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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9 정현종 -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 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시인선3, 문학과지성, 1991>


*


"그래 살아 봐야지"란 의미심장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은 '공'이 지닌 탄력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역전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1년에 한 차례씩 초등학생부터 어머니들까지 참가하는 전국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백일장을 개최할 때마다 대략 5천에서 6천 명 정도되는 참가자들이 주어진 주제로 시나 산문을 작성하는데 내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수상작품집을 엮어야 하기 때문에 읽을 수밖에 없다. '시'의 본질 중 하나는 사물이나 현실을 남과 다르게 본다는 '시선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에서의 '공'을 백일장 주제로 주어졌다면 수많은 아마추어 문사들이 과연 어떤 시를 써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한참을 궁리한 뒤에도 그래서 시가 어려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남과 다르게 본다는 것이 시작(詩作)의 첫 걸음이고, 그 과정을 통해 시처럼 보이도록 도와줄 순 있어도 아니 시가 되도록 해줄 수는 있어도 좋은 시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남과 다르게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남과 다르게 생각한 것을 보여주고, 그 과정을 통해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에서 "그래 살아 봐야지", "살아 봐야지" 두 행을 빼버린다면 이 시의 울림이 그렇게 커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이 가장 하고 싶은 말(핵심)은 '공'에 대한 여러 묘사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봐야지"란 진술에 있다. 그러나 '공'에 대한 묘사가 없다면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역시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래 살아 봐야지"란 진술 자체는 우리 일상에서 늘 듣는, 흔하기에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고 힘이 실리지 않아 무의미한 진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바로 '공'이 지닌 여러 속성들, 특히 공의 탄력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그 결과로 얻어진 묘사의 힘에서 발생한다.


"떨어져도 튀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공의 속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생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시를 활쏘기에 비유한다면 진술이란 화살촉이자 화살의 날개깃 구실을 하는 것이고, 묘사는 그 화살을 멀리 날려보내는 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활이 많이 구부러질 수록 더 멀리 화살을 날려보낼 수 있는 것처럼 묘사 역시 그러하다. 다만, 활이 부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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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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