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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바람구두의 유리병편지

앞으로 10년쯤 후에 너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얼마전 대학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한 젊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뭐라 특별히 해줄 이야기도 없고 하여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내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대부분 별다른 장애 없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도합 12년을 학교에 다닌다. TV광고에서 할머니가 축구 선수 박지성을 '학생!'하고 호명하자 그가 웃으며 돌아서던 것(물론 젊음을 강조하려던 거지만 학생과 젊음은 이음동의어이기도 하다)처럼 '학생'이란 호칭에는 많은 것이 녹아있다. 비록 그 시절엔 학생 신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미처 잘 깨닫지 못할 수도(물론 '학생'이란 신분이 노예처럼 인권을 접어두고 살아가야 하는 한때가 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망각하지는 말자) 있지만 원튼 원치 않든 우리는 12년을 '학생'이란 신분.. 더보기
"레미제라블" 영화는 못 봤지만 책은 읽어본 사람의 생각 1. 잘난 척을 조금하자면 나는 루소의 『에밀』이란 책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완독했다. ‘을유’던가 ‘동서’던가하는 출판사의 깨알 같은 활자의 세로줄 문고판이었는데 이건 말 그대로 그냥 자랑이지 천재라서 내용을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 후로 『에밀』을 다시 한 번 꼼꼼이 읽어 봐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한 번 읽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어릴 적 읽을 때 너무 어렵게 봤던 탓에 다시 읽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몰라도 아직까지 재도전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뜻도 모르는 『에밀』을 꾸역꾸역 읽어낸 까닭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첫 문장의 위력 때문이었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 모든 것은 선했지만, 인간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은 타락한다.” 『에밀』의 첫 문장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나는 .. 더보기
도서정가제 문제를 놓고 옆길로 빠진 생각 엊그제 그럴 일이 있어서 인터넷서점과 동네서점에서 똑같은 책(『몰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정가 12,000원짜리 책이 인터넷서점에선 40% 할인해 7,200원인데, 같은 책을 동네서점에서 구입하니 10%만 DC해줘서 손해 본 느낌이 들었다. 소비자인 ‘나 개인’은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면 살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런 합리적인 이유로 동네서점이 자꾸만 사라진다. 대형마트 피자집에 가면 더 큰 사이즈에 맛도 괜찮은 피자가 동네피자집보다 값도 저렴하다. 전화만 해놓으면 미리 만들어두기 때문에 장보러 갈 때마다 애용한다. 대형업체인 만큼 동네 피자 가게 보다 나은 재료로 위생적으로 만들 것 같아 아이에게 먹이기도 안심이 된다. 그런 합리적인 이유로 동네 피자집이 자꾸만 사라진다.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가 운.. 더보기
런던 지하철(언더그라운드) 개통 150주년을 축하하며-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런던 지하철(언더그라운드) 개통 150주년을 축하하며- 공공디자인의 가치를 생각해본다 몇 해 전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노년의 외국인 부부가 내게 길을 묻는 경험을 했다. 얼핏 처음 듣기에 ‘사보이 호텔’ 가는 길을 묻는 줄 알았는데 찬찬히 다시 들어보니 지하철(subway) 타러 가는 길을 묻는 것이었다. 이른바 ‘네이티브’ 발음에 익숙치 않은 탓에 실수할 뻔 했는데 어쨌든 나중에라도 알아듣고 진땀을 흘리며 길 안내를 해준 기억이 새롭다. 2013년 1월 10일은 인류가 지하철이란 것을 타고 다니기 시작한지 정확히 1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패딩턴(비숍스로드)과 페링던 사이의 6km 구간을 잇는 런던 지하철이 세계 최초로 개통되면서 인류는 SF소설에서나 상상할 수 있.. 더보기
글로벌호크와 글로벌호구 지난 12월 21일(현지 시간) 미국 국방부는 미 의회에 고(高)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4대를 한국에 판매할 계획이라는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은 이 같은 사실을 2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는데, 한국 판매를 추진 중인 글로벌호크는 RQ-4 블록 30형(미국은 2015년까지 블록 40형 15대를 생산할 예정) 4대로, 전체 가격은 장비와 부품·훈련·군수지원 등을 포함해 12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제시됐다. 국방안보협력국은 한국이 글로벌호크 구매를 요청하면서 적외선 전자광학탐지 장치와 전천후 영상레이더인 합성개구레이더, 지상목표물 이동탐지 장치, 임무통제 장치, 통합 내장 감지부, 영상정보시스템, 통신장비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내법에 .. 더보기
거세개탁(擧世皆濁)에 숨겨진 참뜻 은 해마다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전국의 교수들에게 설문조사하여 발표하는데 시의적절한 사자성어가 나올 때가 많아서인지, 연말연시 뉴스거리로 삼기 괜찮은 주제인 탓인지 주변 언론들도 곧잘 인용 보도하여 뉴스거리로 삼는다. 올해 2012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전국 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8.1%(176명)가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했다고 한다. '거세개탁'이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듦’을 의미할 때 쓰이는 말이다. 굴원이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가를 거닐 때 한 어부가 “어찌 이 꼴이 되었느냐”고 묻자, “온 세상이 흐려 있.. 더보기
단식부기와 복식부기를 두고 벌어진 이상한 논쟁 최악의 범죄자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증빙자료, 회계장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1987년에 감독한 영화 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시대였던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경찰도, 검찰도 감히 손대지 못하던 갱단 두목 알 카포네(Al Capone)가 엘리오트 네스(Eliot Ness)라는 한 풋내기 열혈수사관에 의해 세금 포탈 혐의로 수감시키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알 카포네는 1920년대 당시 시카고의 라이벌 갱단 두목이었던 조지 벅스 모렌을 암살하기 위해 경찰관 복장을 한 부하들을 시켜 상대편 조직원 7명을 기관단총으로 살해할 만큼 잔인무도하기로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경찰과 언론은 물론 시카고의 삼척동자도 이 범죄가 알 카포네의 짓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능한 경찰은 범죄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도.. 더보기
슬로우 불릿,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슬로우 불릿, 고엽제(에이전트 오렌지) 경북 칠곡군 왜관읍은 내게는 그리 낯선 동네가 아니다. 대학 들어가기 전 3년 동안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무렵 왜관읍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성 베네딕도 수도원 공사 현장에서 겨우내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딕도 수도원 공사현장은 제법 규모가 크고, 읍내와 거리도 있는 편이어서 별도의 함바(공사현장노무자를 위한 밥집)집도 있었다. 음식의 질이야 얼마 전 ‘함바 비리 사건’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대로 수준 이하였지만 어쨌든 끼니와 군것질거리, 담배 등속은 함바를 통해 해결했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왜관읍까지 나갈 일은 별로 없었다. 다만 비 오거나 공사가 없는 날엔 읍내에 나가 단백질을 보충하거나 귤 한 봉지 사서 나눠먹는 일은 종종 .. 더보기
상처 입은 벗에게… 상처 입은 벗에게… 그대도 알다시피 나는 요즘 『논어』를 읽고 있다. 사실 『논어』를 이제 처음 읽는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 마흔에 지리산 종주는 못하더라도 내 나이 오십이 되기 전에 『대학』, 『논어』, 『맹자』, 『중용』 같은 동양고전을 일람(一覽)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다. 나는 『논어』를 잘 읽기 위해 『천자문』을 다시 읽었고, 신영복의 『강의』를, 중국사와 중국철학사를 읽었고, 작년에 『대학』을 읽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책읽기와 같은 일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순서를 정하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바 그대로 차곡차곡 진행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새로운 책을 구입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동안 내가 구입한 책들의 순서를 정해 잘 읽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직업(職.. 더보기
100만 원 짜리 다섯 뭉치는 누가 포장했을까?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농담 섞인 충고를 많이 받게 됩니다. 저도 간혹 신참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동네 무당에겐 영험이 없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도 있을 겁니다. 나사렛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한 수많은 기적들을 통해 전 이스라엘에 그의 이름이 알려집니다. 하지만 명성을 얻은 뒤 찾아간 고향 마을 나사렛에서 그는 뜻밖에 냉담한 반응을 겪습니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 사람들은 "저게 누구야? 목수 요셉의 장남 예수가 아닌가?"라며 예수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도리어 갖은 모욕과 조롱을 쏟아댑니다. 이런 일을 겪은 뒤, 예수는 “예언자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 받는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