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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Tempus Edax Rerum

시를 읽는 이유 장정일은 책을 내는 자신을 일컬어 '위조지폐범'이라고 말했다. 8,900원 하는 책 한 권을 내면 인세 10%를 받으니 자신은 890원짜리 지폐를 발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읽고 보니 맞는 말이라 피식 웃었다. 한국은행이 지불을 보증한 한국은행권의 액면 가치로 환산되긴 하지만 그는 분명히 책 한 권당 890원어치의 가치, 화폐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위조지폐범이다. 얼마전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읽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글쎄'라고 답했지만 오늘 최영미 시인의 신작 시집 "도착하지 않은 삶"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에 포스트잇을 가만히 붙여 나가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나는 강태공이 곧은 바늘로 세월을 낚듯 그렇게 시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부처럼 앉아 .. 더보기
無題 1. 내가 한 번도 학자로 살아볼 생각을 하지 않은 까닭,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자연과학을 전공하거나 이 분야의 지식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까닭은 내가 문학을 선택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와 정확히 겹친다. 나는 우유부단하고, 모호한 인간이기에 오래도록 논쟁을 거듭하며 제련되는 결론, 혹은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부단한 논쟁을 거듭하고, 훈련을 쌓는 일을 싫어한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설령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결론(논리)을 방어하기 위해 누군가와 논쟁을 벌일 만큼 그 결론을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나는 결론을 믿지 않는다. 학문이 정의를 내리고, 명제를 만드는 동안 문학이나 예술은 말한다(혹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고, 사람이.. 더보기
귀속(歸俗)과 귀속(歸屬) 불교에서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가했던 승려가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것(在家生活)을 일컬어 환속(還俗)이라고도 하고, 귀속(歸俗)이라고도 한다. 생사일대사의 인연을 걸고 용맹정진하여 도를 깨우치겠다는 발심으로 승려가 된 자라 할지라도 속세로 돌아가는 일, 환속이든, 귀속이든, 퇴속(退俗)이든 자유의지로 돌아갈 수 있으며 누구의 허락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슷한 발음인 '귀속(歸屬)'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지금 나는 갑자기 북한산에 오르고 싶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그곳에서 하늘도 보고 싶고, 추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서울 시내를 굽어보고 싶지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회사에 귀속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없으며,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 더보기
악순환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분노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침묵을 버리고 저항에 나선 뒤 오래 버티어 살아남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바른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불의에 휩싸여 있으며 이전보다 더 악해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며 살아가야 하는 일... 악순환이란 말을 떠올리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일... 더보기
내가 싫어하는 일 세 가지 나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군가를 기다려줘야만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 같은 일에 대해 두 번 설명하는 일이고, 마지막 하나는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다. 앞의 두 가지는 내 성질이 못 되먹어서 그러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내가 못 나서 그렇다. 더보기
풍소헌(風蕭軒)의 유래 풍소헌(風蕭軒)의 유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언각비"라는 책에서 전, 당, 각, 루, 정, 재, 헌 등 각 건물을 구분하는 법을 적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분적 위계질서가 뚜렷했던 조선시대의 궁궐 건축에도 역시 그런 위계와 건축 양식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각기 달리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은 그런 위계와 의미, 건축 양식에 따라 다른데, "전"은 궁궐의 건물 중에서도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 왕과 왕비, 전왕비, 왕 어머니나 할머니 등이 공적인 활동을 하는 건물로 세자나 영의정 등은 전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당"이란 "전"에 비해 외적 규모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어도 "전"보다 한 단계 낮은 건물을 일컫는 말로 "전"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당"은 일상적인 생.. 더보기
빈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1. 절대 빈곤과 상대 빈곤에 대한 접근 사회학(직업사회학)자들은 빈곤을 경제적으로 정의할 것인가, 문화적으로 정의할 것인가를 두고 절대 빈곤과 상대 빈곤이라는 지표를 제공한다. 절대 빈곤은 인간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생계형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가정을 말하고, 상대 빈곤은 경제적 결핍만으로 빈곤을 정의한다는 것은 인간의 필요가 동일하다는 가정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그 증거로 제시되는 것이 "가장 소득이 적은 가정도 20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1979년에 비해 1994년에 비디오, 중앙 난방, 세탁기, 자동차, 전화, 냉장고의 이용 인구가 80%가 넘는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지표이다. 때문에 빈곤은 문화적으로, 또는.. 더보기
매혹(魅惑; 도깨비 매 / 미혹할 혹)의 재발견 매혹(魅惑)의 매(魅)는 '요괴(妖怪)' 혹은 '도깨비'라 풀이되는 한자입니다. '매'란 중국인들의 전설상으로는 존재했던 가상의 짐승으로 '魅는 사람의 얼굴이지만 짐승의 몸에 네다리를 하고 있는데 사람을 잘 호린다.'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우리가 흔히 백년 묵은 여우, 구미호 같은 것을 지칭할 때 쓰는 한자어가 이른바 매호(魅狐)인데, 이와같이 매'魅'란 본래 노물(老物), 즉 오래된 것의 정령(精靈)을 말합니다. 가끔 외국의 판타지물에 현혹된 이들이 외국의 정령들 이름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에 정통해 있거나 그것을 홈페이지의 주요 컨텐츠로 삼은 것들을 볼 수 있는데 그에 비해서 동양의 판타지적인 컨텐츠들 역시 양이나 질이란 점에서 결코 꿀리지 않는데 아쉬움이 좀 있군요. 이 도깨비 매자가 들어가는 말.. 더보기
일기... 중1 때부터 일기를 썼었다. 고2 때까지... 그 뒤로 한동안 일기를 멈췄고 를 열면서 사람들에게 댓글을 달거나 내 글을 쓰며 그걸 일기로 대신했던 거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시 읽는 것으로 일기를 대신했던 듯 싶기도... 새로운 시를 읽지 않은 요즘은 일기 대신 트위터 수다로 푸나보다. 못 써요. 그러면.... ^^ 더보기
執中無權 孟子曰 楊子는 取爲我하니 拔一毛而利天下라도 不爲也하니라. 墨子는 兼愛하니 摩頂放踵이라도 利天下인댄 爲之하니라 子莫은 執中하니 執中이 爲近之나 執中無權이 猶執一也니라 所惡執一者는 爲其賊道也니 擧一而廢百也니라.- 『맹자(孟子)』, 진심(盡心)편, 제26장 맹자가 이르기를 “양자는 오로지 나를 위한다는 설을 주장하니 한 오라기의 털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하지 않았다. 묵자는 겸애하였으니 이마를 갈아 발뒤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하였다. 자막은 중간을 붙들었으니, 중간을 취하는 것이 바른 길(진리)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중간만을 붙들고 저울질함이 없으면 오히려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한 가지만 고집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바른 길을 해치기 때문이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