럴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때마침 진나라는 중원으로 진출하여 여러 제후국들을 공격해 영토를 넓혀나가다가 결국 연나라마저 압박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세를 근심한 태자 단은 그의 스승인 국무(國武)에게 그 방책을 자문했다. 국무가 말하길.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나오게 된다면 만리장성의 남쪽, 역수(易水) 이북에 있는 우리 나라도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태자께서는 비록 모욕을 당했다는 유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해서 그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 장군 번오기(樊於期)가 진왕의 미움을 받고 연나라로 망명해 왔고, 태자 단은 그를 받아들여 융숭한 대접을 하며 묵도록 했다. 이때 다시 국무가 충고하길.

"그것은 안될 일입니다. 저 포악한 진왕이 우리 나라에 대한 노여움을 더해 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근심되는 일인데, 하물며 번장군의 은신처가 이곳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날이면, 마치 굶주린 호랑이가 지나가는 길목에 고기 토막을 던져 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반드시 끔찍한 재난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태자께서는 빨리 번 장군을 흉노의 땅으로 보내어 진나라에 트집잡힐 일이 없게 하십시오."


태자 단이 말했다.

"나는 진왕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혼란하여 잠시도 참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번 장군으로 말하더라도 천하에 몸둘 곳이 없어 쫓기는 처지에서 내게 의지해 온 것입니다. 나는 강국 진나라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가엾은 친구를 버리고 그를 흉노에게 보내는 일은 내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이상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아무쪼록 고쳐 생각해 주십시오."


"그러시다면 재야의 인물로 전광 선생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생각이 깊고 침착하며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 그와 한번 상의해 보십시오."


"선생의 주선으로 전광 선생과 사귀고 싶은데 애를 좀 써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국무는 밖으로 나와 전광 선생을 만나 태자가 국사를 상의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전광은 쾌히 승낙하고 태자에게로 찾아갔다. 태자는 전광이 자리에 앉자 간절하게 말했다. "연나라와 진나라와는 공존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원컨대 선생께서는 좋은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윽고 전광이 입을 열었다.

"신은 이미 노쇠하여 국사를 의논함에는 응할 수 없고, 신의 친구인 형가라면 가히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선생의 주선으로 형가와 사귀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광은 즉시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태자는 문까지 전송하며 당부했다.

"내가 지금 말한 것과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은 국가 대사이니, 부디 누설하시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전광은 고개를 숙인 채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굽은 허리를 이끌고 형가를 찾아가서 말했다.

"내가 그대와 친하다는 것은 연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소. 지금 태자는 내가 혈기 왕성한 시절만을 듣고 내 몸이 이미 노쇠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인지, 송구스럽게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소. '연나라와 진나라와는 공존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라고 말이오. 나는 그대를 내 몸처럼 여기고 있소. 그래서 태자에게 그대를 소개하기로 했소. 그러니 태자를 한 번 방문해 주시지 않겠소?"
 

 형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광은 다시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덕있는 사람이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남의 의심을 품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오. 그런데 태자는 내게 또 이렇게 말했고. '지금 말한 것은 국가 대사이니 부디 누설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이오. 그러니 태자는 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오. 무릇 일을 함에 있어 남의 의심을 품게 해서는 절개와 의협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소."
 

전광은 스스로 자결함으로써 형가를 분기시키고자 했다.

"아무쪼록 그대는 곧 태자를 찾아가서 '전광은 이미 죽었습니다. 누설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준 것입니다'하고 전하시오."
 

전광은 말을 마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형가가 태자를 만나 전광의 죽음을 전하자, 태자는 두 번 절하고 난 다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전광 선생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국가 대사에 관한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전광 선생은 죽음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형가가 자리에 앉자 태자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지금 진나라는 탐욕이 끝이 없어 그 욕심은 만족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하의 모든 땅을 점령하고 온 중국의 군주를 신하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나라는 약소국으로 종종 전쟁의 피해를 받았으며, 이제 나라의 총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진나라와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제후들은 진나라에 복종하여 합종 동맹에 의해서도 이를 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천하의 용사를 찾아내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하여 큰 이익을 내세워 설득해 본다면, 비록 탐욕스런 진왕이지만 혹시 무슨 희망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진왕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나의 가장 바라고 있는 바입니다만, 누구에게 그 사명을 맡겨야 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형경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잠시 후 형가가 말했다.

"그것은 국가의 중대사입니다. 저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으로서는 정녕 사명을 다하지 못할 일입니다."


태자는 가까이 다가가 절하고, 겸양하지 말기를 청하여 물러나지 않았다. 마침내 형가가 승낙하자 태자는 경의를 표하며 형가에게 상경의 지위를 주어 관사에 머물도록 했다.  태자는 매일 그 관사로 찾아가 태뢰(太牢:왕가의 음식으로, 소·돼지·양 등으로 만든 고급 요리)로써 대접하고 진귀한 물품과 거마와 미녀를 제공하며, 형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었다.  이러는 동안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형가는 아직도 움직여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에 진나라 장군 완전은 조나라를 격파하여 조왕을 사로잡고 그 땅을 모조리 거두어 들이고는 군사를 북쪽으로 돌려 종횡무진으로 공략하면서 연나라의 남방 국경에까지 이르렀다. 두려움을 느낀 태자 단은 다시 형가를 청하여 말했다.

"진군이 내일이라도 역수를 건너오면 오래도록 귀공을 모시려 해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형가가 대답했다.

"태자께서 말씀이 없으셔도 제가 찾아뵐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서둘러 떠난다 하더라도 믿을 만한 징표가 없으면 진왕을 만나게 해 주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 번오기 장군은 진왕이 천근의 황금과 1만 호의 땅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찾고 있는 중입니다. 만일 번 장군의 목과 비옥한 연나라의 땅인 독항(督亢)의 지도를 진왕에게 바친다면, 진왕은 우리를 믿고 기꺼이 만나줄 것입니다. 그리하면 저는 은혜를 갚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실로 참혹한 고육계가 아닐 수 없었다. 태자 단은 몹시 난처해하며 대답했다.

"번장군은 쫓기어 내게 의지하러 온 사람입니다. 나 한 사람을 위해 훌륭한 분의 마음을 해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원컨대 형경께서는 생각을 고쳐 주십시오."


형가는 태자가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 간파하고 남몰래 번오기 장군을 찾아가 말했다. 

"장군에 대한 진나라의 조치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양친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가 권속이 모두 극형에 처해졌으며, 지금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장군의 목에는 황금 천 근과 땅 1만 호의 현상이 걸려 있다 하니, 장차 이 일을 어쩔 셈이십니까?"


번오기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깊이 한숨을 몰아쉬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나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늘 뼈에 사무칩니다. 다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형가가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연나라의 근심을 덜고 장군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번오기는 다가앉으며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장군의 목을 얻어 진왕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며 저를 만나 줄 것입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그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장군의 원수도 갚을 수 있고, 지금까지 연나라가 받은 굴욕도 씻을 수가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번오기는 숨을 헐떡이면서 대답했다.

"이야말로 제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속을 태우던 일입니다. 지금에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말을 마치자 그는 즉시 목을 찔러 죽었다. 그 무렵 연나라에 진무양이라는 한 용사가 있었다. 열세 살 적에 벌써 살인을 한 사람으로, 누구나 그를 두려워하여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태자는 진무양에게 명하여 형가를 수행하게 했다.
출발에 앞서 형가는 같이 동행할 사람(고점리)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의 집이 멀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장을 갖춘 채 대기중이었다. 출발 시각이 지나자, 기다리다 지친 태자는 형가가 혹시 변심이라도 했는가 싶어 또 부탁했다.

"앞으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형경께서는 무슨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나는 진무양을 먼저 출발시킬까 합니다."


형가는 답답하다는 듯이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께서는 도대체 어찌 하자는 것입니까. 더벅머리 애송이는 떠난다 하더라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지금 한 자루의 비수를 품고 진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제가 아직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제가 데리고 갈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태자께서는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만 작별하고 떠나겠습니다."


이리하여 형가는 마침내 출발하였다.
태자와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모두 흰 상복을 입고 형가를 전송하여 역수 기슭에 이르러 도조신(道祖神:길 떠나는 사람을 보호하는 신)에게 제를 올리고, 드디어 여로(旅路)에 올랐다. 뒤늦게 도착한 형가의 친구인 고점리는 비파(筑)를 뜯고, 이에 화답하는 형가의 음성은 반음이 낮은 단조의 비창한 가락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닦을 줄을 몰랐다. 형가는 천천히 걸으며 즉흥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역수를 건너며
(渡易水)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구나
장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호랑이 굴을 찾음이여, 이무기 궁으로 들어가네.
하늘을 우러러 외침이여, 흰 무지개를 이루는도다.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探虎穴兮入蛟宮
仰天噓氣成白虹


이 때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모두 하늘로 솟았다고도 한다. 진나라에 도착한 형가는 진왕의 총신인 중서자(中庶子:궁내부 대신) 몽가(夢嘉)에게 천금의 예물을 바쳤다. 몽가는 그를 위해 진왕에게 상주했다.

"연왕은 충심으로 대왕의 위엄에 떨고 있으며, 군사를 내어 우리 나라에 거역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합니다. 연왕은 대왕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말씀올리기가 어려워 삼가 번오기의 목을 베고 연나라 독항의 지도와 함께 상자에 넣어 봉함 다음, 연왕이 보낸 사자가 그것을 가지고 지금 어전 뜰 앞에 엎드려 대왕을 뵙고자 합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잠시 인견하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진왕은 크게 기뻐하며 정장을 하고 국빈 알현의 의식으로 함양궁(咸陽宮)에서 연나라의 사자를 인견했다. 형가는 번오기의 목이 든 상자를 받들고 진무양은 독항의 지도가 들어 있는 상자를 든 채 천천히 다가가 옥좌 아래에 이르렀다. 그때 진무양은 안색이 창백하여 떨고 있었다. 늘어선 뭇 신하들이 괴이하게 여기니, 형가는 진무양을 돌아보며 웃고는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북방 오랑캐 땅에 살던 사람이라 일찍이 천자님을 배알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벌벌 떨고 있사오니 아무쪼록 대왕께서는 저 사람의 무례를 용서하시어 어전에서 사명을 다 마치도록 해 주십시오."


진왕이 형가에게 말했다.

"먼저 진무양이 가지고 온 지도를 가지고 오라."


형가는 지도를 들고 어전에 올렸다. 진왕이 지도를 펼치자 지도 맨 안쪽에서 비수가 나타났다. 그 순간 재빨리 형가가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쥐며 진왕을 찔렀다. 그러나 몸에 닿지는 않았다. 진왕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일어섰다. 그 바람에 소매가 찢기었다. 진왕은 급히 검을 빼려고 했으나 검이 너무 길어서 빠지지 않았다. 칼집을 잡았으나 당황한 나머지 빠지지 않았다.

형가가 진왕을 쫓으니 진왕은 기둥을 돌아서 달아났다. 여러 신하들은 너무도 뜻밖의 일에 모두들 넋을 잃고 섰을 뿐이었다. 더구나 진나라의 규칙으로는 어전에서는 몸에 한 치의 쇠붙이도 간직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무기를 든 시종 무관은 모두 어전 아래에 늘어서 있었으나 어명이 없으니 감히 올라갈 수도 없었다. 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으므로 부하 군사를 부를 여유도 없었다.

형가는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진왕을 쫓았다. 사태는 급박했다. 진왕은 형가를 칠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달아나는 꼴이었다. 이때 시의(侍醫) 하무저(夏無且)가 들고 있던 약봉지를 형가에게 던졌다. 형가는 약봉지를 맞고 잠시 멈칫했다. 진왕은 계속 기둥 둘레를 돌고 있을 뿐, 허겁지겁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좌우에서 외쳤다.

"대왕께서는 얼른 검을 빼십시오!"


진왕이 검을 뽑아 형가를 쳤다. 형가의 왼편 다리가 잘려 나갔다. 형가는 설 수가 없었다. 그는 비수를 진왕에게 던졌다. 그러나 비수는 맞지 않고 구리기둥에 박히고 말았다. 진왕이 재차 형가를 내리치니 형가는 여러 군데에 중상을 입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달은 형가는 웃으며 기둥에 기대어 다리를 괴고 편히 앉더니 진왕을 꾸짖으며 말했다.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은 천운이다. 다만 그대가 빼앗은 땅을 도로 찾지 못하는 것이 한이로다."


결국 형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아  진시황의 호위병들에 의해 사지육신이 무참하게 도륙당하고 만다. 앞서 형가의 인품이나 성정에 대해 말했는데, 형가를 일컬는 말 가운데서 "방약무인(傍若無人)"이란 표현이 있다. 오늘날 이 한자어는 사리분별을 못하여 무례하고, 교만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 되었으나 본래는 형가와 그의 절친한 벗이자 비파(琵琶)의 명수인 고점리와의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파의 명인인 고점리가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춰 춤을 추며 고성방가를 하였다. 그러다 두 사람이 서로의 신세가 처량함을 느껴 감정이 북받치면 얼싸안고 울기도 웃기도 하였는데, 이때 그들의 모습이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해서 "방약무인(傍若無人)"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傍 : 곁 방, 若 : 같을 약, 無 : 없을 무, 人 : 사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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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1. 절대 빈곤과 상대 빈곤에 대한 접근

사회학(직업사회학)자들은 빈곤을 경제적으로 정의할 것인가, 문화적으로 정의할 것인가를 두고 절대 빈곤과 상대 빈곤이라는 지표를 제공한다. 절대 빈곤은 인간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생계형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가정을 말하고, 상대 빈곤은 경제적 결핍만으로 빈곤을 정의한다는 것은 인간의 필요가 동일하다는 가정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그 증거로 제시되는 것이 "가장 소득이 적은 가정도 20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1979년에 비해 1994년에 비디오, 중앙 난방, 세탁기, 자동차, 전화, 냉장고의 이용 인구가 80%가 넘는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지표이다. 때문에 빈곤은 문화적으로, 또는 '사회 발전'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하여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그 훨씬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회가 현대 '산업사회'라는 점이다. 이반 일리히는 현대 산업사회는 "희생자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한다. 이는 사회는 발전하는데 왜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는가, 왜 부자 나라일수록 빈곤층은 확대되는가와 같은 의문을 풀어준다. 왜냐하면 현대사회는 빈곤층, 혹은 준빈곤층의 고혈(저임금과 실업 등)을 빨아먹어야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빈곤층은 얼마든지 빈곤층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또한 그들을 사회로부터 배제시켜야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발전이고 성장이고 진화이다"라는 사고패턴을 사회 속에 살아가는 개인은 당연한 것으로 교육받아왔다는 점이다. 능력있는 사람이 잘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이러한 예이다. 문제는 그 '능력'이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 산업사회가 원하는 인간상과 일치하는 것이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빈곤문제는 단순히 사회'사업', 복지'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했을 때는 절대 빈곤을 말하는 것도 현대 산업사회가 잘 굴러가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사회적 불평등의 한 예를 짚어내는 것밖에 아니지 않을까. 문제는 이러한 만연된 '가치관의 전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사고패턴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서 우리는 앞서 절대 빈곤, 상대 빈곤을 얘기할 수 있을까. 있을까요. 아무 이야기여도 좋으니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발제하려고 하다가 여기서 턱 막혔습니다.

*

빈곤의 문제와 상관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역으로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하나는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에서 다른 하나는 역으로 중요한 점이란 생각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해보겠습니다.


이야기 1.

“왕이시여, 로마를 이긴 후에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탈리아를 정복해야지!”
“그 후에는요?”
“시칠리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그러면 전쟁이 끝납니까?”
“물론 아니지. 그것은 보다 위대한 일들을 위한 시작과 전주곡에 불과하다. 리비아가 남아 있고 카르타고도 그리 멀지 않으니 말이야. 그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더 이상 적이 남아 있지 않게 될 걸세.”
“분명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후엔 무엇을 하지요?”
“그 후에는 조용히 인생을 즐겨야지.”
“그렇다면 이곳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되나요?”
이탈리아로 건너가려고 준비할 때 피로스와 그의 부하가 나눈 대화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든 것은 프로테스탄트(신교도)들이었으며 그들은 근면과 절약을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의 직업을 신에게 부여받은 ‘천직(天職)’이라 생각하여 신앙생활을 하듯 자기 목적적으로 노동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는 신도들에게 부를 얻을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설교했다. “만약 하느님이 어떤 방법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여러분이 이 방법을 거부하고 이익이 적은 방법을 택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명 가운데 하나를 거스르는 것이며,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하느님이 요구하실 때 하느님을 위해 그 은총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육체와 죄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은 부자가 되려고 힘써도 된다.”

물론 서구의 근대인들이 모두 프로테스탄트들은 아니었고, 그들 모두가 자본가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하기 위해 일한다는 마음가짐은 자본주의의 정신이 중산계급에 침투하게 되고, 다시 노동자 계급에 침투하여 근대에 이르러 가정과 노동 현장이 분리되면서 노동자가 마치 수도사들이 삼종 기도하듯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일을 한다는 생활 태도가 몸에 배게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란 세속화된 기독교의 형태, 자본가는 세속화된 수도원 원장, 노동자는 세속화된 수도사라 할 수 있다.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신의 소명을 받드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보자면 자본의 은총이기도 하지만 제품을 만들기만 하고 스스로 소비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정신은 - 생산된 제품에 대해 계속 금욕적이라고 한다면 -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국가)가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근대화란 어떤 의미에선 결국 노동을 해서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고 소비하지 않는 - 소비는 타민족, 타국민에게 강제시키는 - 국가가 세계를 제패한 역사를 말한다.

만일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이 없다면, 즉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그렇게 모은 돈을 써서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만 있다면 - 피로스 왕과 그의 부하가 나눈 대화처럼 - 자본주의 사회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생산과 소비는 국내에서 나름대로 자급자족에 만족하게 될 것이고, 특별히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타국을 침략하거나 착취할 필요도 없으며 대자본이 축적되어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할 가능성도 없다.

예컨대 어떤 선진국이 이른바 미개사회에서 산업을 증진시키고 자본주의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할 때, 선진국은 원주민들에게 그들 사회에서 볼 수 없는 사치품들을 제공(사치품을 생필품화)하여 맛을 들인 후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들 고용된 원주민들의 의식 속에 ‘자본주의 정신’이 깃들어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원주민들이 한 달분 급료를 받은 뒤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않는다면 자본에 의한 고용은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화 과정에선 필히 기독교화 과정이 병행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맑스나 니체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티즘 혹은 자본주의 정신(노동)이란 결국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데도 일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이야기2.

다른 한 편으로 스미스의 <국부론>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분석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들의 이윤추구적 경제활동이 결과적으로 전체 사회의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스미스는 이윤추구적 개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산업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게 되도록 산업을 지휘함으로써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노린다. 그리고 다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추구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의도하지만, 전체적인 효과는 전체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킨다. 이것이 바로 <국부론>의 핵심적 메시지이다. 그는 이러한 통찰에 빠져서 안 될 요소들로, 경쟁시장, 분업, 자기이해의 추구를 들고 있다.

스미스는 분업이 한사람의 생산물을 1-2개에서 약4천 8백 개로 증가시킨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과업의 반복으로 발생되는 숙련도의 증가, 시간절약, 정밀한 작업분화를 고무하는 전용 기계의 발명이 바로 그것이다.

분업이 상품의 범위와 지위에 미치는 영향은 놀랄만하다.

전 세계적 분업의 결과 문명국의 평범한 기술자나 노동자조차도 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투입된 수천 가지의 노동을 표상하는 광범위한 상품들에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노동자도 그가 소비하는 기본적인 물품을 생산하는데 있어 방대한 전 세계적 분업에 포함됨을 당연시 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스미스가 일용노동자 조차도 전 세계적인 분업의 숨겨진 수혜자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분업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정도는 시장의 크기에 달려 있다.

스미스는 보다 큰 도시 중심지로의 이동, 운송과 교통의 개선을 통해 생산적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또한 스미스의 주장은 지역적 수준과 국제적 수준 양자에서 시장 개방을 위한 강력한 공격 수단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분업의 증대와 생산성 향상의 가능성이 더욱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스미스는 새로운 시장 지향적 상업과 이후에 전개된 산업혁명이라는 사건을 예견하고 있다는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생산 확대를 위해 자본을 절약하고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는 맥락에서 자기이해를 논한다. 국부론에서의 자기이해는 경제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다소 협소하게 논의된다.

스미스는 열망이라는 것이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의 욕망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좀 더 나은 조건을 원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허영심이라고 주장 한다. 스미스는 “우리가 우리의 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얻는 잇점들은 공감, 만족, 인정 속에서 관찰되고 주의를 끌며 주목받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편안함이나 쾌락이 아니라 허영심이다”라고 말한다.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며, 사람들은 흔히 재화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부가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존경과 평판 때문에 물질적 재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재화 그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이나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그러나 분업에 대한 스미스의 논의는 자본투자가 거의 없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기반하여 구성된 것이었다. 그가 분업의 예로 말한 핀 제조업 공장은 단지 10명만을 고용했다. 기계로 핀을 생산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선 이후였다. 핀 제조에 나타난 엄청난 노동생산성 증가는 분업이 아니라 바로 기계적 생산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스미스의 설명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분업에 대한 기계적 생산의 영향력이다.


이야기3.

첫째 이야기는 생산구조가 어떻게 개인이나 사회의 의식구조를 변화시키고 규정하는가? 의 문제(마르크스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둘째 이야기는 분업(혹은 산업화)을 통해 "일용노동자조차도 전 세계적인 분업의 숨겨진 수혜자"라는 점인데, 이 이야기는 산업화된(선진) 사회의 노동자는 비디오, 중앙 난방, 세탁기, 자동차, 전화, 냉장고를 이용하지 못하는 후진사회의 엘리트보다 물질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물질적인 풍요와 심리적인 풍요와 행복 사이의 상관 관계입니다. 삶의 질이란 측면에서 미국의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은 아프리카 가나의 가난한 의사보다 몇 십배에 가까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만 행복의 질은 아프리카 가나의 가난한 의사보다 낮더라는 통계가 잘 보여주는 것이죠. 다시 말해 미국 거지는 아프리카의 의사보다 풍요롭지만 불행한 대신 아프리카의 의사는 미국 거지보다 가난하지만 사회적 존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람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절대빈곤'이란 개념은 어느 의미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를 위한 필요악입니다. 왜 그런가? 현대 사회의 생산성은 이미 어느 누구도 절대빈곤 상황에서 헤매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생산력과 생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요.(이 부분은 "유리병편지"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책 "세계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을 참조해보세요.)

여기서 다시 아담 스미스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며, 사람들은 흔히 재화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부가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사회적 존경과 평판 때문에 물질적 재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재화 그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인정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이다.라는 이야기인 듯 합니다.  

이반 일리히의 말대로 자본주의 체제는 체제 자체로 언제나 희생자를 요구하는 시스템이며, 사회적 부와 재화의 생산을 규정하는데 있어 일정하게 편협한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노동자 재생산 시스템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이윤을 획득합니다. 첫째. 여성의 가사 노동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둘째. 노동자 한 명이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셋째. 생산자와 소비자를 재생산하는 사회를 유지하는 비용을 턱없이 적게 부담하거나 최대한 회피합니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사회적 재생산 구조를 유지하는 비용을 개인에게 부담시키거나 공공영역에 떠넘깁니다. 그런데 노동자 혹은 개인은 그것을 응당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이자, 동시에 그가 비워둔 공간이며 제가 공부하고 있는 일상'문화'의 영역(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부르디외의 '장' 이론)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이 혁명의 공간이며 동시에 혁명이 좌절하는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일상, 일상 영역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현재 매우 높은 편이고, 이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르페브르의 제법 오래된 고전인 "현대 세계의 일상성"은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한 좋은 지침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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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TAG 빈곤
매혹(魅惑)의 매(魅)는 '요괴(妖怪)' 혹은 '도깨비'라 풀이되는 한자입니다. '매'란 중국인들의 전설상으로는 존재했던 가상의 짐승으로  '魅는 사람의 얼굴이지만 짐승의 몸에 네다리를 하고 있는데 사람을 잘 호린다.'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우리가 흔히 백년 묵은 여우, 구미호 같은 것을 지칭할 때 쓰는 한자어가 이른바 매호(魅狐)인데, 이와같이 매'魅'란 본래 노물(老物), 즉 오래된 것의 정령(精靈)을 말합니다. 가끔 외국의 판타지물에 현혹된 이들이 외국의 정령들 이름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에 정통해 있거나 그것을 홈페이지의 주요 컨텐츠로 삼은 것들을 볼 수 있는데 그에 비해서 동양의 판타지적인 컨텐츠들 역시 양이나 질이란 점에서 결코 꿀리지 않는데 아쉬움이 좀 있군요.

이 도깨비 매자가 들어가는 말들로는 매혹, 말고도, 매력(魅力), 매료(魅了)라는 말이 있지요. 도깨비에게 홀린 것처럼 사람을 끄는 힘을 매력, 넋이 나간 것처럼 완전히 홀린 상태를 매료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매혹이라는 것이 낡은 것에 대한 이끌림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여인에게 매혹당했다거나, 매혹적인 여인이라고 했을 때 사전적인 의미던 통상적인 말의 사용과 상관없이 제게 매혹적인 여인이란 서정주의 시에 나오는 국화 앞에 서 있는 누님 연배의 여인을 의미하며, 매혹적인 예술작품이란 젊은 작가의 패기만만한 작품이 아닌 적당히 곰삭고, 저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뒤늦게 철나면서 그 맛을 새로 깨우친 작품들을 말하는 것이 될 겁니다.

남자의 사랑이 가장 치열한 순간은 사실 '惑'의 상황일 겁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에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혹입니다. 의심이 나서 정신이 헷갈린다는 뜻의 의혹(疑惑),세상 사람을 현혹시켜 속인다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혹(惑)이 바로 그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매혹이란 처음 만난 상대나 이제 막 알게 된 사람, 작품에 사용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매혹이란 이제 막 목욕하고 나온 섹쉬한 미녀가 아니라 늘상 밥상머리에서 오래도록 지켜봐 온 제 아내의 입술을 훔치고 싶은, 어느날 제 마음을 아리까리하게 만드는 그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죠. 혹은 오래도록 보아왔으나 그 의미가 아리까리하던 싯구가 해독되던 순간.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 온 사물, 사건의 의미가 명징해지는 순간입니다. 그야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매혹적인 순간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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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중1 때부터 일기를 썼었다. 고2 때까지...
그 뒤로 한동안 일기를 멈췄고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열면서
사람들에게 댓글을 달거나 내 글을 쓰며
그걸 일기로 대신했던 거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시 읽는 것으로 일기를 대신했던 듯 싶기도...
새로운 시를 읽지 않은 요즘은 일기 대신 트위터 수다로 푸나보다.
못 써요. 그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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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孟子曰  楊子는 取爲我하니 拔一毛而利天下라도 不爲也하니라. 墨子는 兼愛하니 摩頂放踵이라도 利天下인댄 爲之하니라 子莫은 執中하니 執中이 爲近之나 執中無權이 猶執一也니라 所惡執一者는 爲其賊道也니 擧一而廢百也니라.- 『맹자(孟子)』, 진심(盡心)편, 제26장

맹자가 이르기를 “양자는 오로지 나를 위한다는 설을 주장하니 한 오라기의 털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겸애하였으니 이마를 갈아 발뒤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하였다. 자막은 중간을 붙들었으니, 중간을 취하는 것이 바른 길(진리)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중간만을 붙들고 저울질함이 없으면 오히려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바른 길을 해치기 때문이니, 한 가지를 붙들고서 백 가지를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 신영복 선생은 맹자 진심편에 나오는 “執中無權”이란 말의 뜻을 “저울 추를 권(權)이라 합니다. 권은 권력이 아니라 균형입니다. 가운데를 잡으면 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해석했는데, 불민(不敏)한 탓인지 신영복 선생이 하신 말씀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더군요. 신영복 선생의 말씀은 “執中無權”을 직역하여 ‘가운데를 잡으면 무게 추가 필요 없다’는 뜻인 듯싶은데, 달리 보면 말 그대로 ‘가운데를 잡으면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니까요. 그렇게 이해한다면 신영복 선생은 맹자가 미워해야 한다고 말한 노나라의 현인이었던 ‘자막’이 되는 셈입니다(음, 설마 신영복 선생이 그런 뜻으로 한 말씀은 아닌 듯 한데, "처음처럼"에서 나온 말로 알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좀더 자세한 부연을 찾을 수가 없네요).

맹자의 핵심 주장 중 하나가 ‘중용(中庸)’인데 ‘執中無權’의 이야기는 그런 맹자의 주장 중 핵심인 중용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맹자는 노나라의 현인이었던 자막이 양자의 이기주의와 묵자의 겸애주의라는 양 극단론을 피하고 중도를 주장(執中)한 것은 겉으로 보았을 때는 바른 길(中庸之道)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양측 주장을 저울질(權)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무조건 가운데를 취하는 것은 바른 중용의 길이 아닌데도 바른 길인 것처럼 보이는 ‘사이비(似而非)’라 특히 더 위험하고, 도리어 인의를 해치는 것이란 뜻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중용이란 그저 양 극단 사이에서 가운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양 극단의 뜻을 두루 헤아려 옳고 그름을 살핀 연후에 가능하다는 말인 것이죠. 요즘 같은 시대, 중용을 취한다는 건 참 어려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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