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 김태완 | 소나무(2004)


연휴가 시작되기 전 잠시 짬이 나기에 헌책방에 들렀다가 몇 권의 책을 주워 담았는데, 그 중 하나가 김태완이 엮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책 읽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가장 즐거운 책 읽기는 마땅한 용처가 없는 독서다. 의무감에 쫓기지 않는 책 읽기야 말로 책 읽는 즐거움의 백미인 셈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를 소파에 누웠다 바로 앉기를 반복하며 반나절 만에 다 읽었다. 연휴 끝에 다시 회사에 출근하였다가 우연치 않게 2004년 9월호 『한국논단』 창간15주년 기념호가 눈에 띄어 살펴보다가 책등에 「역사에서 배우자. 천도(遷都)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라고 쓰여 있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가 쓰인 목적도, 역시 “역사에서 배우자”일 텐데 『한국논단』에서 말하는 「천도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지가 궁금해졌다. 내용인 즉 신라는 계림(경주)을 수도로 한 이래 한 번도 천도를 하지 않아 삼국을 통일했고, 고구려는 졸본부여에서 국내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천도한 탓에 멸망했다. 백제 역시 위례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했다가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멸망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한국논단』에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발간 무렵의 행정수도 이전 문제였으리라. “천도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는 말인 즉 옳은 말이다. 이 글에서 다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고조선 역시 천도한 뒤에 멸망했다. 그것이 한반도의 역사에 드러난 사실(fact)이긴 하다.

 

그것이 사실(fact)이긴 하지만 과연 진실(truth)일까? 소박하게 생각해서 한 집안이 어딘가로 이사할 때의 번거로움이나 비용, 그에 따라 불편할지도 모를 가족 구성원의 심사(예를 들어 스스로를 어느 날 갑자기 전학가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해보자)를 생각해보면 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것은 당연히 그보다 더한 번거로움과 비용, 이해의 격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사를 다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기 어려운 여러 조건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조선, 고구려, 백제는 왜 천도를 했으며, 고려는 왜 평양으로의 천도를, 정조는 수원 화성으로의 천도를 꿈꿨던 것일까? 그 이유는 외침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발적인 천도의 핵심은 언제나 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귀족 계급(기득권 계층)의 보수화된 권력을 약화시키고 체제를 혁신하여 국가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고조선, 고구려, 백제가 천도로 인해 망한 것이 아니라 천도로 인해 거대제국 한나라와 수. 당의 침략을 그나마 견뎌내고, 고구려에서 이주해온 열악한 권력 토대를 지방 토호로부터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 고려가 평양 천도를 꿈꿨던 까닭 역시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가를 쇄신하려는 목적이었고, 정조 대왕이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고자 했던 이유도 거대해진 신권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고려가 평양 천도에 실패한 결과가 무인정권의 출현이었고, 정조의 수원 천도가 실패한 결과가 세도정치의 발호를 막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진실(truth)이다. “역사에서 배우자”는 의도의 순수함은 인정하더라도 질문의 전제나 방향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사실이 꼭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천도 문제에서 살필 수 있듯 각각의 시대는 당대가 짊어진 시대적 소명과 한계,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조선시대 최고 통치자가 짊어졌던 고민들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책문(策文)은 말 그대로 당대의 고민에 대해 최고통치자가 이제 막 출사표를 던진 젊은 도학자에게 직접 그 정책 대안을 묻는 것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를 묻는 광해군의 책문에 대해 임숙영은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답하여 왕의 진노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대학에서 학문을 위한 학문을 추구하며,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둘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지식인들과 달리 현실 참여 그 자체를 목적으로 공부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자신이 배운 학문을 실천하는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완은 「책문을 읽기 위해」란 저자 서문에서 현실과 문화 그리고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본문 22쪽>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책문’.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는 세종 임금과 강희맹의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문과 성삼문, 신숙주, 이석형의 책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중종과 명종,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책문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아마도 엮은이 자신이 느끼기에도 이 시기가 우리 당대의 현실에 빗대어 느껴볼 대목이 많다고 생각한 듯싶다. 광해군의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과 같은 책문에서 우리는 개혁군주 광해군이 갈급하게 느꼈던 당대의 현안들을 엿볼 수 있고,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와 같은 책문에서 정통 계승자가 아닌 그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도학 정치를 꿈꿨으나 결국 보수화로 회귀하고 만 중종의 “술의 폐해를 논하라”,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과 같은 중종의 책문에서 우리는 개혁정치가 좌절되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왕들의 책문이 당대의 현실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면 이에 답하는 젊은 도학자들의 답변은 대부분 “역사에서 배우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패기 있게 답한 이들도, 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중을 고스란히 전한 이들도 대개는 요순시대와 삼대의 역사를 기록한 『서경(書經)』을 비롯해 『춘추』 등을 인용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역사와 시문을 인용해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정책과 대안을 왕에게 진언했다. 그러나 한 사회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들 사이에 비전의 공유가 필요하다.

 

비전이란 미래를 상상하는 힘과 그와 같은 미래를 만들어야하는 타당성, 그리고 실천력이 요구된다. 공동체 구성원간 사이의 비전이 공유되지 못할 때, 정치가들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같은 침상 위에서 다른 꿈을 꾸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한국논단』이 가르치고 싶어하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더라도 결국 만날 수 없는 다른 해석자가 되고 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과연 오늘의 위정자는 시대의 물음에 답하고 있는가? 아니, 역사에서 배우려는 시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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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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